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 - 억지스런 전개, 천봉삼 천소례를 죽이다!

까칠부 2015. 11. 5. 04:59

아버지 천오수가 그렇게 죽고 벌써 18년이니 나이가 못해도 스물 후반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스물 꺾이고 나면 더 이상 어리다는 말을 듣기가 힘든데, 하물며 더 일찍 결혼도 하고 생업에도 뛰어들어야 했던 전근대의 조선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선혜청 당상씩이나 되는 고관을 앞에 두고 있는대로 감정을 드러내며 할 말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김보현(김규철 분)이 마음먹고 죽이려 했다면 천봉삼(장혁 분)의 목숨은 그날로 끝났다.


감히 살변죄인을 쫓아 늦은 밤 깊은 산속 절벽까지 쫓아온 포교 앞에서 끝까지 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다 총까지 맞고 절벽에서 떨어진 범인과의 친분을 드러내며 오히려 꾸짖기까지 한 것도 차라리 용기라기보다 만용에 가까웠다. 결국 포교에 의해 공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지 않았던가. 그나마 선돌(정태우 분)이 돈을 쓰지 않았다면 중요한 증인인 천소례(박은혜 분)와 대질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려고 천소례를 찾아간 그 자리에서 다시 김보현을 자극하여 죽을 위기에 놓인다. 생각이 없거나, 머리가 없거나, 자제가 안되거나.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는 무협소설에나 나올 초고수이거나.


더구나 단지 길소개(유오성 분)의 말 몇 마디에 아무런 고민없이 남의 집에 숨어들어가 아녀자를 납치하여 살해하는 성급함과 잔혹함까지 보여준다. 바로 얼마전 송만치(박상면 분)가 보부상의 규율을 어긴 죄로 징치를 당할 때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다름아닌 쇠살쭈 조성준(김명수 분)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가깝고 먼 것이 이유였다. 친분이 있고 없고의 문제였다. 가깝고 친분이 있으면 명백히 규율을 어긴 죄를 지었어도 정당한 징치마저 잘못된 것이 된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말 몇 마디에도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없이 징치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물에 빠뜨려 살해한다. 그것도 자기가 무모하게 김보현에게 덤벼들었다가 죽을 뻔했을 때 무릎까지 꿇어가며 살려준 은인이었다.


조성준이 죽은 책임이 그쪽에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을 살려준 은혜도 김학준의 첩 천소례(박은혜 분)에게 있었을 것이다. 원한은 원한, 은혜는 은혜다. 그런 단순한 셈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 북받친 감정에 잠시 판단을 잃었을 것이다. 아니 하루가 지나고 자기가 여자를 물에 빠뜨린 장소를 지나가면서도 죽인 자체는 그다지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은혜조차 모르는 파렴치이거나, 은혜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앞세우는 인간 이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무감각한 천성적인 살인자이거나. 어느 쪽이든 결국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실격일 것이다. 편을 들어줄 수 없다. 오히려 혐오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렇게 죽인 사람이 다름아닌 어려서 헤어진 자신의 누이였다. 차라리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합리화하려 발버둥치는 길소개를 동정하고 만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 오로지 평면이다. 한결같이 힘이 들어간 장혁의 연기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고저가 없다. 강약이 없다. 항상 긴장되어 있다. 항상 힘이 들어가 있다. 목소리도 찌그러지고 표정은 굳어 있다. 그런 연기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런 연기를 보이는 것은 오버고 낭비다. 그나마 있는 입체감마저 목소리의 두께와 무게에 짓눌려 편편하게 펴지고 만다. 그다지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고서도 유오성이며 정태우며 김민정이며 무난히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그나마 주위의 다른 인물들마저 없었다면 천봉삼의 캐릭터 하나로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갔을까?


천소례의 지시로 길소개를 죽이려 찾아갔다가 오히려 방심으로 틈을 보이고 역습까지 허용하는 오득개(임형준 분)의 모습도 한심할 정도로 역지스러웠다. 하기는 길소개는 어차피 선을 넘어야 했었다. 당연히 아직 오득개의 손에 죽어서도 안되었다. 장차 주인공과 맞설 적으로써 그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게 되는 계기도 필요했다. 신석주(이덕화 분)의 밑에서 순조롭게 성장해서 벌써 천봉삼이나 천소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위치에 올라 있었으면 더 쉬웠을 것이다. 억지로 개똥이(김민정 분)과의 인연도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굳이 천봉삼의 손을 더럽혀야 했던 어떤 이유인가. 죽지 않았을 것을 안다. 아무리 막장이 유행이더라도 공중파 드라마로서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에 걸어본다. 지난회차에서도 김학준(김학철 분)이 죽는 장면이 너무 억지스럽더니 작가의 의도가 개연성을 넘어선다.


실망이 커져가고 있다. 한 단계 기대를 낮추었음에도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신석주의 진심을 전해들은 조서린(한채아 분)의 표정변화가 작게 흥미를 잡아끌고 있다. 그래봐야 결국 얽히고 섥힌 치정의 비극만 깊어질 뿐이다. 이미 한 남자를 사랑했고, 다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를 둘러싼 음모가 얽힌다. 예상한대로 개똥의 정체를 안 천봉삼은 당황한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천봉삼이 문제다. 하필 주인공이 가장 큰 문제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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