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아닌 내일에 걸어본다. 당장의 미욱함이 아닌 보다 배우고 성장한 훗날의 모습에 기대를 가져본다. 역사란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닌 자신들이 만들고 발전시켜갈 미래에 있을 것이다. 혁명이란 바로 지금 여기서 완결되는 것이 아닌 미래로 이어지며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바로 내일을 살아갈 이들 젊은이들일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너무나 크고 높은 이상에 사로잡혀 어쩌면 잠시 잊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 잊으려 했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돌려주고 싶었다. 차마 보지 못하고 떠난 내일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기를 바라 왔었다. 바로 이 아이들이었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그래서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만든 내일을 살아갈 그들이었다. 땅새(변요한 분)와 분이(신세경 분)와 연희(정유미 분)와 그리고 이방원(유아인 분)까지도.
내가 가르치겠다. 내가 바꾸겠다. 내가 바르게 보살피겠다. 단지 지재상인으로써 명성이 높은 화사단의 비밀요원 자일색이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연희를 통해 화사단의 정보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연희를 통해 비참하게 죽어간 자신의 아이들의 기억을 공유한다. 연희 만큼이나 몇 번 보지도 못한 사이인데도 분이에 대해서도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그렇게 자신을 떠나간 땅새가 신경쓰인다. 땅새가 남긴 원망과 분노가 앙금처럼 맺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누구를 위해서일까? 그가 이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자신을 내던지려 한 이유였을 것이다.
당장 더 쉽고 더 빠르게 가자고 이방원이 죽도록 내버려두어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만들려 하는 미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신이 만들려는 새로운 나라처럼 이방원 역시 자신이 직접 가르쳐 바르게 옳게 바꿔 보고자 한다. 그들의 미래까지 자신이 책임지려 한다. 어른이다. 아마 그래서 이성계(천호진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은 서로 지독히도 닮아 있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울타리만을 지키고 책임지겠다. 그러므로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고려의 백성을, 고려의 모든 것을 이성계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다.
가족을 지켜야 했다.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다시 자신에게로 이어진 이씨의 가문과 피를 나눈 가족들, 그리고 대대로 이어져 온 인연으로 자신과 얽힌 가별초와 그 식솔들을, 동북면의 수많은 백성들을 가장으로서 지키고 책임져야만 했었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그들을 지킬 힘이 약해지는 것과 같다. 자신이 항상 당당히 우뚝서 있어야 자신을 따르는 이들도 힘을 얻는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고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약해져야 했다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거부하던 정치라는 것을 하겠다. 물론 실제의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이미 한참 전부터 이성계는 개경으로 올라가 유력한 권문세족의 하나였던 곡산 강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있었다. 장차 정치라는 것을 하게 될 경우 동북면의 귀중한 재물이 그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이 건국되기까지 개경에서 쓰인 모든 자금은 바로 이들 곡산 강씨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신덕왕후 강씨가 살아있는 동안 이방원이 감히 왕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며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이유였다. 신덕왕후 강씨는 정도전과는 또다른 조선왕조의 공동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아들 이방원의 위기가 아버지 이성계에게 그토록 꺼리며 거리를 두어왔던 중앙정계에 발을 내딛는 자각의 계기가 되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동북면의 군사력이나 자신의 명성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더 요긴하고 더 강력한 실질적인 힘이 필요하다. 고려의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이인겸으로부터도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고려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가족을 넘볼 수 없도록 하는. 호랑이가 잠에서 깨었다. 발톱을 갈고 이빨을 벼린다. 뛰어오를 준비를 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세상을 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세상에 자신의 머리를 더하는 것 뿐이다. 다시 한 번 홍인방(전노민 분)과 정도전의 서로 다른 선택이 대비된다. 자신의 머릿속에 세상을 담으려 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그 세상을 더럽히고 농락하려 했던 홍인방과, 자신이 만들 미래를 위해 이방원이라는 폭두마저 끌어안으려는 이방원. 여전히 이방원은 둘 사이의 경계에 있다. 어떤 고통에도 공포에도 굽히거나 꺾이지 않으려는 신념과 용기가 아니었다. 여전히 이방원의 뒤에는 아버지 이성계가 버티고 있었다. 남은(진선규 분)의 말에 숨은 허점을 찾아낸 순간 그에게는 아직 기대고 의지할 대상이 남아 있었다. 홍인방과도, 정도전이나 남은과도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방원의 남다른 치밀함과 날카로움이 오히려 더 큰 불안요인으로 남지는 않으려는지. 정도전의 가르침마저 자신의 영민한 머리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닌지.
과연 무협일 것이다. 고려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는 동북면의 최고수 이방우(이승효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화사단의 고수로부터 약산을 구해낸다. 길태미(박혁권 분) 역시 고려제일검답게 이방원의 방에서 발견된 편지의 필체를 통해 자신이 이미 한 번 상대해 보았던 땅새의 검술을 읽어낸다. 단지 손을 섞어 보는 것만으로 적룡(한상진 분)과 더불어 자신들이 상대했던 적이 같은 사람이었음을 찾아낸다. 적룡에게 들은 말을 쫓아 강창사로 위장하고 있는 땅새를 찾아온다. 역사라고 하는 거대서사와는 또다른 칼과 칼이 직접 맞닿는 야만의 설레임일 것이다. 아직 무휼(윤균상 분)은 그같은 살벌한 고수들의 싸움에 끼지 못하고 있다.
역시나 이번에도 역사가 스포일러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하필 남은이었다. 남은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그가 결코 끝까지 이인겸의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중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입장을 바꾸거나, 아니면 지금의 모습이 이인겸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거나. 이방원을 살릴 수 있는 계책이 자기에게 있음을 정도전이 이성계앞에서 자신있게 말했을 때 모든 것이 확실해지고 있었다. 어째서 이인임이 아니고 이인겸인지, 임견미와 염흥방이 아닌 길태미와 홍인방이라는 이름이었어야 했는지. 극적인 긴장을 위한 장치이고 배려일 것이다. 그럼에도 결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안다.
과연 분이의 역할은 무엇일까. 연희와 더불어 온통 남자들인 가운데 유이하게 비중있는 여성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사도 아니고, 무술의 고수는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중심인물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도전의 손발이 되어 정보를 모아오고 잠입 등 공작을 꾸미는 역할을 맡은 연희와도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남은에게 비밀리에 쪽지를 전달하는 장면도 비중에 비해 지나치게 분량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저 이방원과 사랑을 하는 것일까. 이방원과 그저 사랑을 나누는 것에 불과할까. 어색해지는 이유다. 자꾸만 정교하게 맞물리는 기어 사이에 이물질이 끼인 듯 부대끼는 느낌마저 준다.
남은마저도 결국 정도전이 파놓은 함정의 일부였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순군옥에서 이방원을 살려 꺼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인겸은 정도전이 만든 무대에서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이성계가 정도전을 찾아온다. 정치와 책략을 묻는다. 바로 여기서부터다. 역사를 바꾸는 싸움이 시작된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 한다.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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