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은 상대를 철저히 타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객관화한다. 대상화한다. 기대란 일방적인 것이다. 자신이 만든 일방적인 이미지를 대상에 투사하는 것이다. 전우니까. 동료니까. 함께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사이니까.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자신만의 사정과 이유들이 생겨난다. 이기라는 어쩔 수 없는 서로의 거리만을 확인하게 된다. 배신감마저 느낀다.
"일어나주어서 고맙다, 수인아!"
하지만 그런 서로의 이기마저 이해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사정과 이유들까지 이해하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 인간이니까. 그런 것이 서로이고 자신일 테니까. 아마 역지사지란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힘든 것을 안다. 괴로운 것을 안다. 외로운 것을 안다. 겁먹고 두려운 것을 안다. 그럼에도 끝내 일어서지도 버티지도 못하는 나약함까지 안다. 서로가 인간임을 안다. 자신 역시 인간임을 안다. 인간을 위한 것이다. 너도 나도 아닌 바로 인간을 위한 것이다.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수인(지현우 분)이 다시 한 걸음 성장한다. 의식이 진화한다. 황준철(예성 분) 주임에게도 잘못이 없지는 않았으니 그것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다. 그 본질을 이해한다. 벌써부터 겁먹고 도망치려 하는, 자신의 이기를 위해 모두를 등지려 하는, 그러면서 싸움의 과실만을 누리려 하는 그 이기까지도. 그런 인간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자신이 싸우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망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 인간임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누구를 향해 맞서려 하는 것인지, 이수인은 더욱 자신의 전선을 명확히한다. 자신은 바로 이들을 위해서 이들과 함께 싸우려 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이들을 위해 자신은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구고신(안내상 분)마저 그 성장과 진화를 감탄하며 지켜본다. 그는 지휘관이고 전사였다. 싸움을 두려워하지만 피하지 않는다.
하여튼 차라리 저러는 것이 마트의 입장에서는 더 손해였을 것이다. 아직 이렇다 할 손해가 될만한 요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피해를 강요하는 어떤 행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노조를 막겠다고 자신들이 나서서 영업에 지장을 주고 만다. 당장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계산을 해주어야 할 직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당장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교대를 해주어야 하는데 마냥 통로를 틀어막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사실 지난회에 이미 그 이유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노조에 대해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월급을 올려주겠다.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주의 인척인 임원을 내보내기보다 차라리 월급을 30만원씩 더 올려주고 말겠다. 노조와 노조의 투쟁을 무력화하는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다. 정민철(김희원 분) 부장은 실패했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것을 회사가 먼저 알아서 오히려 더 크고 강하게 베풀어줌으로써 회사의 존재와 역할을 과시한다. 누가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고, 누가 자신들에게 이익을 베푸는가. 하지만 어차피 노조를 막으려 하는 것은 노조가 회사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자존심이다. 내 소유의 사업체에서 일개 고용인에 불과한 노동자들이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하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쓰는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인 자신의 권리인데 노동자가 그것을 침범하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필요하면 필요한대로 고용해서 부려 쓰다가, 필요없어지면 가차없이 내쫓아 그 자리를 비운다. 이것저것 절차며 과정이며 신경쓸 필요 없이 마음대로 욕하고 야단치며 손가락 하나로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시킬 수 있다. 당장 같은 고용되어 월급받는 처지에 불과한 과장들조차 단지 관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한참 나이 많은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며 마음대로 부리려 한다. 그 권력을 놓치기 싫다.
어떤 사업체든 결국은 사용자의 소유이며 사유재산이다. 노동자는 타인이다. 제 3자다. 일한 만큼 돈만 받으면 되지 과연 사용자의 권리까지 침범해서야 옳은 것인가. 남의 돈을 받아먹는다. 일하고 받는 월급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듯 사용자에게는 단지 자신의 소유인 사유재산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일부인 말 그대로 '직장'이다. 직장에 얽매인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자신의 삶이 있는 직장에서 인간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바로 어제까지 노조의 파업을 비난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가정주부들이 열혈의 투사가 되어 노조와 함께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이다. 아무리 사용자의 사유재산이라 할지라도,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고 고용되어 일하는 처지라 할지라도, 단지 임금을 받고 일하는 현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 순간에조차 노동자는 인간이어야 한다. 인간이기를 바란다. 인간이기 위해 싸운다. 존중받기 위해. 가치있는 존재로 있기 위해. 사용자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부속품으로서가 아닌 오로지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존재하기 위해서.
이수인이 처음 푸르미와 싸우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바로 오전까지 함께 파이팅을 외치던 동료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형이라 불렸고 누군가를 누님이라 불렀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회사의 지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장인 자신들이 그들을 내보내기 위한 궁리를 해야 한다. 신뢰를 배신하고 알아서 걸어나가도록 꾸미고 압박해야 한다. 처음 과장들도 반발하고 고민했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인간이고자 했었다. 회사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도구가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기를 바랐다. 어쩌면 이수인이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런 자신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마트의 직원들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필요하지만 그로인해 자신이 희생양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이들을 위해 앞장서 싸워야 한다. 가장 자신들의 싸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럴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더 약하고 더 가련한 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모두를 지키겠다. 이수인의 용기가 모두의 용기를 이끌어낸다. 혼자가 아니다. 어쩌면 먼저 도망치려는 그들을 비난하는 것도 자신들의 두려움이고 나약함일 것이기에. 이 자리를 지키겠다. 자신을 지키겠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도 바로 지금의 자신 자체였을 것이다.
아프지만 아름답다. 냉정하기에 더 따뜻하다. 현실은 그렇게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곳곳에 패이고 깎이고 갈라진 곳 투성이다. 썩고 짓무른 가운데 악취마저 진동한다. 그래도 살아가려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마저도 자신의 삶으로 채워넣으려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그런 의지를 지탱하는 서로의 마음이 있다. 인간인 이유다.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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