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상업적인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대중드라마에서 윤리적 엄숙함이나 도덕적인 엄격함을 요구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재미있으면 된다. 시청자가 다른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사람을 고문하고 협박하는 모습까지 웃으며 즐기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유행도 지났을 것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만들었다 하면 조폭이었고, 관객이 좀 들었다 하면 코미디였다. 그래서 논란도 꽤 있었다. 고작 사회와 무고한 일반인에게 피해나 끼치고 다니는 범죄조직을 미화하거나 최소한 희화화하여 그 위험성을 희석한다. 당장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윤태수(정준호 분)가 폭력조직 '충성파'의 보스로서 보이는 많은 행동들이 공공의 가치와 법질서를 부정하는 범죄행위들이었다. 사람을 때리고, 협박하고, 갈취하고, 그나마 아직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웃는다.
더구나 밖에서는 흉악한 범죄집단의 우두머리지만 집에 돌아오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 은옥(문정희 분)의 눈치를 살피는 소심한 남편이며 두 남매 성민(이민혁 분)과 수민(김지민 분)에게는 소통이 부족한 답답한 아빠이며, 어머니 이춘분(오미연 분)에게는 효심깊은 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따뜻하고 유쾌하며 선량한 개인이라는 것이다. 과연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조직범죄를 미화한 드라마가 있었는가. 아무리 범죄자가 주인공이더라도 주인공 자신이나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금지하고 배척해야 할 죄이고 악이라는 사실 만큼은 명확히 한다. 결코 자신이 저지른 죄와 악의 대가로 평범한 행복을 누려서는 안된다. 합의이고 약속이다. 가치다.
시대착오적인데다 의도마저 고약하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표현이 거칠고 서툰 것이다. 설마 이런 드라마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다른 조직의 보스와 경호원들을 폭행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여겼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회장 백만보(김응수 분)의 칠순잔치에 이어 나온 것이 윤태수의 딸이 다니는 학교였다. 학교에서도 딸의 징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역시 딸의 문제로 흥분한 상대편 학부모를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호사스런 식사의 반전으로 누군가를 폭력으로 제압하여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 다음은 떠돌이 약장수에게 사기당한 어머니를 위해 사기꾼들을 찾아나서는 효심깊은 아들의 모습이었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연기가 너무 능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범죄자같지 않았다. 범죄자의 가족같지 않았다. 너무 평범했고 너무 일상적이었다. 유쾌했다. 다정했다. 사소한 갈등까지도 그저 바로 자신 바로 이웃의 삶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합법을 가장한 기업형 범죄조직을 추구하는 백기범(정웅인 분)의 그것과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윤태수의 일상이 다른 것이 무엇인가. 어쩌면 일본에서처럼 드라마의 제작을 범죄조직에서 후원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사회에서도 야쿠자가 투자하고 후원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들이 야쿠자에 대한 우호적인 인상을 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굳이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불쾌한 드라마였다. 기업의 불법이나 편법을 마치 대다난 경영수완인 양 포장하던 기업드라마들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소한 그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적인 개인들이 아니었다. 한국사회가 여기까지 타락한 것인가. 공중파 드라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가장 최악이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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