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그냥 좌도 싫고 우도 싫고 할 때 중도라는 말을 쓴다. 좌든 우든 너무 극단적이라 여기기에 그 중간쯤이라는 뜻에서 중도라는 말을 선호한다. 그런데 정작 좌와 우에 대해 물으면 과연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때 배우 윤계산이 좌파 발언으로 꽤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말 그대로다. 이념적 포지션이 아니다. 관념적 포지션이다. 새누리당이 새정연의 왼쪽으로 옮겨가도, 새정연이 새누리당의 오른쪽 끝에 있어도 그들은 결국 그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새정연이 진보라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이 보수라서가 아니라, 단지 어느 쪽도 선택하기 싫은 유보인 것이다. 대개는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번거롭거나, 아니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자기만의 확신에 빠진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그런 중도를 잡으려면 어떤 공약을 내세워야 할까?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오히려 새정연보다도 더 왼쪽에 있는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었다. 중도라는 것이 새누리당과 새정연의 한가운데 있다면 어째서 새누리당은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새누리당과 새정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 가운데 그들보다 더 왼쪽의 정책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유권자는 없는 것일까? 한때 10%가 넘는 지지를 얻었던 민주노동당의 지지자 역시 지금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상태다. 그 10% 가운데 고작 3.9%만이 2002년 당시 권영길을 지지했었다.
차라리 자신이 보다 왼쪽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명확하게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중도층은 어디도 누구도 성급하게 결정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정지지층으로 흡수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들에게 명확한 비전과 목적의식만 부여한다면 이미 고착된 양당의 지지율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새정연의 고정지지율의 상승은 중도층의 움직임을 유도하기도 한다. 노무현과 문국현, 안철수의 바람을 떠올려보면 된다.
비로소 대세가 결정되고 나서야 중도층은 움직인다. 어떤 이슈가 전면에 나섰을 때 뒤늦게 그에 대한 판단을 한다. 무상급식은 당연히 진보적 정책이다. 그래서 보수인 새누리당은 아직까지도 그를 부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무상급식 논란에서 중도층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는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보다 진보적인 공약을 앞세워 중도층을 공략한 것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도 어쩌구 떠들며 야당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공략할 대상과 수단을 보다 명확히했다.
무엇이 중도층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어떤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중도층의 현실을 보다 낫게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이 당선되고 시도했던 정책엑스포는 상당히 괜찮은 퍼포먼스였다. 예산마켓 역시 홍보가 부족해서 그렇지 중도층에 다가가기 위한 참신한 시도였다. 여기에 더해 새정연이 추구하는 차별화된 정책이 어떻게 중도층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정치는 결과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말이 옳다. 과연 새정연의 정책들이 중도층 시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새누리당이나 새정연이나 비슷한 정책으로는 차별성도 경쟁력도 확보할 수 없다. 이놈이나 저놈이나로는 중도층을 유혹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분명하다. 매우 선명하다. 그래서 판단하기도 좋다. 그런데 새정연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맨날 싸운다. 신뢰가 없다. 누구에게 표를 주겠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더 모호하게 회색으로 칠하라 주문하는 지지자들이 있다. 새누리당으로부터 더 멀리 있는 지지자들은 버리라.
노무현의 성공과 실패를 돌이켜보라. 노무현과 이회창의 표차이는 고작 2.3퍼센트였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가 아마 13퍼센트였을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이 얻었던 표가 3.9퍼센트였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당시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후보에 대한 비판적지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떠올린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진보적 유권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노무현의 보수일변도의 정책으로 지지자들이 하나둘 떠나간 결과가 말년의 처참한 지지율이기도 했었다.
노무현의 보수적인 정책에 동의하던 유권자들은 더 보수적인 새누리당으로 떠나갔고, 노무현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었던 지지자들은 당시 여당과 대통령을 등지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의 실패는 진보 전체의 실패로 정의되었고 덩달아 내부적인 내홍까지 겹치며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에서 고작 3퍼센트의 지지만을 얻으며 참패하고 만다. 심지어 진보적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같으니 투표에 기권하자는 주장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었을 정도로 극심한 좌절감과 혼란속에서 치렀던 선거였다. 그러면 이들 유권자들은 지금 어디로 가 있을까?
나 역시 좌파놈들 싫다고 보수를 자처하는 뜨내기 중도 가운데 하나다. 좌파놈들 싫어한다고 내가 보수가 되지는 않는다. 새누리당 새정연 다 싫다고 내가 중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의당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집권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새정연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의 투표를 유도할까? 최소한 노무현 집권기처럼 이놈이나 저놈이나 손털고 나와버리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집토끼니 내버려두자. 오른쪽으로 갈수록 유권자들은 차별성없는 정책에 지쳐가게 된다.
그래도 무엇을 할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역시. 설득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의 역할이다. 그저 정책만 내놓는다고 지지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게 오산하는 것이다. 그만한 머리도 없는 새정연은... 미안하다. 그동안 너무 많이 당했다.
노무현이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가를 기억하라. 그리고 노무현이 어떻게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하게 되었는지도. 2007년과 2008년의 선거에서 야권은 어떻게 그리 지리멸렬했는가 역시. 2012년 내분도 제대로 수습못한 야당은 공약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서 저울질하느라 국민들에 무엇을 어필할 것인지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했었다. 왼쪽이어서가 아니다. 중도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무엇을 하려는지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도층을 잡겠다는 것은. 편하게 지지율 높은 정부여당의 뒤만 쫓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세우는 것이 도덕성이다. 정책적인 차별성이 없으니 도덕성이나 앞세울 밖에. 그러나 그것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 새누리당을 선택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아닌 새정연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박정희 무덤에 참배하기보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중도층을 믿어서는 안된다. 최악의 순간에도 당을 지지해주는 것은 바로 고정지지자들이다. 새누리당과는 다른 새정연을 지지해주는 유권자들이다. 지역주의를 깨는 답도 거기에 있다. 누구에게 자신을 위한 정책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진다면 어쩔 수 없다. 답이 없다. 지켜보기도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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