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배수의 진'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배수의 진'의 고사가 유명한 이유 자체가 그같은 상황에서 이기는 경우가 이전까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력의 열세로 어쩔 수 없이 강가까지 쫓겨 퇴로가 막혔는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우세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거록에서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히곳도 항우는 필승을 자신했다. 자기가 앞장서서 적을 베며 돌진했다. 해하에서 패하고 쫓기는 와중에도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늘이 버리는 것이라며 고작 28명 남은 부하들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마침내 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오수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살아남은 26명의 병사들은 배에 태워 보냈으면서도 자신은 남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 단지 자기가 살려 기를 쓰고 한군의 포위를 뚫었던 것은 아닌 듯 보인다.
해하에서의 마지막 싸움에서 그동안 전투에서만큼은 거의 져 본 적이 없는 항우의 군대가 어떻게 그토록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는가. 한군에 포위되어 군량마저 떨어졌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랫소리에 당장 항우 자신부터 동요하고 말았다. 적진에 이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쩌면 초나라까지 한군에 넘어간 탓이 아니겠는가. 고향도 그립고, 승산도 보이지 않고, 그런데다 심리적으로도 가라앉는다. 전형적으로 패배로 인한 공황으로 흩어지는 군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휘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겠는가. 굳이 고대의 전쟁이 낯설게만 느껴진다면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1억을 투자해서 4천원의 손실을 봤다. 그런데 오히려 사장이 직원들을 보면서 큰소리를 친다. 당장은 크게 손해를 봤지만 그러나 구체적인 지표에서 가능성이 보인다. 새롭게 전략을 짜고 집중해서 노력한다면 상황을 반등시킬 수 있다. 어쩌겠는가. 회사가 망하면 다니던 직장을 잃는데 한 번 믿고 사장을 따라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바로 이게 배수의 진이다.
그런데 어떤 기업에서는 1억을 투자해서 5천만원을 벌고서도 오히려 사장이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당장 이익은 조금 봤지만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부정적인 지표들이 너무 많다. 이러다 망하겠다. 심지어 임원 가운데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그런다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성공할 수 없다면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면 다른 임직원들의 입장은 과연 어떻겠는가? 시장의 소비자나 투자자들에게까지 그같은 사실들이 알려졌을 때 기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또한 어떻겠는가?
리더는 때로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길 수 있다면. 아니 전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오로지 리더만은 이길 수 있다, 최소한 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놓치지 않고, 설사 아무리 크고 확실한 불안요인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타개할 방법을 모색한다.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순신 장군도 그래서 전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이던 명량에서조차 이기자고 했지 같이 죽자고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승리의 가능성을 믿고 대장선이 선두를 지켰을 때 다른 배들도 대장선을 따라오게 된다.
이길 수 있다. 이겨야 한다. 이기기 위해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 그러자 안철수는 말한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어차피 그래도 질 것이다. 지지자들도 말한다. 어차피 총선에서 질 것 괜히 연대를 받아들여 책임을 나눠지느니 연대를 거부하고 문재인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난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옳다. 지지자들에게 총선패배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이미 패배가 기정사실이 되어 있는데 이기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스스로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고, 어떻게든 이겨보겠다 자원봉사로 발로 뛰어 도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야 이길 싸움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니 리더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진정 자신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소속된 정치인이라면,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면, 여기서 이렇게 대답했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를 위해 분골쇄신 최선을 다하겠다. 다만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전략을 함께 논의해 보자. 함께 노력해 보자."
그래도 이길 수 있다. 자신들이 손만 잡으면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마 상대가 문재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의 대상이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그 문재인이었다. 아직 청와대로 가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이 실패해야 한다. 문재인이 패배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먼저 문재인을 꺾어야 한다. 당보다 자기의 입장을 먼저 챙긴다. 당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입장만을 우선한다.
혁신위원장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그랬었다. 공은 문재인이 다 가져가고 안철수는 부담과 책임만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을 탄생시킨 공동주역 아니던가. 한때 정당의 공동대표까지 지냈었다. 어째서 안철수 바람이 불어왔었는가 잊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했을 때 안철수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인간 자체만큼은 진짜구나. 희생하지 않는 리더는 없다. 오히려 문재인의 경우 노무현의 유산을 물려받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기에 안철수의 희생은 더 값질 수 있었다. 그러나 손해보기 싫다.
불리한 싸움도 이길 수 있다며 앞장선다. 모두가 진다고 할 때 자기는 이길 수 있다며 오히려 웃으며 큰소리를 친다. 불론 세부적인 전략에 있어서는 비관을 선택해야 한다. 최악을 가정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모들이 할 일들이다. 리더는 단지 웃어주면 된다. 당당하면 된다. 최소한 자신만 따르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확신을 주어야 한다. 최소한 가치없는 무모한 싸움에 의미없이 희생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함께 싸울 수 있다. 그래야 승리할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패배하더라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피할 수 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이후를 남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리더라는 것이다.
리더가 아니다. 아니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자신의 소속정당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 모습이 소름끼치게 누군가를 닮아 있음을 깨닫고 만다. 2007년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장관까지 역입하고, 여당에서도 주류를 이끌며 실세노릇을 하던 어느 정치인이 참여정부 말 보여주었던 행보들이다. 한순간에 유력한 차세데 지도자에서 곶감으로 추락해 버렸다.
정말 질 것 같으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손을 자신의 발을 자신의 몸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도 따른다. 어째서 안철수의 주변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가. 여전히 그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 하나다.
하기는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무시하기에도 심각하게 해당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패배를 전염시킨다. 패배를 기정사실로 만든다. 싸우기도 전에 전열을 무너뜨린다. 정착 초나라의 노래는 당의 주요정치인인 안철수에게서 들려온다. 한심하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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