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문재인과 한명숙, 그리고 안철수...

까칠부 2015. 12. 8. 00:23

이를테면 내가 이렇게 마음놓고 노골적으로 안철수를 비난할 수 있는 것도 당 밖에 있는 외부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새정연 따위 애정도 집착도 없다. 새정연이 망한다고 크게 서운할 것도 없다. 다만 그래도 정권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 1야당인 새정연에 기대게 된다.


한명숙이 부정을 저질렀다. 그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때 당대표까지 했던 유력인사를 마냥 비난하고 버리기에는 당장 한명숙이 당에 있으며 맺은 인맥 때문에라도 쉽지 않은 결정인 것이다. 한명숙을 버린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밖에서 보기에는 한명숙을 쳐내는 것이야 말로 시원한 행동이겠지만 내부의 사정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두고 정치라 일컫는 것이다. 정치란 권력이다. 권력이란 힘이다. 힘은 곧 사람이다. 세력이다. 그 세력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어째서 안철수 주위에는 지금 사람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같은 초선의원임에도 친문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새정연의 주류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옳은 것은 오히려 안철수 자신일 텐데 비판적 여론 역시 안철수 자신에게로 쏠리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문재인의 측근에 있던 정치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문재인은 당대표로서 안철수에 비해 명분상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공동대표에서 내려올 때 그를 지키려 한 이들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정치인 하나 고작 3억으로 유죄판결 받은 것 대부분의 국민들은 크게 관심도 없다. 굳이 안철수가 들추어내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살기도 바쁜데 정치인들 돈받고 사고치는 것까지 언제 일일이 다 살피고 기억하는가. 그런데 한명숙을 이슈로 만들며 당에 부정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당 내부의 인사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당장 한명숙이 교도소로 갈 때 그를 배웅하려 다수의 중진이 나섰던 것이 바로 새정연이라는 정당이었다. 안철수와 보조를 함께하던 정치인 가운데 과연 한명숙을 안철수처럼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나선 이들이 얼마나 있었던가.


박지원도 예외라 옹호했었다. 자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던 박지원조차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중진이기에 버릴 수 없다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문재인의 고민이다. 그리고 여전히 당내부에서 문재인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적도 있지만 그만큼 아군 역시 크고 단단하다. 안철수와도 척질 수 없다. 문재인과 친노에 비판적이던 인사들마저 이번 만큼은 안철수를 비판한다. 야당에 아직 기대와 애정을 가지는 이들에게 있어 잘잘못은 너무나 분명하다.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가. 지금 새정연이라는 정당에 있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과연 무엇이던가.


문재인이 실천하려던 혁신안에서도 그래서 당대표의 공천권한을 크게 제한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략공천보다는 지구당에서의 경선을 통한 후보선출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 당대표란 그런 자리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나서서 누군가를 쳐내기란 무척 어렵다. 당대표가 되기 위해 신세져야 했던 이들이 있기에 더욱 그들의 몫까지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안철수가 비난하는 바로 그 혁신안에 의해 당대표의 공천권은 전략공천에 한해 크게 제약되고 경선이라는 공개된 경쟁이 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당대표의 의지로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 맡기는 바로 그런 게 혁신이다.


말 그대로 한명숙이 유죄인가 아닌가는 정치에 있어 그렇게 크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유죄라 여기고 싶으면 유죄라 여기는 것이고 아니다 여기고 싶으면 또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어쩌면 이공계인 때문일 것이다. 답이 명확한 세계에 살았었다.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니다. 관계며 작용이다. 바로 말하는 정치공학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명숙을 문제삼으며 더 크게 피해입는 것은 누구인가. 한명숙을 쳐내더라도 그 상처는 여전히 야당에 남아있게 된다. 무죄를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남는다. 아니더라도 굳히 들출 필요 없는 치부를 공개함으로써 야당에 대한 유권자의 인상만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고보면 바로 어제 신기남에 대한 당무감사위의 감사결과가 발표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보는 순간 웃음부터 나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당내 중진이다. 흔치 않은 다선의원이다. 과연 그에 대한 조사가 고작 당무감사위를 통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인적혁신이 아닌 제도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 없는 규범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당헌과 당규를 만들고, 기구와 장치를 정비하고,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들로 하여금 감시하고 견제토록 한다. 문재인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니 함부로 나서도 문제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대표가 직권으로 징계한다. 그런 정당을 바라는가. 그래서 내놓은 것이 혁신안인데 그 혁신안을 부정한다. 그래서 안철수의 혁신안을 받아들였더니 그마저 거부한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명분을 잃고 만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다.


부하직원이 아니다. 동지다. 같은 당에서 같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활동을 함께했다면 그들은 동지일 것이다. 필요없다고 자르고, 문제가 있다고 떨궈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보기에는 그런 것이 속시원하고 편하다. 하지만 당이 당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당원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기업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행위를 무시한다. 무어라 해야 할까. 어떻게든 당과 동지들을 지키려 노심초사하는 문재인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당도 당원도 정의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것이다. 대등한 서로간의 존중과 공존인 것이다. 그것을 우선해야 한다.


하기는 어쩌면 나 자신부터 정치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 1 야당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 정치에도 관행이라는 것이 있다. 관습적으로 각자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던 버릇들이 있다. 들통나면 문제가 되고, 들통나지만 않으면 전혀 아무 문제도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는 정도지 오래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하기는 그래서 그동안 새정연에 관심을 접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삼는가.


아닌 것을 안다. 그냥 잘못되었다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아닌 것 아닌가 순수한 정의감에서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진하다는 것이다. 때로 지나친 순수는 무능과 같은 뜻으로 여겨진다. 때로는 정략적이고 공학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도 모이고 힘이란 것도 생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동지가 있고,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가까이 있어주어야 무어라도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너무 정의로워도 그래서 문제가 된다. 유시민을 보라.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유시민이 지금 어디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훈이 될 것이다.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시시한 사람들이다. 그런 시시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려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도다. 당헌과 당규다. 윤리심판원과 당무감사원이다. 자신들을 감시할 권리당원들이다. 사람이 힘이다. 정치란 힘이다.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안타까운 이유다.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