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야당의 혁신 - 내가 야당을 경멸하며 혐오하는 이유...

까칠부 2015. 12. 20. 19:35

생각해 보면 김한길과 안철수의 합당은 기가 막힌 한 수였다. 당내 입지가 흔들리던 김한길은 신생정당의 한계로 고전하던 안철수와 손을 잡음으로써 공동창당인이 되어 당의 전권을 한손에 틀어쥔다. 문제는 그런다고 들어먹을 야당의 정치인들인가 하는 것이다. 야당의 가장 큰 고질적인 문제를 간과해 버렸다. 아니 그런 건 아예 처음부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해야 할까? 그런 거야 상관없이 당장 내가 당권만 가지면 된다.


사람들이 야당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싫어하는 게 아니다. 우스운 것이다. 정해진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부가 있다. 서로 합의해서 만든 당규가 있다. 당내 조직과 구조가 있다. 그런데 깡그리 무시한다. 공천 못받으면 탈당하고, 탈당해서 당선하면 다시 돌아오고, 절차도 규범도 무시한 채 자기 이름값이 자신있으면 아무데서나 가리지 않고 쏟아내고. 저놈들은 맨날 싸운다. 바로 그런 의미다. 공동창당인으로 아예 당의 전권을 장악한 김한길과 안철수조차 그같은 당내 반발은 어떻게 누르지 못했다.


이번 안철수의 탈당과 관련해서 내가 왜 안철수에 그리 혹독했는가. 그런 이유다. 그동안 줄곧 반복되어 오던 고질적인 문제들. 김한길이어도 상관없었다. 손학규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정세균은 오히려 호감이다. 한명숙은 처음부터 기대도 않았었다. 박영선이든, 문희상이든, 누구라도 좋았다.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서 당의 의지를 모아 대안세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자기들끼리 먼저 싸우고 본다. 조경태를 어떻게든 내보내야 한다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이 단일대오를 갖추고 거대여당과 정부와 싸워야 하는 순간에 혼자서 튀어 언론에 전선을 흐트리는 발언을 하고 만다. 어디다 쓰는가.


새누리당이 새정연보다 더 낫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박근혜의 사당이 되어 버린 듯 보이지만 그러나 그런 위기만 벗어나면 최소한 당이 정한 원칙과 규율을 지킬 줄 아는 새누리당이 야당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전투력을 보여준다. 새누리당이라는 당에 대해 새정연은 계파 하나가 나서서 싸운다. 그 계파도 새정연의 주류가 아니다. 아무리 다수인 계파라도 당권을 잡는 순간 소수가 된다. 문재인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친노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최소한 아예 소수는 되지 않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런 최악의 상황에조차 문재인은 최소한의 지지를 유지하며 혁신안을 지탱하고 있다.


문재인이 보다 신경써야 하는 혁신의 내용일 것이다.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는 당을 만들어야 한다. 평소 멱살잡고 싸우더라도 최소한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당론이 정해지면 일단 당장은 따르는 모습을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탈당한 인간들은 돌아볼 것도 없다. 자기가 돌아오고 싶으면 그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절차를 밟아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이름이 아니라 당이다. 개인이 아니라 당이다. 그리고 당의 정체성 또한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새정연이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정당이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정당인가. 맞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보낸다. 선거가 다가오면 연대하더라도 당의 정체성과 다르면 결국 함께 할 수 없다.


체질을 바꿔야 한다. 효율적으로 수권정당으로서 명확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공천이고, 그 다음이 권리당원이며, 그 다음이 당내기구와 당의 규범이다. 당대표직을 걸어야 한다. 대선후보 역시 내던져야 한다. 그 정도 각오 없이는 저 난장판 새정연을 구하지 못한다. 벌써 오래전에 했어야 했다. 혁신안을 관철시키면서 최소한 대선후보 자리 정도는 내걸었어야 힘을 쓸 수 있었다.


등떠밀리면 안된다. 그건 대표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기만 옳으면 옳은 것이 정치가 아니다.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으면 정치를 그만두면 된다. 때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도기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탈당한 이들은 당밖에 연대할 수 있는 야권내 정치인과 정치집단으로 여기는 것이 옳다. 길은 열어두되 먼저 가서 잡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다. 당이야 말로 야당의 정체성이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총선도 대선도 없다. 당을 위해 구성원 개인이 희생하고 양보해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당이 이기지 못해도 나만 괜찮으면. 당에 불리한 것도 나에게만 유리하면. 탈당하고 그리고 복당하고. 여전히 그 꼬라지다.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