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어쩌면 개인으로서는 무척 선량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보자면 아주 서툰 사람이다. 하기는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헤아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기술이란 그저 선량하기만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은 매우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타산적인 경우가 더 많다. 착한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째서 그런 문재인이 마치 권력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탈당이 잇따르며 당이 깨지려는 상황에서까지 2선으로 물러나라는 주위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당대표와 차기대선후보의 자리를 내건다면 국면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충격을 모두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에도 혁신안 통과를 앞두고 재신임 카드를 유용핳게 쓰고 있기도 했었다. 이대로 모든 당권을 내놓고 대선출마까지 포기하며 오로지 혁신과 총선의 승리에만 매진하겠다.
그런데 정치인으로써 무능하다 할 수 있는 문재인이지만 현재 정치인으로써 현실정치에 가장 유효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문재인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게임을 하는데 손가락은 딸리는데 템이 남달라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의 부족한 정치력을 당대표라는 현재의 신분과 차기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위치가 대신해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이 이 두 가지를 먼저 놓아버린다면 문재인이 완성하고자 하는 혁신안은 어떻게 되어 버릴까? 2선으로 물러나서도 여전히 정치력을 발휘하여 혁신안의 완성을 지휘할 수 있다면 그런 고민도 필요없을 것이다.
당장 제 1야당의 당권을 거머쥔 당대표다. 혁신안의 통과로 많은 권한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당대표의 손에 쥐어진 것들이 만만치 않다. 유력대선후보란 혹시라도 만에 하나 잘만 하면 대통령까지 노려볼 수 있는 위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져서 낙선하는 경우라도 대선기간동안 모든 대중의 관심이 각당의 유력대선후보들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기에 대중에 자신을 알리는데도 유리하다.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이 달라진다. 당장 지역구에서도 유력대선후보와 어떤 관계라는 것은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바로 그런 당대표이자 차기 유력대선주자인 문재인이 추진하는 혁신안이다. 어째서 지난 재신임 상황에서 비주류는 정작 당대표 문재인의 재신임에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었는가.
문재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당대표를 내놓고, 대선출마도 포기하는 순간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앞에 놓인 현실이다.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아마 문재인이 당대표로 출마한 이유도 제 1야당인 새정연의 혁신에 있었을 것이다. 계파가 난립하며 해당행위마저 아무렇지 않게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동기는 선한데 기술이 서툴다. 자기가 선하다고 상대도 선할 것이라 지레 기대해 버린다. 주위에 휘둘리고 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 만큼이나 자신의 주위 역시 선할 것이라 기대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지 못하다. 최재성과 진성준은 그런 점에서 문재인 자신의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역을 자처함으로써 문재인의 짐을 덜어준다. 1년만 일찍 그들이 문재인의 측근으로 들어왔다면 과연 어땠을까?
결국은 스스로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제 1야당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게다. 당연하다. 그렇게 혁신안이 싫다고 안에서 흔들더니 이제는 아예 당을 박차고 나가겠다 협박하는 중이다. 당대표에서 물러나라는 것도 바로 혁신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일 것이다. 혁신안이야 말로 문재인이 정치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이다. 안팎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혁신안이 완성되기까지 그는 물러나지 않는다. 자신이 당대표로 남아 있고 유력대선주자로 남아 있어야 혁신은 완성될 수 있다. 선의지만 한 편으로 반드시 선의로만 읽힐 수 없는 역시 정치적으로 서툰 순진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한계지만 유일한 장점이다.
솔직히 대선후보로서 과연 문재인에게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는 나 자신이 보기에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미 말했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은 야권의 모든 표를 모으는데 실패하고 있었다고. 노무현이란 문재인이 물려받은 자산인 동시에 부채다. 더구나 아직 이미지 뿐이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문재인이 가진 정치적인 역량의 부재까지 낱낱이 모두에게 알려진 상황이다. 자칫 이대로 대통령까지 되었다가는 잘해야 노무현 시즌2이고, 최악의 경우는 박근혜 시즌2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문재인일지라도 지금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딱 하나 중요한 과제가 있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만일 문재인이 끝내 혁신안을 완성시키고 총선을 통해 국민들에 선보인 뒤 인정받고 난다면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문재인 자신에게 아직 정치적인 영향력이 남아 있을 때 당의 미래와 정권교체를 책임질 한 사람에게 모든 힘을 밀어주어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을 욕심내는 것은 문재인에게는 무리다. 그 대상이 박원순이 될지, 안희정이 될지, 아니면 손학규가 될지는. 김부겸도 괜찮다. 문재인 자신이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그 한계는 자신에게서 완결되고 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 1야당의 혁신이다. 정의당 수준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과거 개혁신당 수준도 기대하지 않는다. 새누리당보다는 나아야 한다. 새롭게 혁신된 더불어 민주당에서 야당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기대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 한 가지만 바라고 지금껏 문재인에게 기대해 오고 있다. 총선은 물론 대선의 승패가 여기에 걸려 있다. 중요한 순간이다. 부디 잘 버티기를. 괴롭겠지만 당대표의 짐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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