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드러나는 무명의 실체와 음모, 분이와 마주치다

까칠부 2016. 1. 6. 06:29

결국 조선왕조를 창건하기까지 이성계(천호진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이 싸워야 할 마지막 적은 정몽주(김의성 분)였다. 새로울 것도 없다. 실재했던 역사였다. 역사의 사실이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상당한 각색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그러나 정작 역사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역사라고 하는 단단한 뿌리 위에 무협이라는 장식을 분방하게 뿌려 무성하고 풍성한 멋을 그려낸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역사드라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해 주인공들이 반드시 만나고 넘어서야 할 가장 마지막의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이던 적으로써 정몽주가 벌써부터 준비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무척 신선했다. 앞에서는 이성계와 정도전을 안심시킨다. 어차피 취지 자체는 옳았기에 정도전이 추진하려는 토지개혁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자신을 설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남아 있는 한 정도전은 섣부르게 행도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저들을 상대할 준비를 마친다.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반역을 알면서도 왕과 도당에 고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최영에 이어 조민수마저 실각하며 고려의 모든 군권은 이성계 한 사람의 손에 쥐어진 지 오래였다. 당장 자신이 이성계와 정도전의 반역을 알리고 그들을 벌하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전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진실마저 뒤집을 힘을 가진 저들을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성급하고 무모한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할 우려마저 있었다. 충분한 준비가 갖춰지기 전에는 저들을 안심시키고 행동을 자제케 해야 한다. 차라리 올곧은 지조와 신념의 선비라기보다 책사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잠시나마 정도전을 죽음의 위기로 몰고 새로운 왕조의 창건을 좌절시킬 뻔했던 그 존재감 그대로다.


정몽주를 사이에 두고 이방원(유아인 분)과 정도전이 정면으로 부딪힌다. 이방원은 현실주의자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현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이상도 신념도 아니다. 정의도 가치도 아니다. 오로지 힘이다. 힘 뿐이다. 새로운 나라란 바로 그런 새로운 권력이고, 새로운 이상과 질서란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새로운 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뼛속까지 유학자인 정도전에게 정몽주가 가인 학식과 인품, 그리고 유학자로서의 명성과 인망은 감히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몽주가 있어야만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새로운 나라를 완성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이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가치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단지 종속된 수단이며 대상일 뿐이다. 어째서 이방원이 홍인방과 닮았고 하륜과 닮았는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파국은 예정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다.


왕조차도 비밀조직 '무명'에게는 단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왕의 주위에 '무명'과 관련된 인물들이 보이며 이성계를 대상으로 무언가 계략을 꾸미려는 듯하다. 드디어 '척'씨 성을 가진 무사가 등장했다. 곡산이라면 무장 척준경의 본관이며, 장삼봉의 제자와 대결해 그를 죽였다는 고려의 무사 척사광은 척준경의 후손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척사광 본인이라기보다는 단지 척준경을 시조로 모시는 곡산 척씨의 일족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곡산의 척씨가 무명과 연결되어 있다. 장차 이방지(변요한 분)가 이겨야 할 적 가운데 길선미(박혁권 분)의 뒤를 이어 척사광이 추가되려는 듯하다. 정몽주만이 아닌 비밀조직 '무명'을 상대하는데 있어서도 마지막 순간 넘어야 할 벽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우왕의 앞에 나타난 '무명'의 조직원들이 이성계를 상대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면, 정몽주로 하여금 정창군 왕요를 찾아가게 만든 것 역시 '무명'의 계획에 있었다. 정창군의 주위에 그의 총애를 받는 무희가 있었다. 정창군일까? 아니면 무희일까? 중첩된 계획들이 상황을 이성계에게 불리하게 몰아간다. 자신의 발로 '무명'을 따라나섰다는 이방지와 분이의 어머니 연영(전미선 분)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성계를 노린 '무명'의 계획 끝자락에서 분이는 마침내 어머니를 데리고 간 '무명'의 조직원과 만나게 된다. 하필 당시 어머니가 '무명'을 따라나서며 들었던 음어마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운이 좋다. 다시 한 번 '무명'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저절로 분이에게 다가온다. 이방지 역시 길선미를 통해 어머니를 미끼로 무명에 의해 어디론가 유인되려 한다.


다만 한 가지 무척 거슬리고 아쉬웠던 것이 바로 이방지와 분이의 어머니와 관련해서 지나치게 길게 신파조로 늘어지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혁명과 토지개혁을 위해 급박하게 움직이고 서로 칼과 칼이 부딪히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그 장면에서만 눈물을 쥐어짜며 슬픔을 강요하고 있었다. 물론 '무명'과의 더 극적인 만남을 위한 장치였으리라 생각한다. '무명'과 만나고 스스로 자식까지 버리고 '무명'으로 떠난 어머니를 만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가쁜 박동소리에 익숙해 있는데 갑자기 느리게 천천히 걸으라 한다. 너무 익숙해서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풍경들이다.

 

벌써부터 고려의 기득권인 권문세족은 한참 뒤로 물러나 있다. 이색마저 이성계의 위세와 정도전의 계략에 밀러 위축된 상태다. 이제 적은 고려의 구세력이 아니다. 고려의 국왕마저 농락하는 어둠속의 비밀조직이다. 정몽주마저 그들의 계략에 정창군을 찾아가 그를 만난다. 길선미에 이어 척가의 고수도 등장한다. 더 크고 더 위험한 싸움이 그들을 기다린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그들이 더 크고 더 강할수록 드라마는 재미있어진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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