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의외로 흔히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지 않았다. 유일하게 주목할만한 부분이라면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기자로 전직했던 부분이랄까? 성취동기가 무척 강하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든, 아니면 거꾸로 자기에 대한 열등감이든. 그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자기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먼저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더구나 연합뉴스다. 연합뉴스의 성향이 어떠한가는 모두가 안다. 사실상 관영언론이다. 정부친화적 언론이다. 그런 언론에서 정부가 하려는 일에 반대하는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우호적일 리 없다. 최소한 있는 그대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해 줄 것이라는 기대조차 무리였었다. 그런데 어째서 연합뉴스 기자에게 그 사실을 흘렸을까?
이종걸 원내대표가 아니면 자기가 끝내겠다.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이만큼 힘이 있다. 내가 이만큼 존재감 있다. 그러므로 나를 봐달라. 나를 알아달라. 필리버스터랍시고 단상에 올라 흘린 눈물도 그와 이어진다. 지나친 격정은 곧 자기도취다. 자기의 감정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신들에 표를 달라. 무슨 자격으로? 지금 그 자리에 어떤 자격으로 올라가 있는가? 그래서 더민주의 총선승리를 위해 무어라도 했노라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모든 것이 그로 인해 어그러지고 말았다. 우리는 졌다. 어쩔 수 없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질서정연하게 퇴각한다. 먼저 알려야 했다. 그리고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음을 기약했어야 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이제 졌으니 우리는 도망친다. 너희들도 알아서 따라오라. 그마저 지휘부가 아닌 적군에게서 먼저 듣고 만다. 너희는 졌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백기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너희는 버려졌다. 그런데 어떻게 지휘관을 믿고 다음을 함께하겠는가?
지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 삼십육계의 마지막 주위상은 그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 바로 포기하고 도밍차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은 이길 수 없으니 계획을 세워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음 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반격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의 전력을 보존하여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 그마저 더민주 지도부의 의도라기보다는 박영선 개인의 개인플레이의 결과로 그렇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면 이쯤에서 뒤로 물러서야 한다. 공천은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비대위에서라도 몸을 빼야만 한다. 내가 잘못했다. 자신이 잘못판단했다. 그래서 당과 지지자들에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아지겠지. 이제야 생각났다. 박영선이 누구를 통해 정계에 들어왔고 누구의 계파에서 정치를 배웠는가. 만일 더민주 지도부가 박영선에게 유의미한 징계를 내리지 않는다면 나는 철저히 더민주 지도부를 비토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밀월은 끝났다. 더민주는 적이다.
지지자를 적으로 돌렸다. 지지자를 외면하고 저버렸다. 명분은 중도층이다. 외연이다. 그런데 그 외연이 지지자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지도 않는 정치를 단지 정당에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해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의무가 있다.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책임이 있다. 집토끼인가. 때되면 잡아먹고 마는 가축인 것인가.
우는 모습을 보고 한 번 방송을 껐었다. 표구걸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방송을 껐었다. 변비가 심했던 모양이다. 삼년치 숙변을 푹 익혀 그동안 고생한 동료의원들에 뿌리고 말았다. 그동안 밤을 새워가며 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던 지지자들에게 뿌리고 말았다. 지금 쓰면서는 욕을 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점잖은 사람이 아니다. 구로동 떠난지 오랜 것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박영선의 지역구가 예전 내가 살던 곳이다.
그동안의 감동이 한순간에 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똥은 삭히면 거름이라도 된다. 이건 삭혀봐야 독밖에 안된다. 먹이감을 던져준다. 그동안 안정적이던 당에도 분란을 일으킨다. 차라리 국정원의 사주를 받고 위장입당한 것이라면 이해하겠다. 마음껏 욕을 내뱉는다. 가장 혐오하는 정치인이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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