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 - 이번에는 강모연의 전장에서, 유시진 달리다!

까칠부 2016. 3. 25. 04:47

군인만 위험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평화로운 시대이기에 더 죽음과 가까운 것은 군인이 아닌 의사일지 모른다. 유시진(송중기 분)의 활약은 픽션이지만 강모연(송혜교 분)이 겪는 위험은 지금 당장도 어디선가 일어날지 모르는 사실이며 현실이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치명적인 전염병에 감염되고 만다. 울부짖는 대신 오히려 침착하게 모두를 안정시키고 더이상의 감염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농담마저 주고받는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군인 유시진이 임무를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하듯 의사로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자신들에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두렵지 않을 리 없지만 이마저 의사로서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과 사명의 일부다.


어쩌면 바로 전회에서 강모연이 윤명주(김지원 분)에게 물었던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총으로 무장한 다수의 범죄조직원들과 권총 한 자루만으로 맞서며 강모연을 의사로서 일으켜세우려던 군인 유시진에 대한 대답이었을 수도 있다. 유시진이 군인이듯 자신 역시 의사였다. 유시진에게 군인으로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이 있고 지켜야 하는 명예와 사명이 있듯 의사인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죽음과 싸우는 자신을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군인인 유시진이 먼저였다. 그만큼 의사인 자신에게 지워진 양심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이 무겁다.


그 순간만큼은 그저 사랑하는 남자에게 기대려던 나약한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스로 존엄한 인간이며 의사였다. 바로 이렇게 균형을 맞춘다. 가장 기대고 싶을 때 오히려 농담처럼 얼마전 서대영 앞으로 보내온 소포에 대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같이 농담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유시진은 너무 심각하다. 울고 싶은 것은 자신일 텐데 지금 이 남자 앞에서는 눈물도 함부로 보일 수 없다. 그다지 길다고도 분량이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이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강모연이 유시진의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째서 자신은 의사로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와 같은 악당마저 살려야 하는가. 살아나면 반드시 지금까지 그래왔듯 더 많은 사람을 불행케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결국 아구스따위를 쏘았던 어린 소녀가 살인자가 되고 만다. 아구스가 정말 당장 죽여야 하는 큰 죄를 지었다면 그것을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이런 어린 소녀여서는 안된다. 의사인 자신 역시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였다면 법이 그 역할을 했을 테고, 우르크와 같이 정상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유시진과 같은 군인이 그 책임을 대신하기도 한다. 역설이기도 할 것이다. 죽이는 사람이 있기에 살리는 사람도 있다. 만일 유시진처럼 죽여주는 사람이 없다면 함부로 살릴 수도 없다. 유시진이 말한 그대로다. 그래서 의사도 군인도 존재한다. 한 사회 안에 공존한다.


이치훈(온유 분) 역시 의사로서 드라마의 주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의사로서가 아니었다. 당시 강민재(이이경 분)은 의사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아니었다. 구조대의 구조를 필요로 하는 피구조자였다. 의사는 구조전문가가 아니다. 치료전문가다. 구조는 구조대가 한다. 구조대가 피구조자를 구해오면 그때부터 의사로서 할 일이 생긴다. 구조대가 의사를 동반하는 것은 구조 도중 혹시 마주치게 될 환자들을 대비해서다. 오히려 섣부른 정의감과 인정으로 무모하게 손을 내밀어 강민재를 구하려더가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뻔한 것을 지적한다면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민재를 발견했고, 그를 구하고자 했으며, 결국 모두에게 강민재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구조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난받아야 하는가.


의사는 신이 아니다. 같은 본능과 욕망을 가진 인간이다. 무서우면 도망친다. 힘들면 주저앉기도 한다. 혼자 숨어서 울기도 한다. 당연히 사랑도 한다. 오히려 이기적이기에 다른 사람의 본능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기를 위한 대상으로서만 상대를 인식하며 강요하려 한다. 의사는 결코 환자를 버려두고 도망쳐서는 안된다. 당장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환자를 지키며 죽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치훈에게도 지진이 나고 얼마간 연락이 안 된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며 두려워하는 약혼녀가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간절히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그때 그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강민재를 구하려다가 이치훈 자신이 다치거나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지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우르크 현지에서 환자를 치료할 의사는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터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오로지 자기만을 보려 하니까. 강민재의 캐릭터가 원래 그랬었다. 이것은 의사 이치훈에게 주어진 시련이다. 인간의 욕망을 알지 못한다. 때로 비겁하고 때로 비열해지는 인간의 추악함을 알지 못한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철이 없다. 두려움을 모르면 진정한 용기를 가질 수 없다. 인간의 추악함을 모른다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 수 없다. 과거 이치훈의 도움을 받았던 현지의 아이가 이제는 오히려 이치훈을 위로한다. 선의조차, 정의조차, 약심조차 어쩌면 개인의 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훌륭한 의사는 성자가 아닌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열심히 잘 치료하는 사람이다.


유시진과 강모연, 그리고 서대영과 윤명주 두 커플 사이에 놓인 장벽이 사라지자 관계는 급진전을 이룬다. 그보다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화날 정도로 정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질투는 필수다. 적당한 위기감이 관계를 북돋는다. 별 것 아닌 소개팅에 두 커플 사이에 위기가 찾아온다. 대수롭지 않기에 강모연과 윤명주의 질투 또한 대수롭지 않게 끝나고 만다. 다만 상징이다. 이렇게 두 커플의 사이는 다른 연인들처럼 깊어졌다. 아주 짓궂다. 그러고 나서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는 함정을 파놓는다. 과연 남겨진 남자들은 어찌할까.


과거 소개팅 상대로부터 날아온 소포를 향해 두 남자가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스스로 수술실에 격리된 두 여자를 위해 다시 두 남자는 필사적으로 달린다. 비극은 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예고편은 보지 않는 것이 좋았다. 또 하나의 위기가 깊어진 두 사람의 사이를 시험한다. 쉽게 끝내지는 않는다. 아직 드라마는 많이 남아 있다. 시청자는 물론 좋다. 단지 여전히 사랑만 할 수 없는 두 커플의 앞날이 안타까울 뿐이다. 남은 시간이 그들이 겪어야 할 시련이다.


과연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항상 모든 명령이 정의롭지는 않다. 국가란 항상 정의로울 수는 없다. 군인의 임무 또한 항상 명예로울 수는 없다. 강모연이 의사로서 시험받았듯 유시진 또한 선택해야 한다. 군인으로서의 명예인가, 아니면 군인으로서 따라야 하는 명령인가. 아구스와의 악연이 더해진다. 진영수(조재윤 분)를 구하며 결국 한 번은 충돌하고 만다. 명령으로 인해 아구스를 이대로 남겨두고 돌아서야 한다. 악연은 다시 악연으로 돌아온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재미있을만한 것들은 가리지 않고 다 집어넣는다. 꽉꽉 눌러담은 것이 질서는 없지만 하나하나가 맛깔나다. 재미있으라는 드라마다. 도저히 본방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력까지 느낀다. 봐야만 한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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