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성에 갇힌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는 용감한 왕자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가지는 판타지이며 로망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를 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어렵고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도우려 와주기를 바란다. 유시진(송중기 분)과 강모연(송혜교 분) 사이에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갈등요인을 지우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강모연을 구하기 위해 유시진은 스스로 군을 나선다.
지금까지 유시진은 단지 군인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에 소속되어 국가의 명령을 듣는다. 강모연과 데이트하던 도중에도 일단 명령만 내려지면 주저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주어진 임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벌써 몇 번이나 그렇게 강모연은 유시진이 떠난 빈 자리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다시 그렇게 남겨질지 모른다. 홀로 버려질지 모른다. 강모연이 지금껏 망설여 온 이유였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역시 단 한 사람이어야 한다. 동맹국인 미국의 국가적인 목적을 위해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의 범죄마저 모른 척 눈감아야 한다는 부당한 명령은 그를 위한 복선이었다. 과연 명령이라면 그것이 부당하고 불합리해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아마 그래서 유시진의 아버지도 벌써부터 유시진을 위해 그리 동기를 부여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군인의 길에 때로 진급보다 영창이 더 명예로울 수 있다. 진정 군인으로서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려 한다면 그를 배반하는 명령에 대해서는 기꺼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징계든 처벌이든 그를 위한 대가라면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사람을 구하려 한다. 군인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한 남자로서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었다. 군인 유시민의 손에 들린 총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군인인 유시진의 직업을 강하게 비판하던 강모연 자신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유시진 혼자였다. 어떤 도움도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군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령관(강신일 분)의 명령 아닌 명령에 의해 원래 있던 자리에 남김없이 정리하여 두고 온 터였다. 잠시지만 그는 군인이 아니었고 군인이어서도 안되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르 부정하는 듯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순수한 군인 유시진이 남게 되었다. 명령도, 조직도, 체계도 아닌, 오로지 유시진이라는 인간이 가지는 군인으로서의 순수한 명예와 자존만이 남는 것이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 나선 것인데도 오히려 유시진에게서는 두려움이나 간절함보다 분노가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의 눈앞에서 납치되어 가는데도 막지 못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 그리고 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군인으로서 남자로서 유시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예이고 자존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마초스럽다. 하지만 남자다. 남자란 누구나 때로 마초가 된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서인가가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분노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명예로 자존으로 삼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군인이라는 자신의 정체마저 뒤로 한다. 군인으로서 충실했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그의 결심을 말해준다. 군복을 벗고 아무것도 없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나라에서 지급한 자신의 총이 아닌 암시장에서 구한 총을 들고 기꺼이 과거의 인연에 도움을 구한다. 유시진이 반들시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을 알기에 강모연은 당당할 수 있다. 공주님이 왕자님이 구하러 오기를 기다린다. 어느때보다 남자의 얼굴이 되어 유시진은 자신의 여자를 구하려 달려간다.
하여튼 곳곳이 지뢰밭이다. 유시진과 강모연만이 아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서대영(진구 분)과 윤명주(김지원 분) 사이에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거리마저 지워 버린다. 윤명주의 상태가 악화되며 위기가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를 위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서대영의 처지가 지금의 유시진과 닮아 있다. 강모연을 구하기 위해 유시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자 한다. 오히려 죽음과 마주해 있기에 김지원의 고백이 절절하게 들린다.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사랑하는 남자와 아버지의 사이가 힘들고 괴로워도 그래도 기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자만을 챙기려는 자신의 이기심을 미안해한다.
송상현(이승준 분)과 하자애(서정연 분) 역시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더욱 서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었다. 하자애의 진심이 드러나며 송상현이 도리어 밀당을 시도한다. 이치훈(온유 분)의 경우는 오히려 전염병이 계기가 되어 의사로서 자신감을 되찾는가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신혼다운 달달함으로 드라마의 당도를 높이고 만다. 그동안 자신의 약혼녀에 대한 애정표현을 어떻게 자제해 왔던 것일까. 아직 다니엘 스팬서(조태관 분)와 리예화(전수진 분)의 사이는 크게 진전이 없다. 더 나갈 것도 없이 이미 그만한 사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끝이 다가올수록 그동안 비틀리고 꼬였던 관계나 사연들이 풀리기 시작하며 미뤄두었던 달콤함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더욱 절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위기가 그같은 한가로운 분위기와 대비된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싸우고 있었다. 더 큰 절망을 이겨내고 있었다. 해피엔드는 희망이다. 지금을 견디고 버티면 언젠가는 좋은 순간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범죄조직에 납치되었어도, 납치된 것을 지켜보기만 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리고, 혹은 자신으로 인해 더 큰 고민에 빠져 있어도.
아무튼 뜨거운 뙤약볕에 들이키는 한 잔 얼음물과 같은 한 마디였을 것이다.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좀 생기면 어때? 당신의 조국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바로 그가 유시진인 이유였다. 단 한 사람을 위해서. 그 한 사람이 있는 조국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곳이다. 굳이 언론등을 통해 알려진 스포일러가 아니더라도 이후 유시진의 선택을 짐작하게 한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되었다. 지기키 위해서라면 심지어 국가와도 맞설 수 있다. 내가 사는 조국이 그와 같은 조국이기를 바라본다. 남자인 때문이다. 지킬 수 있기를. 반드시.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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