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것은 실제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것은 실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심이기에 오히려 도망치고 싶어진다. 지금껏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왔던 것들이 실체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래도 좋은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제 마주치게 되는 고민일 것이다. 차라리 실제가 아니고 진심도 아니라면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다.
물론 강모연(송혜교 분)은 아직 알지 못한다. 유시진(송중기 분)이 과연 자신을 구하러 오기 위해 어떤 각오 어떤 결심을 해야 했었는지. 구하러 오겠다 했으니 믿었을 뿐이었다. 진짜 구하러 나타났으니 그저 반갑고 고마울 뿐이었다. 더구나 유시진의 동료들까지 함께였었다. 자신을 구하러 오기까지 유시진이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떤 각오까지 해야 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위병소마저 위력으로 돌파하려 했었다. 자칫 자신이 몸담았던 군을 적으로 돌려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감수하려 했었다. 하지만 아직 모르기에 강모연에게 현실이란 자신의 눈앞에서 실제 일어난 사실들에 지나지 않았다. 유시진이 살아가는 세계를 비로소 실제 몸으로 겪었다.
사람이 죽었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아주 잠깐 총소리가 바쁘게 들린다 싶더니 어느새 조금전까지 살아서 자신을 위협하던 범죄자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핏속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았던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를 이번에는 유시진이 자신을 안은 채 몇 번이고 쏘아 살해하고 있었다. 범죄자들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에 두른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유시진은 자신의 어깨를 쏘았고, 자신을 향하는 아구스의 총구를 유시진이 직접 몸으로 막고 있었다. 이런 곳이었는가. 유시진이 겪고 있는 현실이란 이런 것이었는가. 차라리 현실감조차 없다. 그런 유시진을 자신은 감당해야 한다. 자신은 그런 유시진마저 사랑해야 한다. 그나마 유시진이라는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시작될 수 있는 고민이다. 과연 자신은 이 남자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관념이 아닌 사실에 집중한다. 그것은 어차피 만일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올지 안올지 모르는 미지의 미래다. 지금 여기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이 유시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유시진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 또한 그런 유시진을 필요로 한다. 유시진과 함께 있고 싶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 얼마전 윤명주(김지원 분)가 들려주었던 대답에 스스로 이르게 된다.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잔인하고 냉혹한 살인자에서 인간으로 돌아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적이었고, 증오했지만, 그러나 한때 서로의 등을 맡기던 전우였었다. 혼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를 자신의 손이 위로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강모연의 대답 역시 현실의 소소한 사실들로 대신하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수다와 당연하면서 평범한 바람과 요구들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한다.
사실 마지막회인 줄 알았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르크를 떠날 준비를 하는 혜성병원 의료팀의 모습을 보며 이제 드라마가 끝나는가보다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떠날 준비나 끝나는 준비다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아구스와의 마지막 대결은 의외로 짧게 끝났다. 하기는 액션드라마가 아니다. 범죄조직과의 살벌한 전투는 드라마가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그것도 최정예라 일컬어지는 특전사 가운데서도 엘리트요원들과 일개 범죄조직과의 싸움이다. 엄격하고 혹독한 규율속에 단련된 군인에 비해 오로지 탐욕만을 위해 무기를 든 범죄조직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제압은 빠르고 간단하다. 그리고 나머지다. 큰 전투를 치른 만큼 잠시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한다. 우르크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의료팀의 모습과 이제까지 서로 맴돌기만 하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정확히 겹친다. 그러면 이제 드라마는 한국으로 돌아온 유시진과 강모연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게 될 것인가.
국가 아래 국민이 아니다. 국가를 위한 수단도 대상도 아니다. 국민이란 개인이다. 살아있고 욕망하는 모든 주체들이다. 그 하나하나의 사정과 사연들이 모이고 엮이며 거슬러올라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유시진의 간절함이 자신들의 동료를 돕고 싶은 부대원들의 마음과 만난다. 직급상으로는 상관과 부하였지만 이미 적지 않은 시간 삶과 죽음을 함께 해 온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런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사령관 윤길중(강신일 분)은 사령관이라는 자신의 자리까지 내건다. 시작인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결국 동료이고, 친구이고, 조직이며, 나아가 국가다. 구하는 것은 군이 알아서 했으니 이제부터는 행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마지막이 핵심이다. 자칫 군대미화로 흐를 수 있는 부분을 무게감은 그다지 없지만 대통령이 등장하여 문민통제의 원칙을 확인해 준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행정부가 진다. 국가원수인 자신이 진다.
이치훈(온유 분)과 원주민 꼬마와의 서로 엇갈리는 대화는 한 편으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선의였다. 돕고자 하는 마음 자체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듣지 않았다.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지레짐작하여 일방적으로 베풀려 할 뿐이었다. 어쩌면 소외된 이들을 돕고자 하는 노력들이 쉽게 빠지곤 하는 함정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더 간절한 것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할 수 있는 것들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그러고보면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판타지 역시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일방적인 요구와 바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도련님이다. 세상을 모른다. 그가 보는 세상은 단지 온실의 유리 너머로 보는 세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순수하고 그래서 선량하다. 위험하다. 속기도 타락하기도 너무 쉽다.
돌아가지 않는다. 일부러 비틀거나 꼬지도 않는다. 하나의 고비를 넘겼으면 바로 다음단계다. 한 번의 힘든 위기를 겪었으니 그만큼 또 한 걸음 진전한다. 그러고도 남은 이야기가 있다. 보여줄 것들이 남아 있다. 남은 것은 강모연의 결심이었다. 강모연이 결심하며 유시진과 강모연, 서대영(진구 분)과 윤명주 커플의 평범한 사랑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 질투도 하고 사소하게 다투기도 한다. 송상현(이승준 분)과 하자애(서정연 분) 사이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오랜 짝사랑도 이제 끝이 보이는 듯하다. 마치 첫출근처럼, 마치 에필로그처럼 혜성병원 의료팀들은 다시 모여 병원으로 출근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준비다.
애국심에 대해 묻는다. 강모연 자신인가, 아니면 조국인가. 유시진은 대답한다. 조국은 질투하지 않는다. 강모연이 먼저라 말해도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조국이란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모연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조국을 지키는 것이다. 강모연 안에 조국이 있고 조국 안에 강모연이 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것이 조국을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차라리 강모연은 체념한다. 질투하기에도 너무 절절하다.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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