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누군가 손에 다이나마이트 다발을 들고 걷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대응과 같은 것이다. 어차피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릴 생각이 없으니 모두는 마음놓고 지켜봐야만 할까? 아니면 혹시 모를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해야 할까? 잠시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위험해 질 수 있다.
실제 악의를 가져서가 아니다. 비행기를 타면서 가방에 총을 넣어두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총구를 겨눌 생각이 전혀 없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잠시잠깐의 오판으로도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반드시 악의를 가져서가 아니라 설사 아무런 악의없이도 잠깐의 실수만으로도 주위를 위험하게 만들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밤늦은 시간에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솔직히 남자인 입장에서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덩치큰 남성이 썩 달갑지는 않다. 아주 어렸을 적 무심코 골목길을 걷다가 웬 미친 인간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은 적이 있었다. 미친 듯 도망쳐야만 했었다. 대부분의 남성은 대부분의 여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우월하다. 대부분의 남성은 마음만 먹으면 대부분의 여성을 제압하고 위해를 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은 아무런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말하면 그것이 통하겠는가.
당장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이 밤늦게 다니다 미지의 남성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 가르치겠는가. 하기는 어떤 남성은 그러더라. 그런 경우에도 딸과 여동생들에게 남성을 마냥 불신하지는 말라 가르치겠다. 혹시라도 아내가 남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혐오를 가르칠까 걱정된다. 얼마나 남성과 여성의 거리가 벌어져 있는가. 남성 스스로 더이상 여성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있다. 현실의 대부분의 남성들은 당연하게 딸과 여동생더러 다른 남성을 두려워하라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다른 여성이 자신을 두려워할 가능성을 인정한다. 밤늦은 시간에 우연히 여성과 마주치면 그래서 때로 미안해지기도 한다. 혹시라도 무섭지 않았을까.
남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을 보호하는 사회시스템은 때로 너무 무력하게 틈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경찰이 없다. 공용화장실에도 경찰이 상주하지 않는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데 혼자서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어야 한다. 사회의 시스템이 여성을 완벽히 지켜준다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법이, 제도가, 권력이 자신을 지켜줄 수 없음을 안다.
한 가지 또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강력범죄에 있어 여성이 대상이 되는 비율에 대해서다. 전체 범죄에서 남성이기 때문에,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는 비율을 따로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성범죄가 중요한 근거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정해서 일어난다. 남성이었으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들도 있다. 신체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 쉽게 여성을 범죄에 노출시킨다.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의 입장에서 그것은 단지 불편함일 뿐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어쩌면 자신이 희생자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공포 앞에 이성과 논리를 이야기한다. 합리를 이야기한다. 자기도 믿지 않은 이 사회의 완결성을 주장한다. 남자들 욕먹는 이유가 있다. 속이 너무 좁다.
그냥 길가다가 머리 스포츠로 깎고 검은 양복에 어깨 넓은 아저씨들만 만나도 움찔 길을 비켜주고 만다. 아무것도 아닌데 문신만 얼핏 옷밖으로 보여도 왠지 긴장한다. 남자라고 다르지 않다. 하물며 일상을 위협에 노출되어 살아야 하는 여성이다. 남성은 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 가지 사실만 인정하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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