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부러웠다. 새누리당에 비하면 그동안의 1야당은 그냥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체계도 없고 질서도 잡혀 있지 않았다. 제각각 중구난방 떠드느 계파보스들의 이해에 따라 정체성마저 오락가락했다. 그에 비하면 새누리당의 시스템은 얼마나 세련된가. 그걸 또 만든 당사자가 날려먹었다는 게 웃기는 거지만.
괜히 젊은 층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가 늘어났던 것이 아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어느 정당이 더 리버럴하고 더 선진적인 정당인가 하면 외형만 보았을 때 답은 명확했다. 나이까지 더 많았다. 그냥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며 당의 구조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인적쇄신에 성공한 정당이 바로 더민주였다.
비록 총선을 앞두고 중앙위의 삽질로 공천과 관련한 혁신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당헌과 당규가 남아 있다. 당헌과 당규마저 멋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 이상 - 그마저도 당헌과 당규로 인해 불가능하다 - 결국 앞으로도 혁신안에 따른 새로운 당헌과 당규를 따라야만 한다. 아쉽고 모자른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전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들까지 추가되었다. 젊은 층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있는 인물들이 대거 합류하며 당의 색깔까지 바꾸었다. 지지할 맛이 나는 정당이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 수준에서 혁신안에 따른 당헌과 당규가 제대로 지켜진다는 전제애서 더민주는 민주주의 정당으로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보다 몇 걸음 더 앞서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합리적인 체제에 의해 굴러가는 제대로 된 정당이 되어가는 듯하다. 만일 박지원이 당시 문재인을 꺾고 당대표가 되었다면? 국민의당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전히 나는 1당을 지지하기를 꺼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쪽팔리다. 저런 정당을 지지한다고 어디 가서 말하기가. 말 많은 내가.
덧붙여 말하자면 그동안 1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패권주의가 아니었다. 윤여준도 아마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아예 당권을 한 손에 꽉 쥐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가지는 집단이 없었다. 적당한 나눠먹기가 용납되었다. 박지원이 바라던 것도 그것이었다. 김한길이 바랐던 것도 그것이었다. 재작년 연판장 파동 역시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팔로우십이 없다. 리더십이 없다. 하지만 명확한 시스템이 있다면 책임은 자연스럽게 가려진다. 권한에는 명분과 함께 책임이 붙는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혁신안에 반발하여 딴살림을 차려 나간 인사들이다. 당이 조용하다. 총선기간은 물론 총선이 끝나고 나서도 다른 당들에 비해 쥐죽은 듯 조용하다. 그동안 1야당의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이라 할 수 없지만 계기는 되었다. 문재인이 당대표가 된 결과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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