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또 오해영 - 오해영의 일갈 '어디서들 사랑을 배웠길래 그래?'

까칠부 2016. 6. 22. 04:59

원래는 자기가 들었어야 하는 말이었다. 자기를 향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망하게 해도 좋다. 거지로 만들어도 좋다. 그러나 때리지만 말아달라. 맞아서 멍든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프다. 만일 자기가 그날 모진 말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지금 보고 있는 이 모습을 자기를 위해서도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업이 망하고 거지는 커녕 죄인이 되어 갇힌 자신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주었을 것이다.


질투다. 단지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겨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이다. 자기가 가져야 했을 것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가 누려야 했었을 것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가 잃어야 했던 너무나 소중한 것들에 대한 분노였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자기가 먼저 손에서 놓아 버렸다.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진정으로 미운 것은 박도경(에릭 분)이 아니었다. 진정 그 순간 한태진(이재윤 분)이 원망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보이지 않는 자신을 향해 화낼 수 없기에 눈에 보이는 박도경에게 그 화를 돌린다. 모든 것이 박도경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대책없이 무모하다. 대책없이 낙천적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 여겼던 예쁜오해영(전혜빈 분)이 오히려 그 긴 세월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그냥오해영(서현진 분)을 의식하고 질투해 왔던 이유였다. 아마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먹여 살리면 된다. 아예 가진 것 없는 빈털털이가 되더라도 자기가 아직 일할 수 있으니 자기가 데리고 살면 된다. 박도경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면서도 전혀 어머니(김미경 분)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설거지거리까지 모두 남긴 채 도시락만 싸들고 박도경을 웃으며 만난다. 도대체 화가 난다. 한태진은 어쩌자고 이런 여자를 그리 쉽게 포기하고 만 것일까.


강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다. 의존하지 않는다. 박수경(예지원 분)이나 오해영이나. 박도경의 연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던 예쁜오해영과는 달리 박도경의 동정마저 오해영을 위축시키지 못한다. 자기는 그냥 자기다. 아빠 없이도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 대한민국이 아니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먼 다른 나라에서 혼자서 아이를 기르며 살아갈 수 있다. 박수경은 여전히 누나였다. 이진상(김지석 분)은 그냥 동생의 친구였다. 남동생이었다. 관계가 역전된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아오던 남녀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다. 남자답다 여기던 모습들이 그저 편협하고 이기적인 한심한 몰골들로 바뀌고 만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도, 남자로서의 책임 앞에서도 그들은 솔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하다.


약해서 오히려 강하다. 약한 자신을 인정한다. 못난 자신을 인정한다. 솔직해진다. 자신의 잘못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대가를 치른다. 책임을 진다. 숨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낯간지러운 행동도 곧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말없이 사랑하는 여자의 책상에 꽃을 두고 가고, 서운한 투정 몇 마디에도 바로 행동으로 그녀의 바람대로 따라준다. 그래서 오해영은 끝까지 박도경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사업이 망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져도 사람까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박도경도 강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남성들에게 보내는 여성들의 경고장이다. 


"어디서들 사랑을 배웠길래 그래?"


여성의 사랑은 남성의 사랑에 딸린 부속물 같은 것이 아니다. 남성의 사랑을 위한 보상 같은 것이 아니다. 남성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면 여성은 일방적으로 그 사랑에 감동한다. 아무리 상처주어도. 아무리 그것이 모욕적으로 들려도. 끝내 자신을 떠나더라도. 자신을 떠나게 하더라도. 그러나 사랑이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진심에서 한 행동이니까.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내가 한다. 당신이 아니라.


사업이 망하고 빈털털이가 된 모습에 실망해 떠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어야 한다.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떠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사랑이 거기까지인 것이다. 한태진이 멋대로 지레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자기는 사랑할 것이며 자기 방식대로 사랑할 것이다. 자기를 거부했다. 자기를 부정했다. 자신의 사랑을 부정당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다. 그런 한태진을 용서할 수 없다. 


자기를 망하게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지켜보아야 한다. 자신을 원망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애원하는 모습을 끝까지 견뎌야 했었다. 가장 큰 징벌이다. 무엇보다 자기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사랑했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들어야 한다. 급박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오만한 만큼 가장 여리고 예민한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오해영이 그랬던 것처럼 한태진 역시 오해영으로부터 자신을 부정당했다.


어쩌면 뜻밖의 반전이 가까운 곳에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소심하다. 겁이 많다. 그만큼 불안하다. 평정심을 잃고 크게 사고를 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장회장으로부터 경멸당한다. 한태진 앞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낸다. 만일 드라마가 해피엔딩에 이르려 한다면 장회장(강남길 분)이라는 거물의 분노를 넘어야 한다. 그 열쇠를 바로 한태진의 친구가 쥐고 있다. 어떤 원망도 미움도 남지 않아야 진짜 해피엔딩이다. 한태진의 질투가 마침내 폭주하기 시작한다.


오해영이 박도경의 어머니 한지야를 만난다. 아들을 사랑하는 지독한 모정과 물질을 쫓는 속물의 본성이 지독한 올가미처럼 오해영을 옭아맨다. 예쁜오해영이 거쳤던 과정이다. 하필 그날 예쁜오해영과도 처음으로 화해하고 밥까지 같이 먹는다. 질투마저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그만큼 긴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도경으로부터 간절히 듣고 싶었던 한 마디를 마침내 함께 쓴 우산 아래서 듣는다. '사랑해'. 벌써 한 주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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