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어느 나라에 대단한 권력자가 있었다. 하루는 누군가 찾아와서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올리고는 아름다운 딸과 값비싼 선물을 바쳤다. 권력자는 바로 끌고나가 목을 베라 시켰다.
"지나치게 공손하고 귀한 선물을 앞세우는 자는 반드시 뒤로 꿍꿍이를 감추고 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이번에는 일부러 먼저 찾아가지도 않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도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권력자는 바로 그마저 그 자리에 베어버리라 시켰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건방지다!"
가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송인들의 말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빈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른바 '프로불편러'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이야기다.
아무리 솔직해도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 경우가 없다. 시청자를 우습게 여긴다. 그래서 무난하게 아무도 거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시청자를 속이고 있다. 가식적이다. 진실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 뜻인가. 자신들이 바라는 아무도 거스르지 않는 그 모습이야 말로 진실한 자신이어야 한다.
사실 역사상 어지간히 지독한 독재자라도 굳이 다른 사람의 겉과 속까지 모두 일치시키려는 무모한 시도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위세력이 필요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든든한 아군이 필요했다. 거스르는 자는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내쫓는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자신에게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많은 독재자들이 더 많은 더 강한 폭력을 소유하려 노력한 이유였다.
겉안이 아니다. 속까지 같아야 한다. 겉으로 보여주는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평소 하는 생각이나 가치관까지 모두 같아야 한다. 어째서 가능한가? 독재자는 아무리 강해봐야 결국 소수다. 그러나 대중은 다수다. 소수의 연예인을 대상으로 다수의 대중이 폭력을 휘두른다. 파쇼란 대중독재다. 대중이 권력이 된다. 고도로 발달한 통신과 교통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대중이라는 구조가 실재하는 힘으로써 실체를 갖는다. 멀리는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 가까이는 독일의 나치즘까지. 아니 현대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그같은 대중권력과 폭력이 잠재해 있는지 모른다.
내가 원하니까. 대중이 원하니까. 대중이 정의니까. 대중이 그렇게 지시하니까.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까지 바꿔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이냐 양심까지도 바꿔야만 한다. 그것을 내면화해야 한다. 그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어린아이들까지 가정에서부터 철두철미하게 세뇌시킨다. 아예 평소에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도록 길들이고 훈련시킨다. 북한이다. 독재자의 권력과 대중의 폭력이 만난다. 다만 지금의 경우는 소수의 권력자가 배제된 오로지 대중의 폭력에 의한 강제고 억압이다.
침대를 만든다. 커도 죽인다. 작아도 죽인다. 딱 맞게 만들어준다. 대중의 폭력이 개인을 정의롭게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권력이다. 권력이란 정의다. 폭력과 정의가 만나면 권력이 된다. 자신이 가진 권력에 민감해진다. 확인하고 싶어진다. 희생양을 찾는다. 대중이 그의 편을 들어준다. 엄격하고 디테일한 도덕률은 그렇게 개인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야 말로 불특정한 다수의 익명들이 권력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지 텍스트만으로 텍스트를 양산할 수 있는 대중이 폭력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한다. 자신이 정의로우을 확인하려 한다. 아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이다. 오로지 소수의 개인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를 때만 자신의 권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일 수 있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조금 예의없고, 조금 경우없고, 조금 경솔하기도 하고, 조금 거칠기도 한 그런 사람이다. 모자르기도 할 테고, 어리석기도 할 테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현실이란 모나고 비틀리고 일그러진 그런 풀과 돌과 나무즐로 이루어진 숲이다. 사람이 아니다. 단지 대상이다. 그 대상에 대해 대중은 무엇을 투사하고 있는가.
왜 불편한가. 개인 대 개인인가. 그렇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자신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한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다수의 동의를 얻으려 한다. 다수의 동의를 유도하려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짜릿한 쾌감이기도 하다. 자신으로 인해 대단한 개인 하나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터넷을 믿지 않는다. 네티즌을 믿지 않는다. 개인은 믿는다. 개인의 선의나 정의감 같은 것은 믿는다. 대중을 믿지 않는다. 대중에 매몰되어 버린 개인을 믿지 않는다. 권력에 도취된다. 준비도 자격도 되지 않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
그냥 폭력이다. 그냥 난동이다. 권력자의 변덕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네가 어쩌겠는가. 이래도 죽이고 저래도 죽인다. 이래도 살리고 저래도 살린다. 내가 죽이고 내가 살린다. 나는 곧 우리다. 다수의 타인에 기대어 행세하는 한심한 주제들이다.
프로불편러의 이유다. 대단한 것 없다. 그렇게 심각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심각해야 한다. 도취되어 있다. 자신의 열정에 스스로 도취되어 자기마저 속여 버린다. 재미있다. 인간은 원래 재미있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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