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란 확신이다. 자기에 대한 인정이다. 내가 이만하다. 이만큼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를 전제한다.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론의 존재란 무엇인가. 언론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진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이미 알려진 진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어 역시 사람들에게 알린다. 언론인들에게 그래서 특종이란 학자들에게 논문과 같다. 내가 이만큼 최선을 다해 모든 능력과 노력을 기울여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진실을 찾아내어 세상에 알렸다.
단순히 알리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알린 진실로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언론이란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양심의 마지막 파수꾼 역할을 한다. 모두가 잊고 외면할 때에도 언론만은 깨어나 진실을 기억하고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 잠들어있는 모두를 깨우고 일어나게 만든다.
그저 월급만 꼬박꼬박 들어오면 되는 것은 그냥 직장인이다. 언론사가 직장인 것이지 자신이 언론인인 것은 아니다. 기자란 사실을 취재하여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지 데스크가 요구하는 기사를 요구하는대로 써내는 기능인이 아니다. 글만 잘쓰면 그건 작가다. 말만 잘하면 나레이터다. 최소한 언론인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그런 것들에 만족하려 해서는 안된다.
하긴 먹고 살기가 무척 힘들어진 때다. 어려서부터 교육받는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자아실현은 다음이다. 직업윤리도 항상 다음이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돈과 입안으로 들어오는 한 술 밥에 목숨을 건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과연 이번 JTBC의 보도를 보고 공중파 방송국 기자들은 자괴감을 느낄까? 아니면 오히려 우월감마저 느끼고 있을까? 굳이 그렇게 위험을 무릅써가며 진실을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아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온다. 그냥 시키는대로 기사만 잘 써서 내보내면 오히려 승진에도 유리하다. 그런 현실에 만족한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KBS는 인정한다. 그나마 공중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가장 적극적으로 권력의 도구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 바로 KBS노조다. 정부가 불편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알아서 자발적으로 사장을 쫓아내고 정부가 요구한 사장을 받아들였다. KBS직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수신료지 언론의 책임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아니다. 가끔씩 언론인 척 하는 것도 결국 내 지갑이나 더 채워달라는 제스처에 불과했다. MBC도 이제는 그런 사람들로만 거의 채워지고 있다. 그런 것을 언론이라 부르는 대중도 있다.
모두가 외면했었다. 아마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경로로 증거들도 수집하고 단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자기검열했던 이들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뱉던 변명을 JTBC가 뒤집어 버렸다. 이제 자신들도 JTBC를 인용해서 진실을 보도하는 수밖에 없다.
반성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자괴감은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내가 느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언론의 수준이다. 그냥 드라마나 예능 같은 것들만 잔뜩 만들어 웃게나 해주면 제 역할을 다한다 해야겠다.
차라리 나쁜 짓인 것을 알고 하는 사람은 낫다. 나중에 그래도 반성도 하고 개선도 된다. 자기가 나쁘다는 자각조차 없다. 한국 언론의 수준이다. 언론에 진실이란 없다. JTBC가 정상이어야 할 텐데.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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