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문득 베이비복스...

까칠부 2016. 8. 29. 01:48

하여튼 좋아하는 걸그룹마저 서로 닮아가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베이비복스와 카라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들이 있다. 첫 데뷔를 상당히 강한 걸스힙합으로 했다는 것에서부터, 1집의 실패 이후 멤버교체와 귀여운 컨셉으로의 변화, 무엇보다 퍼포먼스 그룹으로서의 성공이다. 막내가 후자의 경우 크게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충실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다는 점도 굳이 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문득 꽂혀서 유튜브를 뒤져 베이비복스의 무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어째서 내가 SES나 핑클이 아닌 베이비복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2집 '야야야'까지만 하더라도 베이비복스는 전혀 관심밖이었다. 관심밖은 커녕 오히려 혐오에 더 가까웠다. 그 무렵 - 아니 지금도 나는 귀여움에 대한 아주 강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의 귀여운 척을 무척 싫어한다. '야야야'는 그 가운데서도 아주 대놓고 귀여운 노래였다.


내가 처음 베이비복스를 호감을 가지고 보게 된 계기는 바로 '킬러'의 무대를 보고서였다. 이 부분도 역시 카라와 닮았다. '워나'를 타이틀곡으로 컴백하면서 함께 무대에 올렸던 '미스터'를 보고서 충격을 받고 카라라는 그룹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때 모자를 쓴 구하라의 모습은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 감정을 '킬러'의 무대를 보면서 심은진에게서 느꼈었다. 이건 좀 다르지 않은가.


베이비복스의 데뷔곡 '머리하는 날'은 상당히 강한 힙합곡이었다. 컨셉도 차라리 SES나 핑클보다는 나중에 나온 디바에 더 가까웠었다. 나중에 베이비복스가 그렇지 않아도 기가 센 것으로 유명한 디바와 미묘한 라이벌구도를 이룬 것도 그런 점에서 너무 당연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데뷔앨범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 개인적으로 강한 컨셉에 비해 지나치게 비겁했던 노래가사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음악은 좋았는데 가사가... 차라리 나쁜 여자가 낫지 이건 너무 비겁하다. - 그래서 SES와 핑클의 성공에 편승하여 귀여운 컨셉으로 돌아왔지만 이마저도 결국 SES와 핑클에 이은 한참 뒤쳐진 3인자 정도에 머물고 말았다. 그저 근근히 그룹을 유지하는 정도로 만족한다면 모를까 베이비복스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마 당시 SES와 핑클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필사적이던 베이비복스의 모습이 방송을 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베이비복스가 선택한 것은 데뷔앨범과 2집의 중간, 즉 아직 소녀적인 이미지가 강한 다른 걸그룹과는 차별되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언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대에서 구현할 수 있는 보다 강한 퍼포먼스였다. 확실히 아직 율동에 머물던 SES와 핑클에 비해 3집 이후 베이비복스의 무대는 파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섹시컨셉이라고도 말하는데 하지만 정작 당시 베이비복스의 안무 가운데는 여성으로서 신체적인 부위를 강조하는 부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적인 매력은 드러내지만 그보다는 보다 멋진 여성의 모습을 강조한다는 쪽이 더 옳았다.


우습다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베이비복스의 무대르 보면서 춤을 잘 춘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어설펐다. 살짝 모자르고 살짝 남았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면 모르겠는데, 아니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음악을 타느라 그런 것이면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자기 몸을 완전히 가누지 못해서 생긴 짜투리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생 많이 했다. 춤에 강점이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반복된 훈련을 통해 자기들의 무대만큼은 온전히 책임질 수 있었다.


또 하나 당시 퍼포먼스 그룹으로서 베이비복스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메인보컬 간미연이었었다. 그야말로 곡예하는 것 같았다. 날카롭게 치솟는 고음이 너무 가늘고 높아서 그것만으로도 곡예하는 듯 불안하게 느껴졌다. 물론 간미연의 라이브가 불안했던 적은 그리 없었던 것 같다. 불안한 것은 간미연의 목소리가 아닌 바로 듣는 자신의 귀였다. 상당히 화려한 퍼포면스와 퍼포먼스와 같이 위태롭던 목소리가 내가 기억하는 베이비복스의 이미지였다. 어쩌면 솔로로 나와서 그다지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솔로로서 간미연은 혼자서 완결될 수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처음 베이비복스의 리드보컬은 이희진이었다. 음색도 매력적이었고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다. 하지만 아마 유리목이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다. 녹음실에서 이상적인 환경 아래서 노래를 부르면 최고인데 정작 무대에서 라이브로 부르려 하면 불안해지는 경우가.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성대결절도 나중에는 큰 요인이 되어 점차 간미연의 비중은 베이비복스 노래의 거의 절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심은진과 윤은혜의 비중도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베이비복스의 이미지를 정의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최연장자이던 김이지가 아니었을까. 당시에도 상당히 노안이었었다. 그야말로 누님이었었다. 오히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애프터스쿨의 가희보다도 더 원숙한 느낌을 주었었다. 결혼도 일찍 했다. 결혼 발표를 듣고 어쩐지 납득하고 있었다. 결혼을 해도 가장 먼저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걸그룹으로서의 역경은 카라와 많이 닮았지만 컨셉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더 가까웠던 것은 애프터스쿨이 아니었을까. 키도 훤칠했고,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가 남달랐다. 지금이야 뭐 이 정도 무대 퍼포먼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인형'이었다. 특히 마치 줄타기를 하듯 고음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보여주는 상당히 빠르고 과격한 퍼포먼스가 인상에 남는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도입부가 심은진인 줄 알았는데 윤은혜도 음색이 상당히 좋았다. 고음이기에 가능한 감정이라는 것도 그때 느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우연'. 원래는 리에이크라 하던데.


정확하지는 않다. 굳이 이런 글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생각나서 무대를 찾아보다가 그냥 그러고 싶어서 이리 끄적인다. 며칠 동안 내내 머릿속에 베이비복스의 노래만 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DSP에서 허영지를 중심으로 카라를 다시 만든다 하던가. 베이비복스 해체되고 베이비복스 리브 나왔던 것 생각난다. 이런 것까지 닮아서는 안되는데. 오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