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영화 '부산행'을 보고...

까칠부 2016. 9. 18. 03:07

평소 영화 보러 다닐 시간이 안된다. 정확히 체력이 안된다. 지금도 보면서 몇 번이나 멈췄다 다시 재생해서 봤다. 2시간 남짓 한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내게 있어 고문이다. 그런 관계로 iptv로 풀리고도 겨우 여유가 생긴 지금에야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첫째, 이건 진짜 극장 가서 봤어야 하는 영화다. 아마 극장에서였다면 2시간도 20분처럼 느껴졌으리라. 처음으로 영화 보면서 후회했다. 이건 보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영화관에서 봤어야 하는 영화였다. 저예산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영상과 긴박감, 그리고 청승스럽기까지 한 원초의 감정까지... 


둘째, 도대체 그동안 이 영화 욕한 인간들은 뭘 보고 욕한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연성이 없다고? 오히려 너무 세세해서 아쉬웠다. 촌수러울 정도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보여주려 애쓰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더 중간과정이 기억에서 휘발되고 행위와 행위의 단위만 남게 되었는지 모른다.


셋째, 신파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 역시 촌스러울 정도로 신파까지 가는 과정들이 디테일하게 보여진다. 악역으로 등장한 회사원의 경우만 해도 내내 느껴지던 감정은 혼란과 공포, 자책, 그리고 삶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었다. 공유가 기차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도 어째서 딸 수안이 태어나던 순간을 그런 식으로 떠올리게 되었는게 집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그리고 있었다.


넷째, 알로하오에, 그건 영화 시작부터 복선처럼 깔아놓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습한 노래였다. 노래의 내용 역시 이별에 대한 것이었다. 학예회에 아버지는 오지 않았었다. 대신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키다 스스로 기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아버지는 영원히 자신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지금은 헤어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없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그 순간 울컥하는 것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아버지를 관객 역시 기억하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정신없이 보았다.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좀비라고 하는 자체가 배우에게도 엑스트라들에게도 스태프에게도 아직 낯설다. 문화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잔혹한 고어물로 끝나기 쉬운 좀비물에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담아냈다. 아마도 대중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라면 바로 그것일 듯.


영화든 드라마든 재미있으려면 배우와 작가와 감독 말고도 관객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무엇을 봐도 재미가 없다. 보고 있는 동안에는 지나칠 정도로 그 안에 빠져 있어야 한다. 평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냥 끝까지 따라가며 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최고의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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