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생각한다. 세자 이영(박보검 분)은 절대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왕으로서 장차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 전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권신 김헌(천호진 분)과 그 당여들을 몰아내고 왕권을 바로세우고 좋은 나라 조선을 만들려 애쓰면서도 정작 그를 위해 조금도 자신을 양보하거나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인 지금의 왕(김승수 분)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하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아버지인 왕 역시 세자와 마찬가지로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타협도 양보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무심한 척 외면했고, 장차 보위를 물려받을 아들을 위해 김헌의 월권과 전횡을 용납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인지 자신을 굴복시킨 김헌과의 사이에 벽을 쌓고 거리를 좁히지 않으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덕분에 여전히 김헌은 왕은 물론 세자까지 의심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국정을 함께 꾸려가야 하는 유력한 정치적 파트너 아닌가.
하필 역적의 자식이었다. 그나마 왕권이 안정되어 역적의 사면마저 왕명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논란이야 당연히 일더라도 장차 왕위를 물려받을 세자의 존재란 무엇보다 우선해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였다. 비천한 역시 굳이 중전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면 적당히 내명부의 품계만 조정하면 아무일없이 넘어갈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세자 역시 벌써 오래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권신 김헌과 그 당여들의 위세에 지존이어야 할 왕이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하는 한심한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을 바꿔 보고자 벌써부터 왕위도 물려받기 전에 세자인 자신이 왕명으로 섭정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김헌의 딸인 중전이 자신을 대신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왕자까지 낳은 마당에 역적의 딸과 정을 통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그냥 자연인 이영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왕이 되어서도 하고자 하는 목표가 없었다면 역시 전혀 상관할 것이 못된다. 그런데 그럴 것이면 굳이 김헌 일파와 대립할 이유도 없었다. 적당히 김헌 일파에게 원하는 것들을 던져주고 홍라온(김유정 분)과의 관계를 용인해달라 허락을 구하면 되는 것이다. 김헌 일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무슨 짓을 벌이든 홍라온과의 관계만 중요하다면 그마저도 세자로서 자신의 판단이며 선택인 것이다. 원래 의도가 그런 것이었다면 그대로 결과도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따라서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의 약점만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에게 먹잇감이 될 행동들을 주저없이 저지른다.
어느 정도는 기대했었다. 홍라온이 역적 홍경래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오해들로 인해 홍라온이 자신을 습격한 자객들과 한패일지 모른다는 의심까지 생기고 있었다. 조정을 장악한 김헌 일파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예조판서 조만영(이대연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조만영의 딸인 초하연(채수빈 분)과 혼인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도 생겨났다. 오히려 조하연이 먼저 가문을 핑계대며 그를 돕겠다 손을 내밀고 있었다. 조금은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어야 했었다. 아니 세자로서의 자신의 신분과 책임, 무엇보다 세자인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조선과 왕실과 백성들의 운명을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더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어야만 했었다. 차라리 홍라온이 먼저 자신을 떠난 이유를 이해하고 마음편히 멀리서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들이 깊어진다. 그런 기회마저 허락지 않는다.
홍경래의 딸인 자신을 아직도 뒤쫓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홍라온은 고작 김윤성(진영 분)이 찾아올 수 있는 도성과 가까운 어딘가에 한가롭게 머물고 있을 뿐이다. 평생을 역적의 아내로 쫓기며 살았다면서 어머니(김여진 분)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남장한 홍라온을 남들에게 보이며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역적의 가족으로 쫓기는 처지라면 설사 자신의 탈출을 도와준 김윤성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있는 곳을 쉽게 찾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직 상선 한상익(장광 분)의 정체도 알지 못하면서 상선이 보낸 사람이 찾아왔다는데 당황한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김헌이 바로 홍라온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말해도 그저 당연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허술하게 숨었는데 찾지 못하는 조정과 세자가 오히려 무능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상선의 편지를 받고 세자가 기다리는 장소로 찾아간다.
하긴 그래서 드라마가 인기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늘이 없다. 그림자가 없다. 홍라온이 보는 그대로의 세자다. 한 점 얼룩도 티끌도 없는 그야말로 순백의 홍라온만 아는 세자인 것이다. 한 마디로 세자답지 않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고귀한 신분 답지 않다. 그냥 평범한 또래의 청년 같다. 신분도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오로지 사랑에만 모든 것을 거는 순수한 또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홍라온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평화롭고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시절이라면 역시 아무것도 안하고 사랑만 하며 살아도 된다. 그래서 한 편으로 김헌과 그 일파가 더욱 악마화되어 묘사되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그들의 일상과 사랑을 훼방놓고 그들을 떼어놓으려 하는 악역들이다. 진짜 세자가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다. 정확히 세자가 아닌 사랑에 빠진 남자 이영이 극복해야 하는 장애들이다. 결국 세자는 왕이 될 것 같지 않다. 배경이 된 역사가 그래서가 아니라 지금 세자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것을 예정하는 것 같다.
갈등이 없다. 고민이 없다. 정작 주인공인 두 연인 사이에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정작 주인공은 이영과 홍라온 두 사람이지만 드라마의 중심은 그들을 주변에 둔 왕과 김헌 일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영향받는다. 그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가에 흔들리고 휘둘린다. 그저 한결같이 사랑만 하는 두 사람에게서 그 밖에 다른 감정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련된 감정들 말고 그 밖의 감정들을 더 다양하게 더 깊이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김윤성마저 가문과 세자, 가문과 홍라온과의 사이에 대해 그다지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홍라온에 대해서는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쉽게 결정내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도 그저 아무 걱정없이 오로지 나쁜 놈들만을 욕하며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예쁜 모습만을 쫓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지 모른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목숨을 맡긴 호위무사 김병연(곽동연 분)에게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백운회와 관계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아무나 불러 그를 감시하라 시키지도 않는다. 만에 하나 진짜 김병연이 백운회의 첩자라서 자신을, 혹은 아버지인 왕을 노리거나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친구로서 오로지 김병연의 선의에만 기대려 한다. 역시 왕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내내 답답해지는 이유다. 사랑만 하는 이영과 홍라온은 그리도 예쁜데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절절한 서로에 대한 사람의 감정을 연기하는 두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의 모습에 결국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한다.
부디 해피엔딩이기를. 진짜 해피엔딩은 모든 현실의 책임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더이상 왕도 세자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신분의 굴레를 넘어서 그저 자연인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분명 세자의 사랑은 아니었다. 신분만 세자였고 공간만 궁궐이었을 뿐 그들은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였다. 그럴 수 있다면.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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