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항 가는 길 - 꿈처럼 장난처럼, 어른들의 거짓말

까칠부 2016. 10. 6. 08:17

살면서 정해진대로 돌아가는 일들이 얼마나 있을까.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울고 싶다고 울고 웃고 싶다고 웃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눈물이 쏟아지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흐르는대로 내버려 둘 수만 없는 것이 바로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다. 우는 것도 자리를 가려야 하고 웃는 것도 상대를 가려야 한다. 때로 원하지 않으면서 화내야 하고 슬퍼해야 하는 때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처럼 순수할 수만 없다.


이미 한 남자의 아내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다른 여자의 남자를 이대로 사랑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니 지금 자신이 그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옳은 것일까. 그래서 마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며 우울해하는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게 된다. 정확히 아직은 타협의 단계다. 그런 것이 아니라 강하게 부정했다가,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감정에 화를 내고, 그래도 안되니 이번에는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낸다. 세 가지가 없는 관계다. 기대도, 접촉도, 그리고 헤어짐도. 그러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꿈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꾼다. 자기에게 없는 것들을.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자기의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꿈이 꿈인 이유는 그럼에도 다시 현실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꿈이 있기에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들마저 즐겁게 견딜 수 있다. 어차피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엇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을 살아야만 한다. 아직까지 그들의 감정이 아련하고 안타깝지만 위태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이 조금 곤란할 뿐이다.


애써 아니라 부정하고, 일부러 외면하고 돌아서다가는, 다시 돌아서서 열심히 말도 안되는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오히려 서도우(이상윤 분)도 그런 최수아(김하늘 분)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낀다. 모르긴 몰라도 최수아가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쉽게 선을 넘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오히려 서도우 자신이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을지 모른다. 적당히 장난처럼 지금의 관계를 유지해도 괜찮겠다. 답답하고 비루한 일상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받는다. 아직 서도우도 아내 김혜원(장희진 분)을 배신할 생각이 없다. 최수아 역시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딸 효은(김환희 분)을 버리고 싶지 않다. 딱 그만큼. 서로가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딱 그 거리 만큼.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언제든 결심만 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난 힘들면 도망가!"


아마 김혜원이 딸 애니에 대해 서도우에게 했던 말들 가운데 어쩌면 거의 유일한 진심이자 진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긴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는 한다. 당장 너무 힘들고 위험한데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현실에 없다. 그래서 서도우도 김혜원과 직접 부딪히기보다 최수아를 만나 위로받으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최수아 역시 남편 박석진에 대한 불만을 안으로 삭인 채 서도우를 통해 위로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사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혜원은 과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숨기고 속여왔던 것일까. 그 진실을 모두 알게 되었을 때 여전히 서도우는 지금처럼 한결같이 김혜원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엄마가 자신의 딸을 외면하고 부정하게 만들어야 했던 아픈 사연들이란 과연 무엇일 것인가.


전혀 뜻밖에 최수아의 남편 박석진과 친구 송미진(최여진 분) 사이에 전혀 뜻밖의 과거가 송미진의 친구 한지은(최송현 분)을 통해 어렴풋 드러나게 된다. 송미진에게 과거 사귀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결국 송미진의 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 일 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고, 지금 자신의 친구와 결혼해 있으며, 무엇보다 최수아와 별거하다시피 된 뒤 박석진이 송미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평소 하지 않던 귀국보고를 전화로 최수아에게 했던 것부터 조짐이 수상하기는 하다. 다만 이 경우도 그저 장난으로 끝나게 될 지. 아니면 그저 꿈으로 그치게 될 지. 말했듯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돌아올 이유를 끝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돌아갈 곳에 없어지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민석(손종학 분)이 끝내 김혜원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공방에 인턴으로 일하며 인연을 맺기 이전 알지 못하는 과거의 행적들을 쫓으려 한다. 사실 서도우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먼저 물었어야 했다. 묻고 들었어야 했다. 아예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상대에 대해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이 김혜원의 안에서 썩고 곪아 마침내 터지고 만다. 서도우의 사랑이 시험받는다. 서도우의 진심에 묻는다. 최수아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과연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꿈에서 깨어난다.


사랑인 듯 아닌 듯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관계가 무척이나 보는 이를 안달나게 만든다. 사랑인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 아니기를 고집하는 모습에서는 안타까운 연민마저 느낀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사랑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굳이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의 사랑은 올곧고 순수하다. 사랑만 하면 되는 그들의 사랑은 그 자체로 격정적이고 아름답다. 겨울 볕에 녹는 처마의 눈과 같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현실의 이야기다. 어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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