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옛날 사진이네요. crt쓰던 시절이에요. 그것도 1024*768. 보이는 컴퓨터 케이스에는 무려 3.5"플로피디스크까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폰카 화질도 구려요.
아마 2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감도 오지 않아요. 더 오래전 사진도 있었는데 하드 고장나며 모두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갑작스런 컴퓨터 고장으로 포맷하다가 잃어버린 것들도 있구요.
쭈그리가 꼬맹이랑 같이 제게 온 것이 아마 2005년 5월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동생이 친구네 고양이가 새끼 낳았다고 길러볼까 물어보고는 데려온 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놀고 있던 내가 동생을 대신해서 녀석들을 돌보게 되었죠. 그리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종이박스에 넣어 데려왔는데 박스를 여니 저 놈이 꼬맹이 앞을 가로막고 하악거리더라구요. 제딴에는 이상한 놈으로부터 꼬맹이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제놈도 한 주먹밖에 안되면서. 낯선 집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는 항상 쭈그리가 앞장섰습니다. 쭈그리가 먼저 길을 개척하면 그 뒤를 꼬맹이가 따라다녔죠. 먼저 내게 다가온 것도 쭈그리였습니다. 자고 있는데 바퀴벌레 큼지막한 놈 물고서는 자랑하듯 보여주던 게 기억나네요.
밥먹을 땐 항상 꼬맹이 다음입니다. 쭈꾸미 오고 나서는 쭈꾸미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먹습니다. 싸움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꼬맹이랑 쭈그리가 한꺼번에 덤벼도 쭈그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가끔 가출을 하면 사나운 길고양이들도 때려잡고 다닙니다. 그냥 나중에 먹는 거에요. 항상 자기가 올라앉던 무릎도 꼬맹이가 아프고 찾아들기 시작하자 자기가 물러나더라구요. 타고난 대장이랄까. 이 녀석 없으니 꼬맹이랑 쭈그리 사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디서나 적응 잘하고 사랑받는 타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탁묘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도 전혀 모르는 집에 가서 첫날부터 적응해서 잘 지낸 탓에 그냥 그리로 보낼까도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기르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쭈그리만 찾는 꼬맹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려왔죠. 꼬맹이는 진짜 나와 쭈그리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 일편단심입니다.
이사만 다섯번 했습니다. 그때마다 고생이 심했죠. 그래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새로운 동네들을 탐험하고 다닙니다. 몇 달에 걸쳐 조금씩 방충만에 틈을 벌리더니 끝끝내 탈출한 적도 있었네요. 손에 밥 덜어주면 좋아한다는 걸 재작년에야 알았습니다. 어째 밥을 많이 안 먹더라구요. 알았으면 더 일찍부터 그리 해주는 건데. 후회되요. 못해준 것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것 같아요. 떠났다는 느낌이 없어요. 평소처럼 어딘가 숨어서 혼자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좁은 집에 고양이 숨을 곳이 많더라구요.
새벽이라 조용하고 한가하니 그냥 생각만 떠오릅니다. 딱 조막만한 녀석이었는데. 지도 비틀거리면서 꼬맹이 지키겠다고 나서던 용감한 녀석이었는데.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 항상 보고 있어요. 늘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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