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과 유시민의 차이는 한 가지다. 정치를 구조로 인식하는가 구성으로 인식하는가. 유시민은 정치를 각각의 주체에 의핸 구조라 인식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각각의 주체에 의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 사고로써 이루어진다. 반면 전원책은 특정 주체에 의한 일방적인 결정과 판단만을 우선한다. 결국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그같은 소수의 특별한 판단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인 것이다. 한 편으로 진보는 전원책과 닮은 점이 많다. 뜻밖에 한국진보는 그다지 국민을, 이 사회의 다수 구성원들을 믿지 않는다. 원래 공산주의혁명 자체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러시아혁명당시 다수파를 뜻하던 볼셰비키는 오히려 상당히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었다. 공작과 협잡, 술수, 편법, 모략 등등등... 역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확실히 그런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하부를 이루고 있는 다수의 기층민중이 아니었는가.
촛불집회에 대한 전원책과 유시민의 다른 입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론에 떠밀린 현재의 탄핵정국에 대한 이해 역시 서로 갈린다.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전원책의 예측은 상당부분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대한민국 정치에서 주체는 소수의 정치인들이었다. 소수의 여론주도층이었다. 소수의 언론과 소수의 지식인과 소수의 사회리더들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총선으로 유시민 역시 무언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 같다. 전보다 더 강력하게 시민과 각 주체들의 합리성을 믿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의 예측이 틀리더라도 그렇게 예측할 수밖에 없는 지향이 유시민에게 생겼다.
정치의 주체는 대중인가. 국민인가. 시민인가. 아니면 정치인인가. 소수의 주도층인가. 역사의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흥미롭다. 더 많은 대중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과 그만큼 더 큰 자유와 관용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유시민과 그렇기 때문에 단지 옳은 몇몇 주장들만을 인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려는 전원책의 과격할 정도의 지향성과의 충돌이다. 예능이라 생각하기에 서로 날을 세우지 않는다. 가장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중요한 시각이다.
아마 한 편으로 전원책은 죽을 맛일 것이다. 보수주의자로서 지금처럼 유시민과 함께 현정부를 마냥 비판만 해야 하는 위치란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 그같은 본심이 거르지 않고 툭 튀어나오고는 한다. 보수가 주도하는 정국에 대한 미련과 기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국을 결정하는 것은 보수당인 새누리당과 청와대여야 한다. 그쪽에 있는 옳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영리한 사람이다. 하지만 드러내지는 않는다. 교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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