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철희, 강용석부터가 너무 마이너였다. 이철희가 썰전의 덕을 봤지 썰전이 이철희의 덕을 보지는 않았다. 대개는 하나마나 한 소리들. 혹은 누가 해도 되는 소리들. 그것을 보완한 것이 김구라와 썰전 특유의 예능적 분위기였다. 그나마도 강용석이 하차하며 이준석이 들어가니 이건 뭐...
그럼에도 썰전이 가지는 한 가지 강점은 정치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신문 정치면의 무게있는 기사보다는 인터넷에서 오가는 가벼운 공방을 연상케 한다. 자기가 관심있는 몇몇 부분에 대해서 보다 구도를 단순화하여 더 쉽게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상대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체계적이거나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정치는 더 쉽게 일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유시민은 그런 썰전의 강점을 한 단계, 아니 그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데 기여한 주역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이해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아무리 어려운 것도, 아무리 단순한 것도,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매우 정제된, 그러나 대중과 가까운 일상의 언어로 무리없이 풀어 들려준다. 장관을 역임한 국무위원의 경험이나, 국회의원이었고 당의 대표까지 지냈던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은 그것을 더 효과적으로 풀어내어 들려주는 촉매가 된다. 무엇보다 유시민 개인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호불호가 갈릴지 몰라도 그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지식인이며 논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전원책은 그 카운트파트로서 의미가 있다. 때로 폭주하며 오류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특정 사안에 대해 유시민과 다른 입장에서 유시민과는 다른 보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이해와 주장들을 둘려주는 역할을 한다. 유시민이 상당히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사안을 분석한다면 오히려 전원책은 대중의 눈높이와 가장 가까운 감정과 직관의 영역에서 사안을 질타한다. 옳고그름은 그 다음이다. 이런 식으로 정치를 보는 시각도 있다. 가벼워 보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전원책의 언어 역시 유시민과 상당히 균형추를 이루는 역할을 한다.
무겁지만 가볍다. 가볍지만 깊이가 있다. 깊이가 있지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예능이다. 웃으며 즐기고 웃는 가운데 일상의 에너지를 얻는다. 정치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며 일상의 이야기다. 주위의 이야기다. 만일 유시민이 지금처럼 정치했다면 그리 험한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정치하던 시절에는 반드시 무찔러야 하는 적이 있던 시절이지 또 어쩔 수 없다.
200회나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의미있는 것은 작년부터였다. 총선 앞두고 이철희와 이준석마저 출마하겠다 나가며 급히 유시민과 전원책을 투입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그저 인터넷의 여러 팟캐스트들에 비해 크게 차별성이 없는 그냥 영상으로 공식적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의미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최초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제 드디어 썰전을 모방한 프로그램들이 다투어 제작된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메인MC인 김구라의 역할이다. 적당히 당해주면서도 때때로 시청자의 입장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꽤나 어려워하는 모습도 보이더니 제법 능수능란하게 유시민과 전원책이라는 거물들을 조율하는 모습도 보인다. 썰전이 예능이게 하는 중심이다. 그가 있어 가능하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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