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드라마에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면 그것이 드라마의 내부와 어떻게 이어질까 그 의도부터 의심하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가해자의 어머니와 김사부(한석규 분)가 마주앉은 장면에서 그 의도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스승이란 원래 부모와 같다. 부모가 나를 낳아줬다면 스승은 나로 하여금 살아가게 한다. 부모가 나를 태어나게 했다면 스승은 나를 존재하게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는 자체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대단한 행운일 테지만 말이다. 병원이라는 구조에 있어서도 외과장이란 외과에 소속된 의료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내 사람은 내가 지킨다. 내 책임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내가 지켜야 한다.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과 만난다.
그래서 김사부는 도윤완(최진호 분) 원장과 만나 파격적인 제안까지 받았다는 강동주(유연석 분)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슬며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윤서정을 지키기 위해 도의원의 사모님씩이나 되는 여자와 정면으로 맞서기 전의 일이었다. 지금 자기가 말리고 설득해서 남게 된다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가 말리고 설득하지 않아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때는 후회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단지 언젠가 강동주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자기에게만 책임이 돌아오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태도 아니던가.
수간호사 오명심(진경 분)이 강동주가 김사부를 존경하고 있다 말했을 때 애써 자기의 수술실력만 탐내는 것이라며 폄하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책임지기 싫다. 강동주의 의사로서의 재능이나 실력은 탐나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그를 책임지는 것은 싫다. 무책임한 어른이다. 어떤 점에서 음주운전 가해자의 어머니와도 닮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관심한 것이다. 단지 자기가 낳은 자식이기에 자기만족을 위해 맹목적인 애정만을 쏟아붓고 있을 뿐 사실상 아들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자기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왔고,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나 그런 고민보다는 그냥 자기의 체면만이 우선이었다. 자기의 권위와 입장만이 우선이었다. 뜻밖에 윤서정이 아들을 피해자들 앞에 데려다 주었을 때 아들은 순수하게 괴로워하며 자신이 저지른 죄의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정작 어머니는 아들의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때로 상처도 받는 것이다. 때로 배신도 당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부당하기도 하다. 억울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겨우도 있다. 그래서 보호자다. 그래서 부모다. 자식이야 생물학적인 문제만 없다면 누구나 낳을 수 있지만 정작 진짜 부모가 될 수 있는 이는 매우 드물다. 그만한 각오를 가져야 하다. 그만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사부도 처음에는 매우 미숙했다. 젊은 의사들이 자기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랐지 자기가 그들에 맞춰줄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자기에게 맞추도록 그들을 이끌어줄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 마냥 젊은 의사들만을 탓하고 있었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 상처도 입지 않는 안전한 그곳에서. 아마 그래서 젊은 병사는 멍투성이가 되어 군에서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군대에서 목숨까지 위험한 상처를 입었지만 그러나 정작 군의 간부들은 그의 안위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드라마는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성장드라마다. 단순히 강동주와 윤서정, 도인범(양세종 분)등의 젊은 의사들이 의사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른인 김사부도 성장해야 한다. 어쩌면 도윤완 역시 성장해야 하는지 모른다. 몸의 성장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멈추지만 정신의 성장은 인간의 이성이 유지되는 한 언제나 가능하다. 그냥 의사가 아니다. 그저 혼자서 수술만 잘하면 되는 의사 개인이 아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재능과 실력, 무엇보다 의사로서 양심과 열정까지 두루갖춘 젊은 의사들이 몇 명이나 필요한 꽤나 큰 계획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그것을 이끌어야 한다. 그들을 모두 아우르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도윤완에게서 배워야 한다. 어째서 당시 자신과 함께했던 의료진 모두가 도윤완의 편에서 자신을 배척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는가. 수단과 별개로 그것이 바로 사람을 다스리는 기술인 것이다. 지금 김사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구타로 인한 패혈증을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사로 바꾸려는 장면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신부전과 심정지가 직접 사인이 되고 만다. 어차피 사람은 심장이 멈춰서 죽는 것이다. 신부정도 아무 이유도 원인도 없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원인과 과정을 배제한 채 결과만을 적어놓고 그것을 원인이라 결론짓는다. 의사로서의 양심에 걸린다. 양심 이전에 양식이다. 의사로서 당연히 배우는 당연한 상식이다. 강동주가 도윤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치러야 하는 대가다. 이렇게 후회는 결심보다 빨리 찾아온다. 음주운전 가해자가 자신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보고 괴로워하는 그 순간 강동주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미리 경험하게 된다. 하필 또 그때 김사부가 들이닥친다.
선택의 순간이다. 분명 김사부는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꼼짝없이 자신은 버려질 것이다. 김사부가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강동주를 방치할 것인가. 이대로 강동주를 버리고 말 것인다. 굳이 자기가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단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강동주는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김사부로부터 버려진다면 강동주에게 남은 선택은 도윤완 뿐이다. 지지않으려 해도 결국 모든 책임은 김사부에게 돌아온다. 모른 체 외면해도 결국 김사부 자신도 깨닫게 된다. 강동주의 선택과 미래가 모두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는 그냥 어른이었다. 실력만 좋은 그냥 꼰대였다. 자기라는 틀 안에 갇혀 주위를 보려 하지 않은 외골수 바보였다.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생겼다. 자신의 뒤만을 졸졸 쫓아다니려는 그들에 대한 책임이란 것도 생겼다. 김사부에게 내려진 숙제다. 어른도 성장한다.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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