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도인범(양세종 분)이었을까? 무엇이 김사부(한석규 분)로 하여금 원수라 할 수 있는 도윤완(최진호 분)의 아들인 도인범을 눈여겨보게 만든 것일까. 심지어 먼저 김사부를 알았던 강동주(유연석 분)까지 제치고 수술의 집도까지 맡기고 있었다. 비로소 알 것 같다.
"김사부를 부를까?"
"아니, 내가 해!"
의사 도인범을 한 마디로 정의해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줄곧 그래왔었다. 다른 사람도 있었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다. 아니 자신이 반드시 그 일을 해내야만 한다. 오만이기도 하고 경솔함이기도 할 테지만 그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는 자각일 것이다. 자기는 의사다. 의사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한다. 해야만 한다. 처음하는 수술이라는 강박조차 그에 비하면 차라리 사소하다.
물론 처음 하는 실수인데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환자는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의사인 자기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정확히 윤서정(서현진 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반대편에 있다. 자기가 의사다. 자기가 해야만 한다. 옳은 판단이든 틀린 판단이든 그 순간 의사로서 환자가 필요로 하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해냈다면 나머지는 자기가 책임질 바 아니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의사인 아버지로부터 의사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겪으며 배워 온 때문인지 모른다. 얼핏 이기적이고 냉정해 보이는 겉모습은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만의 성일 것이다. 나는 의사고 의사로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한다.
우연화(서은수 분)도 어쩌면 윤서정과 같은 고민을 하고 그래서 결국 도망치고 만 경우인지 모른다. 누가 보더라도 직접 환자를 진료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였다. 하지만 돌담병원에서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의사임을 숨기려 했었고 의사임을 들키게 되자 아무도 모르게 도망부터 치고 있었다. 돌담병원을 떠나기 전 강동주에게 묻고 있었다. 의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그런 때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는가. 강동주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동안의 노력도 아깝고 의사보다 다른 일을 더 잘할 자신도 없어서. 의사로서의 사명감이니 뭐니 알기에는 의사라는 자체를 알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처음 느꼈던 그대로 강동주는 놀랍도록 순진한 속물이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타산적인데 한 편으로 세상에 물들기 전의 순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그래서 자기가 그동안 보고 듣고 겪어온 주위의 의사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그런 강동주가 김사부의 반대편에, 그리고 김사부와 적대하는 도윤완과도 반대편에 서있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도인범과 닮았다. 의사라는 자각은 부족하지만 당장은 의사이기에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적당히 욕심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러나 자기에게 지워진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도인범보다 의사로서 자기가 훨씬 낫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도인범에게 수술경험이 있기에 아무말없이 그의 서포트를 한다. 도인범의 자신감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의사로서 그때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런 점에서 윤서정은 두 사람과 달리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피곤하다. 그래서 쉽게 지치고 만다. 조금은 덜어냈다. 조금은 떨쳐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그녀를 붙잡고 옭죄려 한다. 환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런 그녀를 위한 선물이었다. 의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죽음이란 그녀에게 내려진 시련인 동시에 그녀를 혼란에서 구원할 열쇠였다. 의사가 환자의 삶과 죽음까지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살고 죽는 그 자체에 대해서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그냥 기다리는 것 뿐이다. 오만해져서는 안된다. 차라리 도인범의 자신감이 더 큰 겸손일 수 있다. 자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으로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두 사람은 더해야 한다면 윤서정은 조금 덜어내야만 한다.
결국 이번에도 대칭이다. 우연화가 윤서정과 강동주, 도인범의 반대편에서 그들의 거울 역할을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심정지환자와 추돌사고 현장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와서 죽은 할머니는 윤서정이 두르고 있는 두꺼운 껍질을 벗기기 위한 장치였다. 김사부의 큰그림이 주지배인(서영 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김사부에게는 바로 이들이 필요하다. 이들의 성장이야 말로 김사부가 그리는 큰그림의 완성이다. 과연 김사부는 어떤 큰그림을 그리고 있었는가.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더 가치있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믿어왔었다. 그렇게 여겨왔었다. 생명보다도, 가족의 목숨보다도 더 철저하게 지켜야만 하는 무엇이 있다. 부숴버린다. 그런 허튼 소리 따위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옹알거림에 불과하다. 직접 살고 죽는 현장을 목격한다. 살고 죽는 의미를 체험한다.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익으로 묶인 관계와 진실로 일깨워진 관계의 차이다. 더 가치있는 진실 앞에서 단지 철모르는 개인의 고집이나 주장 따위 바로 꺾이고 만다. 도윤완의 패배다. 아니 그보다는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진실의 승리다. 도윤완이 보낸 거대병원의 감사가 돌담병원의 환자를 위해 먼저 움직인다. 아마도 역시 김사부가 그리고 있는 큰그림과 관계까 있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위기도 시작된다. 도윤완이 반드시 김사부의 주위부터 노릴 것이다. 눈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윤서정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강동주는 도윤완으로부터 이익을 앞세운 제안을 받고 있었다. 남은 한 사람은 원래 도윤완의 아들이었다. 실장 강기태(임원희 분)의 행동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한 번 쯤 시련을 더 넘어서야 하는 모양이다. 더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오로지 살려야만 한다.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마저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죽음마저 담담히 맞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무력감을 느낀다. 의사는 살리기 위한 존재다.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의사란 어떤 의미일까. 정답은 없다. 단지 답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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