いま あなたの こえが きこえる
지금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ここに おいで'と
여기로 오라는...
さみしさに まけそうな わたしに
쓸쓸함에 질듯한 나에게.
いま あなたの すがたが みえる
지금 당신의 모습이 보여요.
あるいてくる
걸어 오는...
めを とじて まっている わたしに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きのうまで なみだで くもってた
어제까지 눈물로 흐려있던
こころは いま...
마음은 이젠...
おぼえていますか めと めが あった ときを
기억하고 있으세요? 눈과 눈이 마주쳤던 때를.
おぼえていますか てと てが ふれあった とき
기억하고 있으세요? 손과 손이 마주 닿았던 때.
それは はじめての あいの たびだちでした
그것은 첫, 사랑의 여행이었습니다.
I love you, so
나는 그렇게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いま あなたの しせん かんじる
지금 당신의 시선을 느껴요.
はなれてても
떨어져있어도
からだじゅうが あたたかくなるの
온몸이 따뜻해져요.
いま あなたの あい しんじます
이젠 당신의 사랑을 믿습니다.
どうぞ わたしを
부디 나를
とおくから みまもってください
멀리서부터 지켜봐 주세요.
きのうまで なみだで くもってた
어제까지 눈물로 흐려있던
せかいは いま...
세계는 이젠...
*おぼえていますか めと めが あった ときを
기억하고 있으세요? 눈과 눈이 마주쳤던 때를.
おぼえていますか てと てが ふれあった とき
기억하고 있으세요? 손과 손이 마주 닿았던 때.
それは はじめての あいの たびだちでした
그것은 첫, 사랑의 여행이었답니다.
I love you, so
나는 그렇게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もう ひとりぼっちじゃない
이제 혼자가 아니예요.
あなたが いるから
당신이 있으니까.
링 밍메이에 대한 인상은 TV판을 먼저 봤느냐 극장판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전혀 반대로 갈린다. TV판을 먼저 봤다면 남자 마음을 가지고 노는 dog雙년이고, 극장판을 먼저 봤다면 한 사람만을 오매불망 사랑하는 가련한 여주인공이다. 물론 나는 극장판을 먼저 봤다. 젠트라디 말로 그야말로 '데카르챠'였다.
애니메이터를 갈아넣은 애니메이션이었다. 버블의 절정기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던 일본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대로 애니메이터들을 갈아넣어 만든 작품이었다. 도대체 이런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존재했다니.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 실제 정식으로 출시된 뮤직비디오 '플래시백'이 있었음에도 이 작품을 마크로스의 뮤직비디오라 부르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다. - 마크로스의 삽입곡이 중요한 장면마다 배경음악으로 흐르면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전투기 액션과 세 주인공 이치죠 히카루와 하야세 미사, 링 밍메이 사이에 벌어지는 애절한 삼각관계는 애니메이션을 그저 만화영화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아, 이런 애니메이션도 있구나.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만화영화 이후로는 애니메이션, 그 기준이 되는 작품이었다.
실제 내가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은 일본의 극장에서 개봉한 1984년에서 무려 10년 가까이 지난 1990년대 초반이었다. 그 사이 이보다 더 훌륭한 애니메이션도 적잖이 나왔었고 그동안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마크로스에서 성공한 특징적인 요소들을 도입해 사용하면서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다만 워낙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무지했던 터라. 아마 내가 처음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르츠키 동자'였던가. 제목도 모르고 만화방에서 무협지 읽고 있다 난데없는 장면에 식겁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당시 나에게 일본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상은 빨간딱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만화영화가 곧 일본애니메이션 - 즉 재페니메이션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때다.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았다.
아무튼 극장판에 충격을 받고 오래전 AFKN에서도 '로보텍'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는 TV시리즈도 찾아보게 되었다. 솔직히 영상의 화려함을 제외하고 본다면 스토리의 완성도는 TV시리즈가 더 뛰어나다. 완결성이 있다. 마치 TV드라마를 보는 듯 치밀하고 섬세하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려낸다. 그에 비하면 극장판은 뭔가 뜬금없달까. 밍메이가 이치조 히카루에 반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 이후 하야세 미사와 이어지는 과정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특히 무엇보다 밍메이어택이 사용된 젠트라디와의 마지막 전투 이후 지구에 정착한 젠트라디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전투라는 자신들의 본질을 선택해 마크로스를 향해 무모한 돌격을 하다가 산화해간 카므진의 존재는 정말... 내가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마크로스는 문화를 가진 집단과 문화를 가지지 못한 집단이 만났을 때를 가정한 우화라고. 물리적인 힘은 미약했지만 문화를 가졌기에 지구인들은 문화를 가지지 못한 젠트라디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편에 서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빌어 마침내 강대한 젠트라디를 괴멸시키는데 성공한다. 문화란 이렇게 위대하다. 하지만 정작 젠트라디가 지구에 정착하고 지구의 문화에 익숙해지며 찾아낸 답은 또 다른 것이었다. 밍메이의 노래를 즐겨 듣고, 인간들이 하는 키스도 직접 해보고, 하지만 결국 젠트라디의 본질은 전투였다. 전쟁이야 말로 젠트라디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싸우는가. 자신이 선택한 전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우다 만족하게 죽음을 맞는다. 과연 젠트라디에는 문화가 없었을까.
문화란 한 마디로 삶의 양식이다. 살아가는 방식이다. 반드시 노래가 있어야 문화가 아니다. 춤을 추고 연극을 해야만 문화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해야지만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다른 누구가 아닌 자기가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삶과 일상에 녹아든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마치 안티테제처럼 '마크로스 제로'라고 하는 작품도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마얀섬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원시적인 문화만을 지닌 말 그대로 야만인일 것이었다. 문화란 문명의 다른말이었다. 훨씬 발달한 문명을 가진 자신들의 보다 정교하고 고도화된 문화야 말로 문화를 뜻하는 것일 터였다. 외딴 마얀섬의 문화와 일상들이 보다 거대한 세계의 문화에 흡수되어 사라져간다. 마얀섬이야 말로 원작의 젠트라디가 아니었을까. 전쟁을 위해 태어났고 전쟁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았던 만큼 그들의 문화 역시 전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또다른 문화가 그들의 정체성을 여지없이 흔들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지금도 지구상에서 많은 문화들이, 많은 전통과 일상들이, 많은 민족과 언어들이 존재했다는 흔적만 남긴 채 어이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문화를 앞세워 자신들의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했을 때도 미개한 한반도에 대한 문명화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었다. 무지하고 야만적인 조선인들에게 문명과 문화를 가르쳐주겠다. 선교사들이 세계의 오지로 들어가 원주민들을 선교하면 뒤이어 제국주의의 군인과 자본가들이 그런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철저히 착취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었다. 가혹한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사냥꾼이자 전사로 길러졌던 오지의 부족들은 그야말로 싸우기 위해 태어나고 죽어가는 젠트라디였는지 모른다. 그런 원주민들을 문화를 앞세워 현혹하고 물들이며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물론 작품에서 지구인들을 훤씬 크고 강한 젠트라디에 일방적으로 침략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던 상황이었다. 다르기는 하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떠올린 것이 70년대 학생운동의 좌절 에후 많은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쪽으로 흘러들게 된 과정이었다. 이 무렵부터 부쩍 일본의 만화나 영화, 소설 등에서 사회비판적인 거대서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작해야 돈벌이나 밝히는 돼지들이다. 권력 한 자리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버러지들이다. 그들에게 문화를 가르쳐주겠다. 자신들이 문화로써 진짜 가치있는 것들을 보여주겠다. 젠트라디는 부패하고 타락한 현실을 지배하는 기성세대 그 자체였다. 그들과 맞서싸우기 위해 자신들은 문화를 무기로 삼겠다. 이미 학생운동은 실패했지만 자신들은 진 것이 아니다. 문화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하긴 그렇게 여기기에는 '마크로스' 자체가 상당히 오타쿠적인 작품이라. 이처럼 복잡하고 심층적인 방대한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참여한 스태프 각자가 자기 하고픈 것을 고집하다 나온 우연의 결과물이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넣고 싶고, 그래서 다 버무리다 보니 우연찮게 괜찮은 게 나왔다.
이후 시리즈들은 그다지 본 것이 없다. 마크로스플러스는 공중전 액션이 훌륭랬다. 마크로스 세븐은 그냥 그랬다. 그나마 마크로스 제로가 상당히 신선하게 보였었다. 전작의 명성에 기대는 그저 그런 관성의 결과물이랄까. 한 번은 쇼크지만 두 번은 반갑고 세 번은 지겹다. 카므진이 지구의 문화를 거부하고 마크로스에 전함을 들이받은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지구에 와서 들은 게 밍메이 노래밖에 없었다.
참고로 설정상 극장판은 군부에서 만든 선전영화 TV시리즈는 민간에서 만든 역사드라마 같은 것이라 한다. 군대에서 만들었다니 이해가 된다. 군대영화 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듯. 원작을 해체하다시피 재창조해서 성공한 훌륭한 사례다. 그리고 이 노래는 TV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에서만 나온다. 원래 엔딩곡인 '천사의 그림도구'는 사정상 뮤직비디오인 '플래시백'으로 넘어갔다.
한때는 이것 때문에 없는 돈에 미키모토 하루히코의 화집도 사모으고 했었는데. 한때는 뜨거웠던 열정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다. 지금은 그럴만한 체력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다. 오랜만에 문득 흥얼거린 메로디에 문득 떠올랐다. 지금와서 보면 재미있을까. 아서라. 기억은 기억으로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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