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쳔일의 맹세, 물새가 - 문득 떠오른 군대의 추억...

까칠부 2016. 12. 22. 09:00



이름은 밝히지 못하겠지만 내 동갑 여자

얼굴은 귀엽고 눈이 맑았던 내사랑 여자

스물둘 가는 겨울 눈길 걸으며

난 너를 난생처음 사랑한다고

이듬해 깎은 머리 나라를 위해

무엇보다 슬픈 건 너와의 헤어짐

무정한 기차 떠나갈 때에

천일 동안의 슬픈 이별을 

울며 손 놓던 너의 맹세

믿고 또 믿고 참고 또 참아

제대의 그 날은 눈앞에 왔건만

넌 남의 여자




물새 날아가는 저곳으로 떠나간 내 사랑

너와 둘이 손을 잡고 거닐던 바닷가

짝잃은 소라껍질 뒹굴고 있네

영원토록 바다같이 푸르게 

날 사랑한다고 맹세한 내 님은 파도따라 가버렸네

나 홀로 외로이 바다에 앉아서

밀려갔다 밀려오는 저 파도 소리에 꿈이라도 실어보내리

외로운 바닷가 외로운 바닷가 외로운 바닷가



요즘 주위에 군대가는 녀석들이 많다. 덕분에 떠올랐다. 문득 휴가나온 짧은 머리들도 안타깝고. 그 사이 어느새 군대물 다 빠져 사회인으로 돌아온 녀석들을 보면 세월이 빠르구나 생각도 들고.


물새가는 논산 신교대에서 배웠다. 26사단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는 그다지 부르지 않았는데 28사단에서는 부르더라. 원곡이 누구 노래인지는 당시도 몰랐다. 알고보니 구전가요였다. 정확히 구전군가.


원래 어느 군대이든 위에서 정해서 내려보낸 군가 말고 군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불리는 진짜 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는 저 위에 계시는 고상한 분들은 잘 모르는, 혹은 알더라도 오히려 없다고 틀어막고 싶은 군인들 자신의 애환을 담은 노래이기 쉬웠다. 이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천일의 맹세'는 26사단에 배치되고서 배웠다. 고참들 사이에 전해오는 전설로 제대한 고참 가운데 누군가가 이 노래 듣고 그리 펑펑 울었다고. 역시나 시쳇말로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경우였다. 그러고보니 대중가요 가운데 이와 비슷한 내용이 윤종신이 부른 '오래전 그날'이었다. 진짜 이 노래 부르면서도 눈물 글썽이던 고참이 있었는데.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남자 아닌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것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남자친구 군대 있는 동안 기다려준다고 제대하고 결혼까지 가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귀는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야 원래 일상다반사다. 한 번 사귀었다고 결혼까지 가는 경우는 선사시대에도 그리 없었다. 그러니 사랑노래들이 그리 청승맞지. 아주 오래된 사랑노래도 결국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껏 군대 있는 동안 기다렸는데 남자가 자기 싫다고 가버리면 어쩌는가.


지금이야 그런 것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여자에게 나이란 모든 것이었다. 보다 어리고 젊을수록 높은 가치가 매겨졌다. 나이 스물 꺾이면 그때부터 노처녀취급받으며 여러모로 불이익을 당했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값에 제대로 대우받으며 좋은 조건에 결혼하려면 보다 일찍 아직 어린 나이일 때 결혼하는 것이 유리했다. 무려 3년이다. 군대 끌려간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여자 역시 자기의 가장 좋은 시절을 남자친구 군대있는 동안 저당잡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가 좋으면 모르겠는데 남자는 헤어지고 다른 여자 찾아도 상관없지만 그러면 그동안 기다린 자기는 어떻게 되는가.


내 주위에도 기껏 군대간 남자 기다렸더니 차버리고 다른 여자 사귀더라는 놈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놈들도 군대 있는 동안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 사귀었다면 고무신 거꾸로 신었네 어쨌네 원망을 쏟아냈을 것이다. 여자는 믿을 게 못된다고. 여자는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도 결혼도 결국은 현실인 것이다. 어차피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것이 젊은 시절의 사랑이라면 자기를 위한 이기 역시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군대에서 차이면 더 억울한 것은 휴가라도 나가기 전에는 여자를 찾아가 원망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혹시라도 차이기 전에 여자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나라에 젊음을 볼모잡힌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슬퍼하기에도 메마른 이야기들인 것이다.


사실 여기 올린 동영상의 가사와 멜로디는 내가 아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거의 전혀 다른 노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다르다. 하지만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구전가요란 그런 것이다. 불리는 사이 가사도 바뀌고 멜로디도 바뀐다. 처음 누구에게 시작되었는지 부르는 사이 전혀 원래의 노래와 상관없이 바뀌고 만다. 그래도 논산훈련소의 '물새가'와 28사단의 '물새가'는 크게 차이가 없었는데.


요즘은 군대 있는 동안에도 쿨하게 이별하고 제대한 뒤 쿨하게 다른 사랑을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랑에 목숨걸었던 그야말로 오랜 시절의 낭만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사랑이 그렇게 간절하고 절실했던 모든 것이 소중하던 오랜 옛시절의 추억과 같은 것이다. 인생 뭐 별다른 게 있던가.


추운 겨울 연말을 앞두고도 군대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무엇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그곳에서 무엇을 겪을지. 고통을 즐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치지 않기를. 나라에 충성할 것 없다. 자기에 충성하라.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