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평소처럼 젓가락질 하라면 그게 되겠는가. 발목을 접질렸는데 절뚝거리지 말라면 그걸 뭐 어쩌라는 것일까. 하긴 군대에서는 발못 제대로 돌아가서 걸음도 못떼는데 빠졌다며 그 위에 기관총까지 얹어주더라. 덕분에 지금도 멀쩡히 서있다가도 제풀에 발목이 삐기도 한다.
그래서 외상인 것이다. 다친 만큼 흔적이 남는다. 외형이든 내용이든 그만큼 흔적을 남긴다. 사실 황경일(이주승 분)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는 엄마의 외도가 아니었다. 그 엄마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엄마의 잘못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는 누가 용서할 수 있겠는가. 법이 용서하고 세상이 용서하도 정작 용서를 구할 대상은 세상에 없다. 필사적으로 합리화해야 한다. 나는 잘못이 없다.
엄마가 잠들어있는 방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모든 조각이 맞춰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나치다. 아무리 엄마의 외도가 큰 상처가 되었다고 그렇게까지 여성을 증오하여 끔찍한 범죄르 저지른다는 건 얼핏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엄마처럼 여성이란 부정하고 불결한 존재이기에 벌을 주는 것이라면 정작 심판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어색하다. 마치 어설픈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만큼 상처받았고 그래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부정으로 인한 피해자이기에 이른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짓거리까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엄마의 탓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무진혁(장혁 분)에게 반발하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자체가 스스로 피해자가 아님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되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불쌍하다. 나는 가엾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연민에 더 가깝다. 자기를 위로하며 변명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황경일이 그토록 경찰을 불신하고 혐오하느 것도 그때 자기가 지은 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이 지은 죄은 댓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어설프게 몸만 풀려나고 말았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할수도 용서할수도 없는 혼란 속에 그는 무척이나 갈 곳을 잃고 방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방황의 끝은 더 지독하게 자신을 연민하며 더 큰 죄로 밀어넣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남들처럼 멀쩡히 젓가락질도 하고 걷기도 하며 아무일없이 살아가기는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고 박은서(손은서 분), 박한별 자매에게는 황경일과 달리 이미 아무 상처도 남지 않았던 것일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남들처럼 걸으려. 남들처럼 서고 않느려. 남들처럼 웃고 말하려. 단지 그 차이다. 하지만 하필 엄마를 죽였다. 그토록 사랑하던 엄마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그 죄를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갑자기 주변인물들의 가정사로 들어가도 나니 한창 고조되던 긴장이 어이없이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알고 보니 환경일의 엄마가 바람피운 상대의 딸이었다. 자신의 엄마와 바람피운 학교 선생님의 딸들이었다. 좀 그럴싸한 다른 전개는 없었던 것일까. 어린아이처럼 울며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은 수준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하긴 그렇게 유치한 것이다. 인간의 악의란. 인간의 죄라는 것은. 한꺼풀 벗기고 나면 하찮고 한심하기만 하다.
너무 수사가 쉽게 술술 풀리니 무언가 허전하기도 하다. 그나마 강권주(장하나 분)가 산 채로 묻힐 뻔한 장면을 제외하고 수사가 너무 순조로우니 아무래도 크게 긴장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강권주가 찾아낼 것이다. 무진혁이 잡을 것이다. 그래도 헤드폰 너머로 들리는 긴박한 소리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조이게 만든다. 직접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듣고 말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가장 핵심이다. 그 긴박감이 드라마의 재미다. 해결되는 순간은 허탈하기도 했다.
지나친 긴장감은 역시 드라마만의 개성이라 생각하고 여기며 본다. 지칠 정도로 항상 심각하지만 그런 드라마도 하나쯤 있어도 좋다. 강권주의 귀로 듣는 능력은 이번엔 살짝 장식이었다. 기대대로 황경일이 진범을 향한 단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고 새로운 진실이 드러난다. 한 걸음씩 나간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과장 - 선인이 되기 위한 계기, 현실을 비웃는 코미디 (0) | 2017.02.10 |
---|---|
보이스 - 부족한 완급조절, 그러나 제대로 조여주는 긴박감 (0) | 2017.02.06 |
내일 그대와 - 예쁘지만 지루한, 풍경화같은 (0) | 2017.02.04 |
김과장 - 양아치보다 더 양아치스런 그들 (0) | 2017.02.03 |
김과장 - 소오강호... (0) | 2017.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