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선한 것은 단지 악해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적이고 청렴한 사람은 파렴치와 부정을 저지를만한 환경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어도 단지 아직 선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직 의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은 선하며 또한 악하다. 악하며 또한 선하다. 단지 하나의 계기다. 그리고 갈림길에서의 선택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사람도 없고, 원래부터 악한 사람도 없다. 선해질 기회를 만났고 악해질 동기와 만났다. 김성룡(남궁민 분)이 삥땅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온 이유는 하나다. 아버지다. 아버지의 고단했고 비참했던 삶이,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이 그로 하여금 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게 만든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선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어차피 한국사회에서 선이란 의미없다. 양심이니 도덕이니 정의니 하는 것은 전혀 아무 가치도 없다. 한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부정을 저질러야 한다. 불법을 저질러야 한다. 양심을 한쪽 구석에 치워두고 썩어빠진 세상에 맞춰 자신도 역시 썩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덴마크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 그대로 계기였다. 단단히 싸매고 있었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며. 자기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면서. 그러나 한 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다 그 틈으로 억누르고 있던 본성이 비집고 새어나오고 있다. 원래는 선했다. 원래는 정의로웠다. 현실이 그로 하여금 그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기를 거부하게 만든 것이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기업의 부정과 불법과 전횡들이 그를 에워싼다. 원래 그런 것이 그가 사는 현실이다.
한 바탕 우화다. 당장 타락한 검사 서율(준호 분)부터 상당히 시의적인 풍지와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정의를 지키라는 검사들이 오히려 범죄에 몸담는다. 법을 지키랬더니 앞정서서 법을 농락한다. 그것을 검찰이라는 조직이 또 비호하고 있다. 유아적이다. 사법시험 합격하겠다고 공부만 했더니 똑똑하기는 한데 생각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들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회장 박현도(박영규 분)의 아들 박명석(동하 분)처럼. 그래봐야 기껏 김성룡의 폭력 몇 번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주제다.
중국경제가 확실히 이제 대한민국의 위에 있다. 자본의 규모부터 다르다. 중국의 투자에 한국의 대기업이 휘청휘청한다. 의인에 대한 자세가 남다르다. 어떻게 중국기업이 한국기업보다 더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듯 보인다. 벌써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묘사될 만큼 중국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무례하고 양심도 도의도 깡그리 무시하는 불합리한 집단은 오히려 한국기업들이다.
대놓고 만화적인 연출이 즐겁다. 깊이 생각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가볍게 훑고 지나며 웃게 만든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진짜 목적이다. 악을, 부정을, 범죄를, 비리를, 그냥 하하 비웃으며 경멸하도록 만든다. 악당치고 멋진 놈이 없다. 가장 마음에 든다. 개자식은 원래 개자식이어야 한다.
괜히 질척거리는 러브라인 없는 것도 또 하나 장점이다. 윤하경(남상미 분)과 김성룡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홍가은(정혜성 분)도 아직 선을 넘지 않고 있다. 코미디는 코미디로. 어차피 더 터무니없이 웃기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일 터이므로.
남궁민은 진짜 연기를 잘한다. 아주 천연덕스럽다. 얄미워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일상적인 대사들은 작가의 센스를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코난이냐? 김전일이냐? 아는 사람만 아는 지극히 계층적인 대사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이 김성룡을 의인으로 만든다. 또 한 번 세상을 조롱하며 비웃는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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