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이스 - 마침내 드러난 진범의 모습,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다

까칠부 2017. 2. 13. 03:47

하긴 신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람 하나나 둘 쯤 죽인다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운명도 바꿔 놓을 수 있다.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가 하루아침에 자기가 세들어살던 집주인이 된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래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사이코패스라고 모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이코패스들이 자기가 사이코패스인 줄 모르고 그냥 조금 별난 사람 정도로 여겨지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라고 하는 억압이 개인의 충동마저 강제해버리는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이고 어떤 것이 죄인지는 몰라도 어떤 행동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올지는 본능으로 알 수 있다. 사이코패스든 그렇지 않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대개는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일 때다.


보다 강한 처벌로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벌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처벌받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니면 처벌받는다는 자체를 아예 생각지 않고 있거나. 굳이 사이코패스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을 죽여도 전혀 아무일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힘과 그래도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쾌락살인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인가는 알 수 없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만 반사회적 충동장애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애인가는 알 수 없다. 말한 것처럼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면 대개는 그렇게 한다.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상대에게 살의를 느낀다. 상대를 마음껏 농락하고 능욕하여 처참하게 죽이는 상상을 한다. 다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원래 양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굳이 양심을 의식하며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일수도 있다.


그냥 미친 놈이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 계기가 무엇이었든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단지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이 충동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힘이 있고 그래도 되는 환경에 있다. 경찰마저 그를 위해 협력한다. 그를 도와 진실을 감추어준다. 정작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잡아 처벌해야 하는 경찰이 범죄자와 손을 잡는다. 이쯤 되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하필 배경이 경찰이라는 것이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이 피해입고 그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적지 않은데 정작 범죄를 저지른 경제사범은 나라경제를 이유로 설사 처벌받더라도 이내 사면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살인이 아닐 뿐이다. 회계를 조작하고, 주가를 조작하고, 온갖 불법에 편법을 동원해도 그들에게는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 벌을 주지 않는다.


장혁(무진혁 분)의 무술액션은 과연 멋드러지다. 확실히 절권도의 동작들을 정확히 구사하며 격투씬을 주도하고 있다. 좁은 통로라는 것도 있어서 한 번에 한 명만 상대하는 구도도 매우 적절하다. 한 번에 한 명 씩. 그때마다 적당히 상처도 입어가며. 묶여있던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과정도 간결하지만 효과적이다. 아직 자유로운 다리로 한 번에 상대를 제압하고 그 몸을 발판삼아 팔까지 풀어낸다. 영화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정확하며 한 편으로 잔혹한 나이프액션은 남상태(김뢰하 분)를 제압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남상태가 범인일 것이다. 아니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절묘하게 진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진혁이 남상태를 제압한 상태에서 이미 그는 범인일 수 없는 것이다.


참 잘생겼다. 그리고 매우 단정하고 깔끔하다. 너무 선명한 선이 그래서 어떤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선역보다 악역이 더 어울리는 매력적인 얼굴이다. 일조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마치 진짜 쾌락살인마 사이코패스는 이런 얼굴이어야 하는 것처럼. 그냥 보이는 순간 아예 확신하게 되었다. 아니라면 김재욱이라는 이름이 너무 아깝다. 무진혁과 강권주(장하나 분) 두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잡으려 하는 진범이다. 경찰까지 나서서 비호하고 있는 흉악한 살인마다. 무심한 잔혹함과 광기어린 이기가 과연 이런 것이 쾌락살인마구나 떠올리게 만든다. 비로소 진범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케이블TV라지만 TV드라마치고 범죄의 묘사가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영화 가운데서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범죄를 묘사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전기톱이 등장하고, 칼에 찔려 피가 튀며, 무엇보다 살해한 시체를 아예 옷장에 매달아놓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마네킨이겠지만 입까지 찢었다며 은근슬쩍 보여주는데 솔직히 역겨웠다. 단지 범죄의 잔혹함만을 비틀린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자극적인 소재로만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강권주의 활약이 그리 크지 않았다. 결국 실제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형사 자신이다. 형사 자신의 감이고, 경험이고, 그리고 실력이다. 혼자 힘으로 범죄조직을 모두 제압한다. 연출과 구성은 상당히 적절해서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전체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지금껏 느꼈던 답답함이 한순간에 풀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진실이 눈앞에 등장한다.


장계장만이 아니었다. 서장까지 한통속이었다. 그러니 강권주와 무진혁의 수사를 그렇게 강권을 동원해가며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경찰이라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척-하지만 그런 논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역시 클리셰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서 경찰은 오직 무능하거나 아니면 부패해 있어야 한다. 경찰이 제대로면 드라마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겨우 본격적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