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기구의 부정과 부패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비효율과 낭비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조직에 있어 효율은 곧 신뢰다. 서로 믿고 협력함으로써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불신하면 고스란히 단위조직이 가지는 취약점만을 노출시킬 뿐이다. 당장 동료경찰이 범죄집단에 납치되어 갔는데 경찰력을 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112신고센터 단독으로 경찰과 범인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만일 납치된 것이 경찰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평범한 시민이 범죄집단에 의해 납치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면? 그런데도 서로 믿지 못해 솔직하게 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 서로 영역을 나누고, 서로 책임을 나누고, 그리고는 성과를 다투고. 하긴 강권주(장하나 분)의 입장에서도 분명 할 말은 있다. 장경학(이해영 분) 계장이야 말로 의심 수준이 아닌 지금 단계에서 경찰내에서 범죄자들에 협력하고 있는 조력자로 명백하게 밝혀진 상태다. 장계장에게 사실을 알렸다가 그의 방해로 무진혁(장혁 분)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더구나 장경학 말고도 저들의 조력자가 경찰 안에 몇이나 더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다. 동료인 무진혁이 범죄자들의 함정에 빠져 위험해진 것이 명확해진 상황에서도 감히 그 사실을 다른 경찰들에 알리지 못한다. 다른 경찰들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112신고센터 혼자의 힘만으로 무진혁을 찾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기껏 센터의 지시를 받고 무진혁을 찾으려 달려간 것이 심대힉(백성현 분) 하나였다. 한 시가 급한데. 박복순으로 위장하고 있던 용의자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 무진혁에게 위해를 가하려 그를 공격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이유들 때문에 모든 힘을 무진혁을 찾는데 쏟아넣을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범죄자들은 성공한 것이다. 내부의 협력자를 두려워해서 경찰이 자신의 모든 힘을 범죄자들을 잡는데 쓰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다. 자본주의의 속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라진 자본주의는 사람의 목숨마저도 자본으로 계량하려 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희생자들의 억울함이나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그들에게 돌아갈 보상금으로 대신하려 하는 심리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숨값으로 그만큼 받았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만큼 받았는데 뭐가 더 바라는 것이 있는가. 돈이 되기에 사람을 죽이고, 돈이 되니까 다시 사람을 죽인다. 차라리 악의조차 느껴지지 않아 더 섬뜩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일상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이란 어쩌면 종이쪼가리에 찍힌 숫자 몇 개 만도 못한 것인지 모른다. 드라마에서는 흉악한 범죄자들이지만 현실에서도 단지 그런 범죄자들만이 그런 끔찍한 일들을 일상으로 저지르고 다닐까.
적당한 인정이 그나마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에 윤활제가 되고 완충제가 되어준다. 역겹토록 추악한 인간의 욕망 가운데 그래도 인간의 정이며 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반전처럼 더 끔찍한 현장에서 무진혁을 보게 한다. 무진혁이 잡혀와 매달려 있는 옆에서 고기를 잘라 가공하고 있었다. 사람도 단지 고기에 불과하다. 그냥 숨쉬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숨이 멎으면 그들 또한 소나 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고센터만이 경찰 내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다. 오로지 신고센터만이 믿을 수 있다. 신고센터에만 의지해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더 악취미로 가자면 신고센터 안에 저들의 협력자가 있어야 한다. 배신자로 인해 모두가 더 큰 위험에 처해야 한다. 아마 그렇게 되기 쉬울 것이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세상에서 거짓없는 소리가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 진실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다.
상당히 디테일하다. 시체냄새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체냄새가 아니라 락스냄새였다. 썩은 악취가 아닌 오히려 쓰레기의 썩은 냄새와 대비되는 락스의 냄새가 무진혁의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깨진 병을 든 용의자의 떨리는 손이 그런 의미일 줄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무진혁의 위기를 알리는 방식도 절묘하다. 증언에 사실을 숨긴다. 감질나게 조각들을 던져준다. 스릴러로서 보는 재미가 있다.
여전히 조금은 지치는 느낌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밀어붙이는 힘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욕심이 너무 지나쳐도 그리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부족한 여유와 여분을 더 강한 충격과 긴장감으로 대신한다. 가끔 힌이 빠지는 듯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 작업이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더 가쁘게 달려도 좋다. 이번회차의 마지막도 숨이 멎을 것 같다.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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