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과장 - 당연히 내가 일하고 받아야 하는 돈들에 대해

까칠부 2017. 3. 9. 02:05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치졸한 놈들에게는 치졸한 수단으로. 악당들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인간들인 양 묘사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황규영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개새끼는 개새끼다. 쌍놈은 쌍놈이다. 씨팔놈은 씨팔놈이다. 그에 어울리게 대우한다.


간만에 드라마를 보다가 통쾌하게 웃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게 정의다. 법이 아니다. 그냥 사기다. 유치한 협잡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잘나가던 엘리트 검사 출신의 서율(준호 분)을 꼼짝없이 물먹인다. 법도 정의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대단한 거물을 아주 파렴치한 범죄자로 만들어 모두의 앞에서 망신당하게 만든다. 얼마나 통쾌한가. 저 개새끼가. 저 쌍놈의 자식이. 저 썩을 종자가.


그러고보면 우병우는 한국 근현대사가 만든 병폐의 정화라 할 수 있다. 검찰이란 이렇게 썩었다. 이 사회가 길러냈고 그리고 믿고 있는 엘리트란 것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이 썩어 있었다. 양심이란 없다. 법이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법으로 저들을 건드릴 수 없다. 더 치졸하고 더 비열하고 더 야비한 방법으로.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원래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가였다. 법이 그렇고 계약서도 그렇게 쓰여져 있다. 하지만 남의 돈이다. 그래서 남의 돈 받아먹는다는 말을 싫어한다. 내가 잡은 물고기를 가져갔으면 그 물고기의 값은 원래 내 소유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유재산이다. 아무리 계약을 맺고 내 건물을 임대했어도 건물 자체에 대한 소유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 노동력을 이용해 이익을 봤으면 그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니까. 내가 돈을 주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이 묻혀버린 이 사회의 현실이었다. 임금을 체불하고는 밀린 임금을 주는 것을 무슨 대단한 특혜라도 베푸는 양 거들먹거린다. 말 안들으면 그나마 임금도 주지 않겠다. 말 잘 들어야 정규직의 임금을 깎아서라도 일부나마 임금을 지급하겠다. 내가 지금까지도 마르크스를 대단하게 여기는 이유다. 프롤레타리아는 노동력이라는 생산수단을 가진 또하나 자본의 주체여야 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여야 했다. 하지만 노동자는 그저 자본가가 주는 임금이라는 시혜를 받는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아니다. 나름대로 사용자라 할 수 있는 편의점 점주들마저 그같은 이 사회의 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참 개같은데. 그런데 꼭 시위라도 하면 국민은 사용자의 편을 든다는 것이다. 알바가 돈 많이 받는 것을 싫어한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인데도 돈을 밝히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사용자가 돈을 밝히는 것은 정당하다. 노동자가 돈을 밝히면 순수하지 못하다. 그런 깊은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긴 많은 편의점들이 그야말로 이나마도 그만둘 수 없어 계속 경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는다. 더 깊다. 더 넓다. 어째서 직장에서 잘린 중년의 가장들은 편의점에 목을 매야만 하는가.


당장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아니지만 얼마 뒤의 자신, 혹은 주위의 누군가가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다. 이제 치킨집도 무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편의점밖에 없다. 고작 몇 백 미터 안에 편의점이 무려 서너 곳이 넘는다. 그래서 이익이 되는가. 돈이 벌리는가. 심지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프렌차이즈의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보았었다. 어째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어째서 편의점 점주들은 그저 을의 위치마저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는가.


서율의 책임만은 아니다. TQ의 책임도 아니다. TQ택배 역시 마찬가지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사회 전체에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구조에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내 잘못이라기보다 저놈들의 잘못으로. 저 개새끼들이 모두 잘못한 탓으로. 그래도 통쾌하기는 하지만.


과연 양아치인 김성룡(남궁민 분)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정의로는 안된다. 법으로도 안된다. 사회의 관습이나 통념으로도 안된다. 아웃사이더여야 한다. 경계에 있어야 한다. 이 사회 전체를 비웃을 수 잇는 누군가여야 한다. 전혀 예고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섹스드립과 아저씨들만이 알 수 있는 서브컬처의 취향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게 만든다. 물론 필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모두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외삼촌 이모들에게 들어 아는 것이다. 순수한 청춘인 필자는 그저 남궁민의 연기에 웃고 있을 뿐.


그냥 개자식들이다. 근본없는 호로새끼들이다. 그런데 기업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자본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 자본이 아쉬운 처지이다 보니까. 그런데 저들이 정의가 된다. 도덕이 되고 윤리가 된다. 이 사회 자체가 되어 버린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게 불온하고 불손하다. 웃으며 현실을 본다. 쓰고 매운 현실이다. 




이거 다 쓰는데 헤아려 보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미친 듯 공감하면서 드라마 끝나고 글 쓸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술도 한 잔 한다. 통쾌하다. 이 한 마디가 진짜다. 내가 드라마를 보며 쏘아댄 욕을 다 옮길 수는 없다. 마지막에 진짜 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