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그토록 이승철을 싫어했는가 곰곰히 생각해 봤다. 분명 마약 때문은 아니다. 남의 가정사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편도 아니다. 이승철을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승철이라면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다. 왜일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한참을 기억을 더듬었더니 바로 이 이름이 나왔다. 송골매. 그리고 구창모. 충격이었다. 설마 구창모가 송골매를 탈퇴하다니. 이유는 모르지만 주위에서도 난리였다. 이제 송골매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아직 밴드에서 프론트맨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구창모가 탈퇴하고 송골매는 꽤 오래 침체기를 겪게 된다. 물론 그뤔에도 여전히 나는 송골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단지 전처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대중적인 밴드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구창모도 좋아했었다. 그보다는 당시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던 음악선생님이 구창모의 노래를 좋아해서 음악시간에 악보까지 복사해서 가르쳐주었던 탓이 컸다. 애써 무시하고 듣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따라불러야 했었다. 더구나 그 무렵 배철수도 솔로로 음반을 내고 꽤 노래를 히트시키기도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송골매에는 구창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배철수 역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구창모 만큼은 아니더라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활동은 이어갔고 그래서 상실감도 그리 크지 않았다. 또 의외로 배철수의 목소리와 창법이 나와 더 맞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활은 아니었다. 당시 트로이카라 불리우던 시나위와 백두산에 비해 한참 더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 인기의 대부분은 미성의 미소년이었던 이승철을 향한 것이었다. 록씬에서 알아주던 김태원의 기타는 그런 대중들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김태원의 외모도 목소리도 오히려 그런 대중들에게 비호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나서서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배철수는 송골매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이승철의 탈퇴는 곧 부활의 종말을 의미했다. 사실은 이승철의 탈퇴가 아닌 김태원을 축출하고 난 뒤 해체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앞선 송골매의 기억이 있었기에 부활의 보컬이었다가 솔로가수로 다시 나타난 이승철의 모습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록의 부흥을 이끌었던 백두산, 시나위, 부활 세 밴드가 하나같이 해체되거나 침체기에 빠져 있던 상황에 솔로로 나와서 잘나가고 있으니 마치 모든 것이 이승철의 탓으로만 여겨지고 있었다. 사실은 원래 구창모에게 갔어야 했을 원망이 이승철에게 대신 돌아간 것이었다. 송골매처럼 이승철 없이도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던 부활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었다. 멋대로 팀을 떠나서 모두를 곤란케 만드는 것은 배신이다. 말했듯 꽤나 어렸던 시절이었다. 다만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아 지금까지 이어졌을 뿐.
구창모가 나가고 나서도 송골매는 꽤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말한 것처럼 배철수도 비슷한 시기 솔로앨멈을 내서 꽤 히트시키기도 했다. "아마 노래를 들으면 대부분 알만한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를'이 배철수 솔로앨범에 실려 있던 노래였다. 바로 다음 앨범에서 '하늘나라 우리님'이 꽤 히트하기도 했었고 마치 회광반조처럼 마지막 9집에서는 '모여라'로 공중파 1위도 했었다. 하지만 이때쯤에는 밴드의 리더로서 많은 좌절을 겪으며 지칠대로 지친 배철수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게 된다. 송골매가 사라진 것이다. 한때 속설처럼 떠돌았던 한국 밴드의 10집한계설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한국 밴드는 결코 10집을 넘겨 이어가지 못한다. 지금 아마 공교롭게도 부활이 13집으로 유일하게 그 징크스를 깼을 것이다.
9집에 수록된 노래였다. 사실 대중적으로 히트했던 '모여라'보다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 아마 가사는 영국 시인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쓴 시였을 것이다. 그리고 곡은 배철수가 썼는데 그냥 한 귀에 듣기에도 배철수의 곡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울하고 불길하고 무기력하고 체념적인 정서가 딱 당시 염세주의에 빠져 있던 나를 닮아 있던 노래였다. 장자를 잚옷 읽은 탓이다. 쇼펜하우어가 불경을 잘못 읽고 염세주의가 깊어졌던 것처럼. 그런데 가만 가사를 읽어보면 그리 염세적이기만 한 노래는 아니었는데.
당대의 아이돌밴드였던 만큼 구창모 배철수 양대 프론트맨 말고도 멤버들에 대한 대중의 인기도 상당했었다. 한때는 멤버 이름도 다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이야 뭐... 중간에 멤버들도 꽤 바뀌어서. 부활을 나온 이태윤이 위대한탄생에 합류하기 전 송골매에 몸담기도 했었다. 배철수가 아마추어티를 완전히 벗고 프로밴드로 거듭나기 위해 영입한 인재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감한 영입이 팀의 조화를 해치고 패들과의 거리도 벌여놓았으니. 배철수가 송골매를 그만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있었다. 하나의 집단을 책임지고 이끌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보컬이 전부인 줄 아는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밴드를 앞장서서 이끈다는 것은 더욱.
1970년대 대마초파동으로 많은 프로밴드들이 활동을 제약당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캠퍼스밴드의 결정판같은 존재였다. 젊었고 잘생겼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또래였다. 음악까지 당시로서는 드문 젊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세련되면서 수준높은 것이었다. 다만 캠퍼스밴드라는 한계는 두고두고 발목을 잡아 끝내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음악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송골매가 가진 태생적 한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 마치 록의 전성기의 끝을 알리듯 80년대를 마치며 전설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여전히 배철수는 자주 보고 자주 듣는다. 항상 보고 듣지는 못한다. 전처럼 그렇게 음악을 듣는데도 열정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저 무심코 보고 싶으면 보고 듣고 싶으면 듣는다. 구창모가 다시 돌아와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무척 반가웠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벌써 옛기억을 거스를 정도로. 세월은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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