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길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남들과 다른 엄청난 힘을 타고났는데 처음부터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줄 안다는 자체가 사실 현실과 동떨어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존재에 고민도 하고 갈등도 하고 컴플렉스도 느껴보고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그 힘을 감추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오랜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사실 그럼에도 결국 드라마의 중심은 도봉순(박보영 분)과 안민혁(박형식 분)과 인국두(지수 분) 세 남녀 사이의 삼각관계일 것이다. 나머지는 단지 그를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인국두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힘이 컴플렉스인 도봉순과 도봉순을 좋아하지만 오히려 게이라는 오해만 사고 있는 안민혁, 그리고 도봉순을 좋아하면서도 그런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국두. 어떻게 그들은 서로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여전히 도봉순과 안민혁 사이에 오해는 깊고, 도봉순과 인국두 사이에도 사소한 어긋남이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인국두를 중심으로 인국두의 연인 조희지(설인아 분)와 도봉순의 동생 도봉기(안우연 분)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만들어져간다.
여성을 상대로 연쇄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마침내 도봉순의 친구 나경심(박보미 분)마저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끔찍한 화상을 입은 범인의 상체가 드러난다. 얼굴이 없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다. 결국 범인이 마르고 가냘픈 연약한 여자들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잡혀온 여성들에게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동정의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도봉순이 자신의 힘을 옳은 일에 쓰고자 결심하는 순간 범인은 악으로써 확실하게 자시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후는 도봉순 안민혁 인국두 세 남녀의 협력에 의한 범인잡기가 아닐까. 안민혁을 노리는 의문의 협박범의 정체를 밝혀내는 그 순간까지.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드라마인가 주제를 명확히한다. 첫째는 안민혁을 노리는 협박범과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범죄이고, 그 다음은 도봉순과 안민혁, 인국두의 삼각관계이며, 진짜는 결국 주인공 도봉순이 가지는 다양한 매력이다. 하필 도봉순이 그런 인간을 넘어선 힘을 가지게 된 이유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바뀌고 비일상이 일상으로 바뀌는 역전이 박보영이라는 배우에게 새로운 매력을 부여한다. 천연덕스럽게 힘세고 뻔뻔스럽게 강하다. 슈퍼히어로와는 다르다. 그냥 힘만 센 평범한 여자다. 힘만 더럽게 센 보통보다 더 예쁘고 귀여운 젊은 여자다. 안타깝게도 박형식이나 지수나 그를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제목만큼이나 드라마의 중심은, 그리고 삼각관계의 중심까지 오로지 도봉순 하나 뿐이다.
어차피 도봉순의 힘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다. 개연과 인과로부터 벗어난다. 그런 점에서 제작진도 도봉순만큼이나 뻔뻔하다. 과감하게 일상을 벗어난 웃음을 시도하는데 정작 균형을 유지하며 일상의 재미를 더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도봉순처럼 힘센 여자가 현실에 있다면. 도봉순처럼 예쁘고 귀엽고 힘만 센 여자가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가장 큰 미덕이다. 어느새 드라마를 보는 사이 드라마의 허구가 사실로 여겨진다. 도봉순을 둘러싼 일상들에 빠져들고 만다.
마음껏 웃는다. 주인공 도봉순이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과 행동들을 즐기게 된다.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생물이 있을까. 뭔가 인간을 넘어선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다. 박보영의, 박보영을 위한, 박보영에 의한 드라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배우의 매력과 연기가 차라리 마력과 같다. 재미있다. 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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