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김씨표류기, 재미있네...

까칠부 2017. 3. 13. 01:04

하긴 처음 이런 영화가 나왔다 소개하는 것만 보고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이건 진짜 내 취향이다. 그러나 내가 극장 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관에 꼼찍않고 앉아서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도 고역이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영화처럼 그냥 지나쳤었는데...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다. 오히려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번화한 도시에서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는 군상들을 보여준다. 우연과 오해로 인해 현실로부터 고립된 남자와 스스로 현실로부터 도망친 여자가 각각 자기가 갇힌 섬에서 다른 섬에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린다. 사실 그것이 주제다. 현실은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인 이상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밤섬에 홀로 고립된 남자를 발견하고 마치 사랑에 빠지듯 집착하게 되는 여자의 반응이었다. 사실 여자에게 세상이란 허구였다. 컴퓨터를 켜면 보이는 사이월드처럼 사람들 사이에나 존재하는 허상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외면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실제가 있었다. 하필 하체를 벌거벗고 있었다. 살짝 성적이면서 매우 강한 은유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모두가 외면하는 인간의 성기야 말로 인간의 본질일지 모른다. 평소 옷으로 가리고 있던 남성의 실체를 보고 살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을 본다. 살아있다는 생명이었다.


실제에 대한 동경이었다. 잘 짜여지고 만들어진 관계에 의한 허상이 아닌 살아있는 실존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래서 없는 용기까지 쥐어짜 집을 나서 편지를 전한 것이고, 마침내 경찰들에게 잡혀 섬에서 쫓겨난 남자를 쫓아 분주한 거리를 달리기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편으로 그런 사소한 관심조차 남자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스스로 섬에 고립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자신을 거부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섬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래서 짜장면을 거부하고 옥수수를 끝까지 길러 짜장면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었다. 그것이야 말로 남자에게 실제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자기가 가진 것. 자기에게 가능한 것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의 진심.


그래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뜻밖에도 서로 고립되어 있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섬의 김씨나 아파트의 김씨나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 진심으로 자신을 지켜봐주고 혹은 자신이 지켜보는 한 사람만 있다면. 어쩌면 고독이란 그런 한 사람을 가지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많아서. 너무 흔해서. 그래서 그런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막연히 이름도 알지 못하는 상대인데도 쫓아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도 알아보고는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유머코드도 상당한데 그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그렇게 잡으려 애써도 잡히지 않던 물고기가 김씨가 강물에서 샴푸로 머리를 감으니 둥둥 죽은 채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김씨가 구워먹고 남은 찌꺼기를 먹고는 다음날 아침 새들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도 김씨는 잘만 먹고 몇 달을 산다. 땀을 빨아먹고 짠맛이라고 좋아하는 것은 군대에서 이미 경험해 본 것이라. 하필 여름군번이라서 땀을 아주 미친 듯 흘리며 훈련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진짜 탈진해서 땀까지 빨아먹게 된다.


한 편으로 서울이라는 환경에 대한 감탄으로서 아마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하려 해도 어떻게 아파트와 원시의 섬을 대비할 수 있을까 벌써 고민부터 되기 때문이다.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서울에 큰 강이 있고 그 강 한 가운데 제법 큰 섬까지 있다. 한국이었기에 가능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극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쫄딱 망한 영화라 보려 해도 아마 내가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쯤엔 이미 막을 내렸을 가능성도 높다. 영화는 싫어하지는 않는데 굳이 일부러 보러 찾아갈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 그 정도면 싫어하는게 맞을까? 뜻밖에 좋은 거 하나 건졌다. 계속 봐야겠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