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여 빛이여 아득한 하늘이여
나의 백마가 울부짖는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바람을 가르는 갈기
나 소리 높여 외친다 나 소리 높여 외친다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뜻밖에 나로 하여금 학생집회에 대한 거리감을 결정적으로 좁혀준 노래였다. 설마 운동권 집회에서 만화영화 주제가를 따라부르게 되다니.
아마 당시 대학생 집회에서 부르던 만화영화 주제가가 둘 잇었을 것이다. 하나가 너무도 유명한 '미래소년 코난',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이 노래 '원탁의 기사'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사문학의 고전 '아더왕 이야기'를 소재로 완전히 해체해서 재구성한 작품이었는데 나름 상당한 괴작이었다. 어찌되었거나 당시 운동권에서는 노래 가사에 있는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라는 가사에 무척 끌렸을 것이다. 8,90년대 운동권의 중요화두가 바로 민주화 이후 통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래 자체도 행진곡풍으로 무척 힘차고 박력있다.
이 만화영화를 괴작이라 부르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외하고 원작과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만화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은 나중에 읽었다.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아더라고? 이런 게 란슬롯이라고? 트리스탄은 아예 아더왕의 기사도 아니었던 건가? 퍼시발은 원래 덩치큰 개그캐릭터였을 텐데. 더구나 결말까지 암울했다. 원래 트리스탄은 원탁의 기사도 아니었고, 란슬롯은 기네비어랑 불륜에 빠지며 원탁의 기사를 분열시키고, 정작 아더왕은 모드레드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어이없이 죽고 만다. 그나마 퍼시발 정도가 성배를 찾는데 성공해서 꽤 괜찮은 결말을 맞는 정도다. 그에 비하면 만화영화는 이 얼마나 희망찬 영웅물인가.
그러니까 일종의 암행어사물이었다. 영국의 왕위에 오른 아더가 정체를 감추고 여행하며 나라안의 여러 죄악과 모순들을 해결하는 이야기였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백마는 아더의 갑옷과 무기를 싣고서 따라다는 말이고, 그 말의 안장에는 갑옷과 더불어 신검 엑스칼리버와 십자가의 방패가 있어서 필요할 때면 휘파람으로 불러서 갑옷과 무기들로 변신을 하고 문제들을 해결한다. 혼자서는 안 될 때 나타나서 돕는 것이 퍼시발, 트리스탄, 아마 란슬롯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원작과 상관없다 말하는 것이다. 기생오래비같은 트리스탄은 흑발에 하프의 명인으로 활을 잘 쏴서 당시도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졌었다. 악역은 당연히 소수의 마녀 비비안이고 마녀를 쓰러뜨린 뒤에도 2부가 이어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인기가 있던 모양이었다.참고로 원작에서 엑스칼리버는 웬 이상한 기사와 싸우다 부러져서 비비안이 준 검으로 바뀌고 십자가의 방패는 성배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서 정작 아더는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주인공을 위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꽤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아더가 입고 다니던 갑옷과 엑스칼리버, 십자가의 방패를 거의 똑같이 따라그릴 수 있었다. 장난감도 무척 인기있어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엑스칼리버와 십자가의 방패는 그저 부럽기만 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것 살 돈이 없던 나는 공사장에서 폐목 주워다가 못을 박아 칼을 만들어 싸워야 했는데. 약해빠진 것이 비싸기는 오지게 비쌌다.사달라고 조르지도 못했다. 나중에 우연히 철거현장에서 쓰레기로 버린 것을 주워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쓰레기도 훌륭한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폐목과 폐석, 무엇보다 플라스틱 폐품들은 훌륭한 놀이도구였었다.
언제 방영이었는지 기억도 거의 없다. 아주 오래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집보다 외할머니집에 텔레비전을 먼저 들여놓았었다. 당시도 벌써 한참 낡은 14인치짜리 고물 흑백TV였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친구집이 아닌 곳에서 내가 채널을 선택해가며 TV를 볼 수 있었다. 진짜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과연 만화영화의 내용이 영국을 통일하는 것이 맞았는지. 모험은 혹시 2부가 아니었을지. 주제가는 확실하게 기억한다. 잊을 수가 없다. 그냥 스치고 지나는 먼 추억이다. 대학교 다닐 때도 정말 많이 불렀다.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요즘은 그런 말 하면 주사파니종북이니 불리는 모양이다만. 그리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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