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솔아솔아푸르른솔아

까칠부 2017. 5. 20. 03:37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에 눈물이

시퍼렇게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들어도 강물 저어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이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1987년 6.29선언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었다. 물론 국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들이 떨쳐 일어나 힘으로 서슬퍼렇던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마침내 쟁취해낸 것이었다. 직장인들이 일을 하다 말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집을 지키던 아주머니들이 피흘리며 도망치는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했었다. 더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연한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며 마치 강철의 무지개처럼 완고하기만 하던 군사독재를 불살라버렸다. 그 항복선언이었다. 더이상 전처럼 폭력으로 국민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다. 억압하며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코미디프로그램에서 특히 실세정치인들을 소재로 한 코너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최병서가 당시 1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대통령 노태우와 3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성대모사를 기가막히게 해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다. 김형곤은 KBS에서 본걱적으로 정치와 시사를 소재로 한 코미디코너를 이끌며 시사코미디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가장 큰 변화는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공안사범이 되어 끌려가야 했던 다수 민중가요들이 공공연히 공개된 장소에서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학교 교실에서 같은 반 녀석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따라부르고 있었다. 의미는 몰라도 가사와 멜로디가 비장하면서 무척 아름다웠기에 그저 노래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따라부르게 되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막 전교조가 생겨났을 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해직된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다. 그 가운데 한 분은 교생실습까지 우리학교에서 했었던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고향이 시골 어디라 했었고 양복도 교사가 되었다고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이 맞춰주신 것이라 했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교조로 인해 해직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후 복직이 되었는가는 그 뒤로 한 번도 학교를 찾은 적이 없었기에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학생회 차원에서도 선생님들을 구명하기 위해서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정작 나의 첫데모와 파업은 고등학교시절 전교조로 해직된 선생님들을 위해 학생회가 주도한 수업거부를 통해서였다. 그래도 감히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해산시키려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알 수 있었다.


노래의 뜻은 뜻밖에 거의 동시에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크게 사회문제등에 관심은 없었는데 워낙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쪽의 만화들까지 읽게 된 것이 계기였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만화광장'이나 '주간만화' 등 성인만화잡지들이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창간되고 있었는데, 1987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성적인 내용들과 함께 민감하고 첨예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들까지 다수 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런 만화들을 통해 전혀 의도하지 않게 '의식화'라는 것을 일찍부터 하게 되었다. 다만 대학에 진학해서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정식루트가 아닌 만화를 통해서 배운 '의식화'였기 때문에 정작 대학에 진학해서는 선배들과 상당한 의견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도 만화를 통해 배운 내 식대로의 의식화는 주류의 의견과는 사뭇 다른 온도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그때 어느 만화를 통해서 이 노래가 가지는 진짜 뜻에 대해 진짜 감명깊게 읽으며 배우고 있었다.


원래 이 노래의 주제를 함축해서 담고 있는 노랫말은 뜻밖에 '시퍼렇게'였다. 그밖의 다른 노랫말들은 바로 이 하나의 단어가 가지는 심상을 연상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눈물도 시퍼렇고, 쑥도 시퍼렇고, 강물도 소나무도 모두 시퍼렇다. 무엇보다 창살 아래 갇힌 죄수의 수의가 시퍼런 색이다. 군사독재의 서슬퍼렇던 엄혹한 시절에 오로지 민주화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참세상 참자유를 위해서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다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혀야 했던 젊은 영웅들에 대한 노래였다. 밖에서는 감옥에 갇힌 아들 걱정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동지들은 그래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절망처럼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필경 그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처럼 죄인이 되어 수의를 입고 좁은 창살 아래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눈물마저 뒤로 하고 답답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때 과연 사방이 막힌 좁은 창 너머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푸른 솔은 꺾이지도 굽히지도 않는 자신이며 마침내 봄처럼 찾아오게 될 희망찬 내일이기도 하다. 마침내 모두가 꿈꾸던 좋은 세상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도 그리고 동지들도 모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꿈은 노래가 공개된 장소에서 들리게 된 뒤로도 한참 뒤에나 이루어지게 된다.


참 많이도 잡혀갔었다. 맞기도 무지 맞았었다. 백골당에 맞아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골목을 뛰어다니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당시에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좌익용공사범이라고 대학생들을 수배하는 전단이 붙어 있기도 했었다. 당연히 대학에 가면 데모부터 하는 것이라고 고등학교 다니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제발 가족 생각해서라도 데모만큼은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고는 했었다. 자신들부터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부디 자기 자식만큼은 괜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그리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강제로 군대로 끌려가서 공공연히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지명수배자가 되어 이름과 얼굴을 감춘 채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고 숨어 도망쳐야만 했었다. 평생 남을 장애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마저 있었다. 박종철과 이한열은 1987년 참고 있던 국민들마저 떨쳐일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무고한 학생들까지 희생시켜서야 되겠는가. 이념도 무엇도 아닌 당연한 인정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그런 시절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멀쩡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하고픈 말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다.


물론 당시 운동권들 모두가 옳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때로 눈쌀이 찌푸려지고 때로 혐오와 경멸의 감정마저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에 대해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희생을 이미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한다. 설사 1987년 내가 대학생이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무모하게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서 희생하며 싸울 용기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나라면 도망쳤을 것이다. 외면하고 숨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나는 말 뿐이다. 조금의 육체적인 고통도 일신상의 불이익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했었다. 시퍼런 죄수복을 입고 사방이 막힌 좁은 감옥에 갇힌 채 그럼에도 민주화된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그 빚을 잊는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과연 같은 5월인데도 불과 작년과도 전혀 다른 느낌이다. 지난 9년간 느꼈던 5월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5월이다. 4월도 이랬으면. 4월에도 중요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나씩 한 걸음씩 풀어가면 되는 거니까.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적으로 그것도 대통령까지 함께 5.18기념식장에서 제창되고 있었다. 별 것 아닌데도 그마저 너무 고맙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그리고 이제 비로소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봄이 오기까지 겨울은 그리 혹독하고 길기만 하다. 잠시 봄이 왔는가 싶으면 다시 추운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버린다. 그래도 내일의 희망을 믿는 것은 얼음 아래 숨어 잠들어 있는 어린 생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봄이 오지 않아서 잠들어 있을 뿐 봄이 오면 다시 푸르게 움을 틔우리라. 한 걸음씩 하나씩 그렇게 오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이다.


어차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있으니까. 크롬을 쓰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은 듣지 못한다. '민주주의여 만세'도 있다. 그러면 어떤 노래가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릴까? 내가 가장 처음 들었던 민중가요였다. 가장 먼저 따라불렀던 노래였다. 그 뜻을 알지 못해도 이미 그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봄이 오고 세상이 다시 푸르러지기 시작할 무렵. 아직 봄이 오지 않아 겨우 비져나온 싹들이 얼어붙던 그 시절에. 그래도 봄은 오리라고. 좋은 날이 오리라고. 그리고 아직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꿈을 꾸는 동안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꿈을 이어받는 이가 있는 한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기쁜 나날이다. 그 뜻을 음미하며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