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내방울(내방울)
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무지개
파란하늘 담고 빨간하늘 담고 동글동글 내방울(내방울)
파란하늘 담고 빨간하늘 담고 동글동글 무지개
여기저기 구름따라 마음대로 두리둥실 두리둥실 춤추며
아롱다롱 꽃잔치에 바람타고 두리둥실 두리둥실 춤추며 와~
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내 방울(내방울)
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무지개
파란하늘 담고 빨간하늘 담고 동글동글 내방울(내방울)
파란하늘 담고 빨간하늘 담고 동글동글 무지개
산너머 먼 나라가지 바다건너 먼 나라까지 이리저리 춤춘다
얼마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노래였다. 무슨 노래일까? 동요인 것 같은데. 확실히 동요였다. 동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아이들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와 쉬운 가사,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그대로 담아낸 단순하면서 귀여운 노랫말까지. 소름끼칠 정도다.
한참만에야 알아냈다. 떠올린 것도 아니다. 들어보기는 들어봤다. 그러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벌써 수십년도 전에 보았던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의 삽입곡이었다니. 더구나 워낙 원작을 좋아했던 탓에 만화영화는 한 번 보고 더이상 보지 않았었다. 작화수준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던데다가 내용까지 상당히 시니컬하기도 했던 원작과 달리 더구나 아이들을 위한 공중파 만화영화에 어울리게 각색되어 있었다. 2부는 물론 아예 보지도 않았었다. 어떤 내용인지 지금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래 코미디라는 자체가 현실을 비틀고 뒤집는 것에서 시작된다. 현실의 완결된 구조를 왜곡함으로써 그 부조리를 통해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80년대 많은 코미디만화들이 상당히 냉소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진 이유도 바로 그래서였다. 그만큼 불의한 시대였으니까. 법도 정의도 없이 오로지 불의한 폭력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이 누적되고 있었다. 당장 만화계만 하더라도 십 년 넘게 합동출판사가 시장을 독점하며 만화가들이 생존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던 것이 바로 얼마전이었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의 양극화와 일상화된 반칙들에 대한 분노는 만화가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차라리 코미디였기에 더욱 그같은 현실의 모순들을 가볍게 비틀어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작 아동만화로 더 유명하지만 나같은 경우 김수정의 성인만화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를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진짜 내용들이 시쳇말로 싹퉁머리가 없었다. 그러고보면 둘리도 고길동을 이해하게 되면 어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싹퉁머리의 진수였었다. 한 편으로 바로 어린이만화였기에 어린이를 대변했던 둘리는 기성세대인 고길동에게 말썽으로써 대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항상 고압적으로 둘리일행을 내쫓을 궁리만 하는 고길동에게 정면으로 맞서지도 못하고 사소한 말썽들로 그를 곤란케 만들 뿐이다. 원래 병사들에게 주적이 간부이듯 아이들에게 주적은 어른들이었을 테니까. 더구나 부모도 아니고 얹혀사는 집 주인이었다. 딱 아이들 싫어하는 세사는 주인집 어를은 생각하면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세사는 것도 서러운데 주인집이 아이까지 싫어하면 그보다 견디기 힘든 것도 없다.
하지만 공중파로, 그것도 불특정한 다수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방영할 만화영화에는 상당히 거슬리는 요소들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어른과 함께 TV를 본다. 그냥 철없는 아이가 일으키는 소동 정도로 만화영화에서 둘리의 행동들은 순화된다. 현실적인 한계도 잇어서 둘리의 말썽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던 탓이기도 했다. 장기리시즈도 못되었다. 아마 6회 정도가 그것도 한 번에 방영되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겨우 막 TV만화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무렵이라 확신이 없어 그렇게 애매하게 만들어 방영하고 있었다. 원작을 좋아한다면 괴작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주제가만큼은 최고였다. 지금도 회자되는 명곡 '라면과 구공탄'부터 오프닝 주제가, 그리고 바로 이 노래 삽입곡이었던 '비누방울송'까지. 지금도 그래서 정작 만화영화보다는 주제가를 더 먼저 익숙하게 떠올리고 만다. 리메이크에서 이 주제가들을 쓰지 못해 얼마나 서운했는지.
작곡가가 누군지는 모르고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아줌마가 되어 부르는 동영상만 얼마전에 우연히 봤다. 아마 CF송을 주로 부르던 가수였을 것이다. 아이와도 같은 특유의 목소리가 아직도 여전하다. 그 특유의 간드러지도록 앳띤 목소리가 더욱 이 노래의 맛을 살리고 있을 것이다. 내 목소리로는 도저히 안된다. 적당히 콧소리도 섞고 꺾기도 하면서 불러야 맛일 텐데. 정말이지 취학전 아이들 수준에 맞는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흥겨운 노래가 되는 반복적이고 흥겨운 노랫말이라니. 다시 처음부터 들으며 아, 이 노래였구나. 딱 한 번 만화영화를 보며 들었을 텐데 아직까지 머릿속에 노래만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만화영화 주제가 가운데 베스트로 꼽는다. 그리 많지도 않지만 그 가운데서도 완성도에 있어 최고라 여긴다. 어떤 노래들은 쉬워서 더 쉬울수록 더 좋은 노래이기도 하니까. 가장 어려운 것은 항상 쉬운 것을 더 쉽게 써내는 것이다. 감탄하며 듣는다.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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