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원래 이 노래가 박종철 열사에게 바쳐지는 노래였었다. 시대를 밝히는 촛불처럼 한 몸 불사르고 떠나간 젊은 영혼에 대한 애닲은 위로였다. 그토록 정의로웠기에 선량했기에 오히려 남들보다 먼저 세상을 등져야 했던 시대의 안타까움에 대한 노래이기도 했다. 어쩌면 단지 살아있을 뿐인 수많은 박종철에 대한 것인지 모른다.
전에도 썼지만 당시 많은 시민들은 군사독재가 나쁜 것도 알고 있었고 학생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공안당국에 의해 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아는 사람은 거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만일 박종철 열사가 서울대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필 고문으로 죽은 사람이 나왔는데 그 사람이 이 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를 다니는 엘리트가 아니었더라도 과연 사람들은 그토록 분노하고 있었을까? 그동안 군사독재에 의해 죽은 사람이 과연 한둘이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럼에도 암묵적인 룰은 있었다. 차라리 요식일지라도 재판이라는 형식은 갖춰라. 기만일지라도 명백한 혐의를 밝히고 입증한 뒤 법에 따라 처벌하라. 고문도 문제지만 사람이 죽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죽어서도 안되지만 그것이 젊은 대학생이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최고의 명문대라는 것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엘리트라는 뜻이다.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을 테니 최소한의 선만은 지켜달라. 그런데 하필 현역 서울대생인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도중 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직선제 개헌을 위한 각계의 노력을 한 마디로 짓밟는 호헌선언이 나왔다. 이제는 도저히 못참겠다.
어찌되었거나 박정희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었지만 정작 겉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집권했기에 나라도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있었다. 명분이 있었다. 그것이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근거가 되어 주었다. 군인이 정권을 잡아야 나라도 안정되고 발전된다. 그같은 시민들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유지되던 불안한 독재였다는 것이다. 4.19로 한 번 독재자를 몰아냈었다는 것이 그만큼 그 뒤를 잇는 독재자들마저 꺼리고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암묵적 룰을 어기고 있었으니. 그나마 그것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하고 말았으니. 군을 동원하려 했지만 군지휘관들이 거절했다. 이건 진짜 아니다. 그나마 한국의군사독재가 다른 나라의 군사독재와는 다른 인간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 사실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시민들은 군인이 정권을 잡아야 나라도 안정된다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인 것도 잘못이고 민주화도 이루어야 한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바로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북한이란라는 존재 때문에라도 군인이 정권을 잡아야 그나마 든든하고 안전하다. 아마 KAL기 폭파사건만 아니었으면 다음 대통령은 노태우가 아닌 김영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김현희가 괜히 이후 보수정권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아 온 것이 아니다. 나름 기여한 바가 있었으니 대우도 해주었다. 그 뒤에 숨은 사정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 아쉬운 한 걸음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약적인 역사의 진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렇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였다. 차라리 김영삼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난 뒤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군사독재의 공범이었던 노태우였었다. 워낙 치열하고 절박했던 터라 내일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화 이후 첫정권이었지만 군사독재의 후신이라 할 수 있었던 노태우 정권에 대한 반감이 더해서 학생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정권에 대한 싸움을 계속하려 했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도 없이 싸움을 위한 싸움만을 계속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때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니 사람들이 따라오더라.
정작 군사독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참혹한 상황이 이후 대학가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아마 김지하가 당시 그같은 상황에 대한 회의와 환멸로 입장을 바꾸고 있었을 텐데, 자발이라고도 강제라고도 할 수 있는 그같은 죽음들은 역사를 바꾼 이 참혹한 희생으로부터 잘못 배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죽어야 했는가? 무엇때문에 어떤 이유로 죽어야만 했는가? 그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그 죽음이 무엇을 낳고 무엇을 이루어냈는가? 학생운동이 필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시민들이 학생들의 투쟁에 동조했던 것은 시민들 자신의 정의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지 무작정 학생들의 희생만을 동정해서는 아니었다. 지금도 당시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지 못한 인사들이 여기저기 적지 않을 텐데.
하필 1987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어쩌면 평소처럼 오늘이 그 날이구나 지나갔을지도 모르는데 문득 이 노래를 한 번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는, 나 자신은 어떤 길을 어떻게 지나오고 있었는지. 그로 인해 바뀐 역사는 어떻게 새로 쓰여지게 되었는지. 때로 체념하고 때로 절망하고 때로 외면하고 때로 자학하면서 때로 철저한 패배자가 되었다가도 어느새 기세등등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단지 누군가의 희생에 그저 기생해 여기까지 왔을 뿐이면서.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은 아무렇게나 피지만 아름답기는 어렵다.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고, 그리고 언 강 바람에 무덤도 없이.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가 싶었었는데. 이제는 그저 산 사람의 몫이 있을 뿐. 산 사람이 이루어내야 할 몫이 있을 뿐. 살아있다는 빚이다. 잘 가시라. 잘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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