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사회비판을 시도한다. 정확히 역사비판이다. 기지촌도 베트남전쟁도 모두 냉전의 산물이다. 자기와 다른 적을 죽이고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게 용인되던 잔인했던 시대의 유산이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던 경험담을 늘어놓는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목진우(김민상 분)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살의를 키우는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 자신을 방치한 세상에 복수한다.
가난했으니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그저 당장 만만한 자신의 몸뚱이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여성들을 기지촌으로 밀어넣은 것은 심지어 이 나라의 정부였었다. 여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 삼고,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여성들을 수단으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소외되었고 다시 비틀린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배우게 되었다. 자신과 다른, 더러운 빨갱이들은 얼마든지 죽여도 돼! 아니 반드시 죽여야만 돼! 그러므로 어머니처럼 타락한 더러운 여자들도 반드시 죽여야만 돼!
하지만 결국 그런 모든 것이 단지 변명애 지나지 않음을 밝혀내게 된다. 그냥 사람을 죽이고 싶은데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어떤 계기로 사람을 죽이는 쾌감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반복해도 좋은 이유가 생겨난 것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왜곡된다. 악인이라면 죽여도 괜찮다. 빨갱이라면 아무리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락한 불결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죽여야만 한다. 살인이라는 충동과 욕망이 면죄부를 받는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이 인정한다. 그러므로 자신은 살인을 저질러도 괜찮다.
어머니가 선물한 만년필은 열쇠였다. 그나마 어머니의 자신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느낄수록 더욱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은 강해진다. 어머니의 진심을 더욱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과 분노는 커져만 간다. 어머니와 헤어져 할머니에게로 가는 택시에서 목진우는 충동적으로 첫살인을 저지른다. 다만 과연 그런 식으로 만년필로 몇 번이나 사람의 몸을 내리찍으면 만년필의 촉이 무사할까 하는 당연한 의문도 가져본다. 하긴 어차피 드라마는 드라마다. 어머니를 원망해서 살인을 저질렀고, 그런 주제에 어머니가 남긴 선물인 만년필에 집착해서 살인을 주저한다.
본격적으로 악역 목진우가 중심에서 끌어가는 회차였다. 목진우의 과거와 동기, 무엇보다 그럼에도 여전한 자독한 살의가 TV화면을 넘어서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과연 그 목진우와 같은 사람인가. 배우 김민상과 같은 얼굴인가. 목진우의 광기가 TV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서 드라마를 지배한다. 박광호(최진혁 분)나 김선재(윤현민 분)나 모두 바쁘기는 한데 존재감에서 한참 밀린다.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고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았으니 잡아야만 한다. 목진우를 잡으려 함정을 팠을 때 오히려 거꾸로 그를 이용하여 신재이(이유영 분)의 집까지 침입한다. 신재이가 죽거나, 아니면 목진우가 잡히거나. 신재이를 향한 살의는 진짜다.
과연 다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목진우의 체포는 과거로 돌아가도 미래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무엇이 얼마나 바뀌게 될까? 잠시 과거로 돌아갔다 온 것으로도 벌써 30년 뒤는 많은 부분 달라지고 있었다. 끝이 다가와가고 있었다. 신재이의 위기는 결말을 위한 마지막 고비다. 시간을 넘어온 이유가 해결되고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피엔드이기만 하다면. 목진우가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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