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드라마에서 베스트는 악역인 연쇄살인범 목진우를 연기하는 배우 김민상이다. 이미 모든 시청자가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경찰들까지 목진우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목진우도 그 사실을 안다. 이미 알고 있는 답과 풀이를 어떻게 하면 전혀 모르는 문제인 것처럼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풀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이 바로 목진우였다.
마치 범인이 아닌 듯, 범인인 것이 드러난 뒤에는 범인이 아닌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경찰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경찰이 알아볼 수 있게 범인이 아닌 척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각각의 표정과 몸짓과 말투가 미묘하게 다르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인데 배우 김민상 자신이 그다지 선한 인상이 아닌데다 그동안의 악역연기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 선한 연기를 해도 순수하게 선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광기와 광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의 깊이와 폭은 목진우가 범인인 것을 알게 된 뒤에도 한결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고작 하루만에 박광호(최진혁 분)가 다시 미래로 돌아왔다. 돌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원래 박광호가 있어야 하는 곳은 30년 전의 과거다. 박광호가 진짜 돌아가야 하는 곳은 아내 신연숙(이시아 분)이 기다리고 있는 30년 전 원래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5개월동안 30년 뒤의 미래에서 만들어놓은 인연이 있었고 무엇보다 3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만난 딸 신재이(이유영 분)가 있었다. 미묘하게 사람들의 기억이 달라졌다. 잠시 과거로 돌아갔다 온 영향으로 목진우와 신재이 모두의 기억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목진우에게는 그에 영향이 없지만 신재이의 기억은 목진우를 살인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단서의 소재를 감추고 있다. 30년 전 박광호가 놓아두고 온 만년필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가를 신재이의 바뀐 기억이 알고 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박광호는 벌써 지난주 목진우가 30년 전 연쇄살인의 진범인 것을 알았다. 목진우도 이제는 박광호와 김선재(윤현민 분)가 자기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알았다. 중요한 단서를 30년 전에 놓아두고 온 채로 박광호는 목진우가 진범인 증거를 찾아야 한다. 신재이 역시 목진우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동기를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목진우는 자신을 잡으려는 박광호를 응징하기 위해 그의 딸 신재이를 납치하게 된다. 박광호는 연쇄살인범 목진우를 체포하기 전에 딸 신재이를 찾아야 하며 목진우는 박광호가 방해하기 전에 딸 신재이를 증거를 남기지 않고 살해해야만 한다. 과연 마지막에 웃는 것은 누구일까? 누가 승자가 될까?
어쩌면 목진우가 그동안 특히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질러 온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다. 타락한 여성을 심판하여 응징하는 증오범죄다. 자신을 버려두고 돈벌러 떠났던 어머니가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마신 술로 인해 마침내 알콜중독으로 숨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외할머니에게 맡긴 것도 버림받은 것이라 생각했다면 더욱 자신을 두고 혼자 죽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버림받았다 여기게 되었을지 모른다. 외할머니의 죽음과 첫살인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일까? 그러므로 반드시 타락한 여성들을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 희생자들이 목진우의 기준대로 반드시 응징되어야 하는 타락한 여성들인가. 결국 지난 30년 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은 멈춘 대신 봉사현장에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여성만 살해한 것도 아니었다. 목진우의 집에서 발견한 영정사진에는 남성 노인의 모습도 적지 않았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배설이다. 자기 안에 도사린 어둠이다. 문득 최초의 연쇄살인범으로 유명한 잭 더 리퍼를 떠올리게 된다. 불과 여러해 전 수많은 여성을 살해한 유영철 역시 전처에 대한 분노가 불특정한 대상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바뀌어 있었다. 이유는 만들어진다. 동기 역시 끼워맞춰진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충동으로 살해한다. 그는 이미 미쳐 있었다.
살인자의 광기를 보여준다. 차라리 연민이 일 정도로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치밀하고 냉정한 살의의 끝을 보여준다. 태연하게 웃고 당연하게 말걸며 일상의 모습 속에 철저히 자신을 감춘다. 비슷한 또래의 부녀란 상당히 어색하다. 이제는 강력팀 역시 모두가 박광호가 과거로부터 시간을 건너뛰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목진우가 범인인 것도 알게 되었다. 신재이가 납치되고 박광호가 그를 잡으려 한다. 더 끔찍한 일을 겪기 전에. 이번에는 박광호가 미칠 차례다. 장인의 반대에 좌절 직전에 놓인 김선재가 박광호의 딸 신재이를 구해내기 위한 기회다.
쉽지않은 구성인데도 상당히 능란하다. 시간을 넘나드는 것도 그렇고,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나로 이어주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범인을 먼저 정면으로 보여주고 그 진실을 뒤쫓는 모습을 따로 보여준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경찰과 범인이 만난다. 터널을 지나 시간을 건너뛸 수 있는 비밀이 밝혀진다.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딸에게 무언가 말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안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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