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쌈 마이웨이 - 그녀가 예뻐 보일 때, 그들을 울게 하는 것들

까칠부 2017. 6. 14. 02:12

그러고보면 나 어렸을 때도 그런 내용의 만화나 드라마가 적지 않았었다. 공부 잘하던 자식이나 형제가 어느날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알아봤더니 아무도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더라. 대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다. 흔한 참고서도 없이 단칸방에서 온가족이 북적이는 가운데 집중해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볕도 들지 않는 좁은 방에서 한낮인데도 백열등 아래서 책을 읽고 있으면 눈이 아파온다.


언제부터인가 깨닫게 된 사실이다. 아니 아주 오래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 TV에서 보았던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를 어느날 문득 떠올리고 있었다. 너무 가난해서 그림공부는 커녕 종이도 연필도 살 돈이 없어서 나무판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결국 물감조차 없이 투박하게 그려낸 그림은 심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음악에, 운동에, 각종 과외로 선행학습까지, 너무 아이들을 혹사시킨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적성에 맞고 재능이 있어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치이기도 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고만고만한 재능의 아이와 종이마저 아껴가며 그림을 잘그린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지내온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가 시간이 지나 겨룬다면 결국 누가 이기게 될까?


그래서 하필 박혜란(이엘리아 분)이었다는 것이다. 영리했다. 현명했다. 누구에게 잘보여야 하는가를 알았다. 누구에게 기대어 어떻게 그 힘을 이용해야 하는가를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저 자기의 오랜 꿈만을 믿고 무작정 앞만 보며 달려온 어느 바보와는 달랐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빌려서라도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없는 것이 있으면 훔치든 빼았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남들만큼, 아니 그 이상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경쟁할 수 있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현실은 꿈이 아니다. 현실을 꿈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박혜란은 알았고 최애라(김지원 분)는 아직 몰랐다.


잔인한 현실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고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항상 바빴고 급했고 힘에 겨워 하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만으로도 버거운데 먼 내일까지 준비할 여럭따위 없었다. 그나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톱니바퀴마냥 빈틈없이 돌아가던 일상이 잠시 멈추며 여유가 생긴 때문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하는 것 한 번 꿈에라도 도전해보자. 그렇지 않아도 짓눌린 자존감에 잠시 숨돌릴 틈이 필요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나운서를 향한 꿈은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그 꿈을 포기해야 했었는가 새삼 다시 확인하고 만다. 자기가 꾸어서 안되는 꿈이었다.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워낙 순식간에 끝난 시합이었으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시합이 길어지면 결국 경험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어떻게 체력을 안배하고, 시합의 완급을 조절하고, 상대의 페이스를 흐트려 소모를 강요하고 허점을 만들 것인가. 워낙 한 번 이겼다고 방심한 탓에 너무 서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틈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우겨넣었다. 그래도 역시 재능이 있으니 10년의 공백도 어느 정도 메우는 것이 가능하다. 너무 대비된다. 단지 남들과 같은 스펙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좌절을 겪은 최애라와 단지 타고난 재능에 힘입어 데뷔전을 발차기 한 번으로 끝내버린 고동만(박서준 분)의 모습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


하필 백설희(송하윤 분)마저 김주만(안재홍 분)을 사이에 두고 연적처럼 되어 버린 장예진(표예진 분)이 같은 족발집 딸이었다. 물론 스케일이 다르다. 백설희의 부모는 그저 가게 하나로 근근히 먹고 사는 처지이고, 장예진은 무려 대한민국 최대의 체인을 소유한 대단한 집안의 딸이었다. 차라리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부잣집 딸들처럼 못되기라도 했다면 마음껏 미워하며 비웃기라도 할 텐데 착하기까지 했다. 온통 옹이가 지고 모가 난 자신과 달리 맺히고 꼬인 곳 없이 한없이 맑고 순수하기만 했다. 자기를 거리낌없이 언니라 부르며 웃는 얼굴로 상담을 해오는데 그 앞에 침을 뱉는 것도 너무 못난 짓이다.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든다. 어째서 자신은 김주만과 실제 사귀고 있는 사이인데도 눈앞의 장예진처럼 당당하지 못한 것일까. 그나마 고동만 정도만 라이벌이 김탁수(김건우 분)이고 두 여주인공 모두 상성이 최악인 라이벌들을 만났다. 바로 그들이 딛고 있는, 그토록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현실의 참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 네 사람 가운데 오로지 김주만 혼자만 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김주만에게는 이렇다 할 라이벌이 없다. 모두가 가혹한 현실 앞에 이리 꺾이고 저리 부러지고 있을 때도 혼자서만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 대리다. 과장까지 바라보고 있다. 현실이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세 캐릭터와 다르게 김주만 혼자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순탄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김주만과 백설희 두 사람의 관계였다. 지금 당장도 서로 좋아하면서도 너무 의식하는 바람에 표현들이 비틀려 있다. 다만 조연이니 그냥 이대로 무난하게 갈등이 해소되며 해피엔드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한 번의 위기와 시련이 두 사람을 더욱 단단히 맺어주게 될 것인가. 아니면 역시나 가감없는 현실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고동만이 먼저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었다. 한 걸음 가까워졌다 여겼지만 최애라의 꿈까지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최애라가 좌절하고 찾아온 경기장에서 고동만이 그토록 그리던 첫승리를 따내고 만다. 마침 박혜란이 그를 위해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내며 신인치고 상당한 주목도 받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마주한다.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과 그 얼굴마저도 사랑스러워진 눈빛이. 차마 맞는 모습을 보지 못해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면서도 이기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그러고보니 벌써 한 번 최애라가 고동만에게 실연당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여전히 꼬이기만 하는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대해 더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두려움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에게 전했을 때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가지의 내용 대로라면 고동만은 우연까지 겹치며 눈치없는 바보가 되는 것이고, 최애라는 그런 바보 때문에 벌써 혼자서 실연을 겪은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만다. 다시는 그때처럼 아픔을 겪을 수 없다. 상처입을 수는 없다.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그동안 너무 가까웠던 탓이었다. 보통의 연인들이라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까지 모두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가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귀는 과정까지. 사랑으로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모습들까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는지 몰랐다. 자기도 모르게 상처입고 상처가 쌓이며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냥 이대로면 괜찮겠다. 아무 감정도 없이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이대로 지낼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사람의 감정이란 애써 누르고 감춰도 아무때고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그냥 바보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부럽기도 했었다. 나는 언제 저런 바보같은 사랑을 했었을까? 저렇게 바보같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고는 했었을까?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때로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꿈이라는 것을 잊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무채색으로 가라앉는다. 아무 설렘도 감동도 없이 익숙한 일상으로 그저 스쳐지나간다. 시간의 흐름마저 잊는다. 늙었구나 생각한다.


즐거운 드라마다. 설레는 드라마다. 그래서 때로 민망하기도 하다. 잊고 있던 간지러운 부분들을 자꾸만 일깨운다. 오래전 보았던 어느 만화처럼. 다시는 보지 않을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우울하다. 지나온 시간처럼. 이 순간도 맞고 있는 모든 순간들처럼. 그래서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그들은 꿈을 꾸고 사랑하고 있다. 가장 부러운 것이다. 드라마는 꿈을 꾸게 한다. 그래서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