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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 드디어 마지막,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전주에서

까칠부 2017. 7. 22. 04:13

전통사회의 공동체란 굳이 정의하자면 이차공동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혈연으로 이어진 것이 일차, 관계로 이어진 것이 이차, 그리고 존재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삼차다. 이를테면 먼 지구 반대편 어느 오지의 부족에 대해서까지 단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연민을 느끼는 것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니고, 직접 만나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단지 그곳에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와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 어떤 이유보다도 우선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인해서다.


아주 오래전에는 하나의 무리를 이루고 있으면 거의가 피를 나눈 가족인 경우가 많았다. 지급도 세계 곳곳에는 혈연으로 이어진 이른바 집성촌이라는 곳을 흔하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원래 하나의 혈족에서 시작된 경우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기에 자연스럽게 혈연으로 이어지게 된 경우도 있다. 이웃이 곧 사촌이고, 앞집이 오촌이며, 모퉁이 돌면 나오는 팔촌네는 내 아들의 처가다. 산 너머너머 어느 집을 찾아가면 몇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형제셨다더라. 너무나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다. 피로 이어졌으니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일족이고 가족이다.


하지만 인간의 집단이 보다 거대화되고 고도화되면서 서로 전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같은 무리 안에 공존해야 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다. 일차적으로 이방인들이다. 어떤 필요에 의해 서로 다른 혈족이 하나의 무리 안에 공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경험에 의한 관계가 중요해지게 된다. 말 그대로 이웃이고, 앞집이고, 건넛집이고, 어려서 함께 어울려 자란 불알친구이고 소꿉동무였다. 전혀 피로 이어져 있지 않음에도 그래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형이 되고 아우가 되고 아저씨가 되고 아주머니가 된다. 원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항렬이 위인 친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아니까. 그동안 보아 왔고 들어 왔고 겪어 왔으니까. 혈연이라는 직관과 본능이 아닌 관계라고 하는 인지와 경험에 의해 정의되는 관계다. 따라서 서로가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을 넘어서는 대상에 대해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통적인 공동체 가운데는 기존의 공동체 사이에는 그렇게 인정이 넘치면서 이방인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분명하다.


조선은 분명 그 과도기에 있었다. 여전히 전근대사회에 머물러 있기는 했지만 많은 조선의 백성들에게도 조선이라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초보적인 의식이 있었다. 같은 조선인이기 이전에 같은 전라도 사람이다. 같은 전라도 사람이기 이전에 같은 전주 사람이다. 그나마 전주는 고을이 크다. 아마 전성기에 거의 20만이 넘는 인구가 전주라는 도시를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멀리 더 외진 산골의 마을에서는 그나마도 의식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같은 성을 쓰는 친척이거나,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어 온 이웃이거나. 그런데 구한말부터 급격한 근대화가 이루어지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낮선 도시에서 낮선 타인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다. 피로 이어진 가족이나 친척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어나면서 보아온 익숙한 이웃들도 아니다. 더구나 도시에 살면서 이사까지 자주하게 되면 매번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날 것인가. 인류의 근대사에서 시민이라는 개념이 괜히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낯선 이방인들과의 삶에 익숙한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하게 된 개념이 바로 보편이고 일반이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살다 온 사람들끼리도 통할 수 있는 보편의 규준이었다. 전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이방인과도 문제없이 통할 수 있는 일반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근대사회로 들어설수록 명문화된 성문법이 중요해진다. 어차피 새로운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에 대해 일일이 알고 이해하고 판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자 나름대로 사연이 있고 사정도 있을 테지만 구성원 모두에 대해 알고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이에도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게.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도 불만이나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단골이든 처음 오는 손님이든 천 원 짜리는 모두 천 원에 팔릴 수 있도록. 과거 전통시장에서는 오랜 단골이라면 천 원 짜리도 오백원이 될 수 있었고, 같은 값에 두 개를 살 수도 있었다. 전통 시장이 몰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낯선 이방인들로 넘쳐나는 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골이 아닌 처음 오는 손님들이기 쉽다.


유시민이 말했던 새로운 공동체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굳이 공동체를 일차, 이차, 삼차로 나눈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요해서 즉석에서 만들어 붙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에 해당하는 개념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장장 찾기 어려워서 대충 말만 통하면 된다고 만들어 붙였다. 한국사회는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그러니까 필자의 부모세대까지 거의 이차 공동체에 머물러 있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이름도 부르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웃이다. 자신과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구성원이다. 그런데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면서 전혀 낯선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경험으로 알던 공동체의 상식들은 도시의 낯선 환경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아는 상식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이 낯설고 새로운 환경을 굳이 공동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에 어울리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와 규준에 익숙해지지도 못했다. 오로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몰상식한 현대인이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어째서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가 더 편한가. 오늘 처음 찾은 손님도 몇 년 단골과 전혀 차이없이 대해주니까. 굳이 처음 보는 마트의 직원들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그들 역시 수많은 손님 가운데 하나로 무심하게 나를 대해준다. 스치고 지나가면 잊어도 된다. 오히려 상점을 찾았을 때 괜히 아는 척하고 친한 척 하면서 억지로 친절을 베풀려 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어차피 오늘 처음 본 사이일 뿐인데.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구호와도 관계가 있다. 어차피 모르는 사이라면 친절도 적당히, 예의도 적당히, 관계도 적당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은가. 더불어 재래시장에서는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부실하거나 없으면 상당한 불이익까지 겪게 된다. 대형마트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전통적 공동체와 새로운 공동체 사이에서의 괴리가 인간사회와 관계에서의 불협화음으로 심심치 않게 터져나오고 있다. 더이상 이전의 관계로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새로운 관계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원래 유학자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실학이라는 말은 원래 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을 공리공담에 지나지 않는 다른 학문과 비교하며 부르던 말이었다. 실사구시, 경세치용, 격물치지, 모두 유학의 초기경전에서 비롯된 말들이었다. 이상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한다. 다만 그런 점에서 성리학은 유학에서도 이단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하필 유학에 '이'라는 형이상학의 개념을 집어넣은 때문이었다. 현실을 넘어선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사이 정작 현실은 잊히고 만다. 현실이 유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더욱 유학이 현실과 유리되기도 한다. 조선후기 조선의 유학이 쇠퇴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후기 유학이 조선을 쇠락케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쇠락하면서 유학 또한 더이상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옳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선의 유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름대로 궁리를 그치지 않았었다. 이번회에서 화두가 되었던 조선의 초상화와 조선왕조실록은 본질적으로 그같은 유학의 현실주의적인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볼 수 있다. 관념적인 당시의 문인화와는 차별되던 정밀한 묘사는 곧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방대한 조선의 자화상과도 그렇게 닿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신이고, 이것이 곧 우리가 사는 조선이다. 조선의 역사다. 형이상학의 관념론으로 흐르기 전 유학자들은 모두 현실주의자였다. 더욱 그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했던 이들이 조선을 건국했다.


전부터 나 역시 주장해 온 바였다. 라임은 운이다, 플로우는 률이다. 전통의 시가들은 한결같이 행의 끝에 같은 음소를 배치하여 통일성을 주었다. 각 행을 이루는 단어들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배치되어 자연스러운 리듬을 이루고 있었다. 이른바 말하는 3.4조니 4.4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고전한시에서는 이것을 달리 오언율시니 칠언율시니 하는 식으로 구분해 정의하고 있었다. 하긴 원래 시라는 자체가 노래의 가사였으니까.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의 내용들도 거의 저자에서 불리던 노래의 가사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시를 짓는 것이 지식인의 필수교양이 되면서 누가 정해진 시간 안에 더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며 내용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시를 지을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것이 마치 하나의 스포츠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당장 경주의 포석정이 그런 식으로 술잔을 돌리며 시짓고 놀던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조대결도 그런 점에서 사실이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인간은 어째서 사치를 하는가. 그 전에 인간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가. 유한계급론에 이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행렬이 의시심장하게 보이고 있었다. 원래 권력이라는 자체가 낭비라는 속성을 본능처럼 가지고 있다. 낭비를 통해서 권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만한 재화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 자신의 행동 하나에는 이만한 재화와 인력을 투입할만한 가치가 있다. 고작 왕과 그 일가 많아야 십수명이 사는데 무려 수백에 이르는 궁녀와 내시, 내관들이 궁궐에 상주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궁궐에 항상 머무는 그들의 규모야 말로 왕의 권위와 권력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인 셈이다. 괜히 나라를 망친 폭군 의자왕에게 삼천의 궁녀가 딸려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분에 맞지 않게 사치하고 방종했다는 상징인 것이다. 단지 어진을 봉안한다는 자체보다 그것을 대신들과 백성들이 어떻게 보고 여기는가. 그만큼 어진이라는 것을 대신과 백성들이 나라의 중대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곧 그 어진의 후손인 임금의 권위와 관계가 있기도 하다.


아무튼 한정식이라는 자체가 그렇게 음식을 아껴먹기 위한 선택은 아닌 것이다. 굳이 값비싼 한정식집을 찾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다. 단지 한 끼 배만 채우려면 만 원으로도 충분한데 무려 몇 십만 원이나 하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 식사를 즐기려는 것은 그 순간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남는 음식을 모두 버리는 것까지 어쩌면 그 비용에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 정도는 버려도 좋다. 조금씩 먹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인간의 본성과 관계있지 않을까.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존재를 욕망하고 있다.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배부르고 맛좋으면 그만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자리가 어색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다.


벌써 8회다. 그래도 경주에서 2회 분량 뽑았으니 한 회 쯤 더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자비없다. 그만큼 제작진 입장에서도 쉽지 않는 프로그램임을 안다. 유시민와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대단하다. 유희열 역시 음악인으로서 결코 이들에 비해 뒤지는 인물이 아니다. 정말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시기 힘든 대단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항상 자기가 가진 명성 만큼 일도 많고 바쁘다. 하지만 그동안 맥주 캔 하나 따놓고, 혹은 막걸리와 소주를 벗삼아 남모르게 함께 수다떨며 즐기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으로 끝이라니. 이렇게 되도 않는 헛소리를 리뷰랍시고 떠들어대는 것도 이제 다음주면 마지막이겠구나. 서운하다. 서운한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난다. 제작진은 바로 옆에서 저들이 하는 온갖 허튼소리들을 다 듣고 있었을 테니.


끝으로 문득 유시민 작가의 분노에 대해 생각케 되었다. 정확히 분노라기보다 증오다. 대상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고 욕구다. 유시민 작가가 더이상 정치를 않으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자기의 안에 존재하는 어두운 감정을 꼽은 적이 있었다. 아직까지 그때의 충격과 상처가 가시지 않았다. 대상이 명확한 분노와 원망이 다 치유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죽여 없앨 수 있었으면. 반역이 아니다. 복수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만큼 남자와 남자의 사랑은 뜨겁고 깊다. 조금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