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최강배달꾼 - 그래도 꿈꿀 수 있으니, 헬조선과 위화감의 이유

까칠부 2017. 8. 14. 21:13

내가 왜 이단아(채수빈 분)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오히려 위화감을 느껴왔는가 비로소 깨달았다. 희망이 있었다. 그래도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꿈꿀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 '헬조선'을 몸으로 느껴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노력한다고 뭔가 되는 것도 아닐 테니 그냥 욕하고 비웃고 끝내겠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처음 최강수(고경표 분)와 대립하던 동네 배달부들이 훨씬 이단아보다 헬조선의 본질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내일에 희망이란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단지 현재에 머물며 아웅다웅 한 줌도 되지 않는 체면과 이익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신분이나 계급이 고착된 사회에서 범죄율이 높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저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 저들이 지키는 법과 정의와 윤리를 나까지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당연하게 텃세를 부리고, 그마저 통하지 않으니 오토바이를 훔치기까지 하고, 어차피 되지 않을 일이라며 모두가 하나가 된 범인찾기에도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그에 비하면 확실히 이단아는 꿈도 있고 희망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대학에도 합격했었다. 공부도 열심히 잘했었다. 언저리에 걸쳐 있다. 머리로 알 정도면 아직 헬조선이 아니다. 몸으로 느낄 정도가 되어야 헬조선이다. 아무리 상대가 어린 학생들이라지만 과연 배달하는 입장에서 그 앞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 학생들만 있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부모까지 있었다. 아직 자존심이 다 죽지 않았다. 아직 자신을 다 버리지 못했다. 아마 아파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그 삶에서 자신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어야 했다.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헬조선을 말할 수 있을까. 그 헬조선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현실로 이룰 수 있게 된 사람이 과연 헬조선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심지어 재벌의 아들이라는 인간이 나타나 자신의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도 말했지만 세상의 악에는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개인의 악이 별개로 존재한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중인 상황에서 군인으로서 적을 죽이는 것은 결코 악일 수 없다.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이단과 반역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든 그것은 필요에 의한 필연이고 정당한 행위가 된다. 개인으로만 놓고 보자면 오진규(김선호 분)는 오히려 순진할 정도로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다. 단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기가 한 눈에 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아를 대신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중국집 배달일을 최강수가 감탄할 정도로 썩 괜찮게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무 생각없는 유희가 한 사람을, 그리고 그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넣었고, 정작 최강수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 말했으면서도 경찰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어째서? 왜? 결국 자신의 행위가 아버지에게 알려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결국 누구도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에 의한 인식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장만 모면하면 자기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좋은 일도, 더 나쁜 일도 아무일도 자기에게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어떻게 보면 오진규 역시 헬조선의 희생자다. 태어나보니 재벌의 2세였다.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었다. 형이 그 대기업의 후계자였다. 재벌의 2세인데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가 기대할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배달을 하며 아등바등 살아갈까? 애초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었다. 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편의 상식과도 유리되어 있고, 그렇다고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는 한 발 물러나 주변에만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있는 행동이란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무엇들 뿐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최강수나 이단아처럼 평범한 환경이었다면. 나름대로 특별하다 주장하는데 어차피 세상에 그 정도 사연 없고 이유 없는 삶이란 그리 흔치 않은 법이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런 현실을 헤치며 살아간다. 처음 해보는 중국집 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힘들지만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해내는 것이 상쾌했다. 어쩌면 오진규도 깨닫지 못했을 뿐 고원희(이지윤 분)와 비슷한 과인지 모르겠다.


그냥 젊은이들이다. 자기들이 만든 세상이 아니다. 자기들이 의도해 만든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현실에 원래 자신의 의지조차 상관없이 제멋대로 휘둘리고 만다. 선도, 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가치도, 단지 그들이 지배되며 휘둘릴 뿐이다. 서로가 서있는 곳이 다른 곳이다. 다른 곳에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진규이고, 최강수이고, 이단아이고, 고원희다. 어른들은 또 어른들의 사정대로 분주하다. 어른이 되지 못한 그들은 그 순수함으로 인해 오히려 방황하고 번민하고 고뇌한다.


최강수는 그런 점에서 매우 고전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먼옛날 사람들이 아기장수를 기다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린 것은 자신들을 이끌고 부당한 현실을 뒤집어 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동안 서울 전역을 돌며 배달일을 해온 결과 쌓아온 인맥이 이제는 수백에 이르는 배달꾼들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수백의 배달꾼들이 모여 무언가를 이루어낸다. 마치 기적처럼. 그리고 잊고 있던 절박한 투쟁처럼. 마침 고원희의 엄마 김혜리(정혜리 분)가 조금씩 최강수와 이단아가 일하고 있는 주변을 옭죄어 오고 있는 중이다. 결국 판타지는 신화로 이어지는 것일까.


이단아는 그냥 판타지로 내버려둔다.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 행복하다. 그 꿈을 이룰 수단이 있으니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다. 그마저 없다면 그저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웅다웅 그렇게 아무 이름없는 조역들처럼 주변에 머물며 삶을 허비할 뿐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이단아도 최강수도 주인공인 것이다. 같은 배달부라도 그들은 다르다. 하긴 그래서 드라마이기도 할 것이다. 드라마는 꿈이다. 언제나.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