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김성주가 2012년 MBC파업을 계기로 MBC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2008년 MBC 예능프로그램 '명랑히어로'를 무척 재미있게 보고 있었기에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명랑히어로'에 고정으로 출연했던 김성주는 이름 같고 얼굴만 같은 도플갱어인가?
김성주가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BC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도 그런 점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미 벌써부터 MBC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다니까. 물론 제대로 터진 것인 '슈퍼스타K'에서 MC를 맡으면서다. 그것도 2012년 이전의 일이었다. 생활고를 말하기에는 당시 방송도 여럿 하고 있었고 제법 반응이 좋아서 당시 언론인과 시민의 양심을 앞세워 MBC의 제안을 거절했던 여타 방송인들보다 사정이 못하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아무리 김성주를 감싸겠다고 사실관계도 무시한 채 엄한 사람 생계곤란자로 만드는 것은 무슨 심리인지. 다만 이후 김성주가 옛동료들의 빈자리를 차지한 대가로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기회를 누린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면 김성주가 프리랜서 선언하고 어째서 아나운서국으로부터 욕을 먹었을까? 2006년까지 김성주는 그리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름이 아니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MBC아나운서국 차원에서 젊은 인재를 키워주자고 선택한 것이 바로 김성주와 오상진이었고 그 덕분에 월드컵중계까지 맡으며 대중에 얼굴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성주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동료 아나운서 가운데 누군가에게 그 기회가 돌아갔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MBC 아나운서국에서 젊은 인재를 키워보자는 것이었으니까.
원래는 같은 아나운서국의 다른 동료에게 돌아갔을지 모를 기회를 누린 결과 대중적으로 인지도도 높이고 인기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 기회를 주었던 회사와 동료에게 다시 돌려주지는 못할 망정 혼자서 낼름하고는 입닦아 버리고 말았다. 과연 동료나 상사 입장에서 그런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어떻겠는가? 송인득 캐스터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자기가 괜히 찔려서 가지 않은 것이지 누가 오지마라 했던 것이 아니었다. 김성주를 악마화시킨다더니 오히려 MBC의 파업 아나운서들을 악마화시키고 있다. 김성주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다 보니 MBC아나운서들은 그래도 싼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웃기는 역설이다.
그리고 당시 MBC파업에서 김성주가 어떤 역할을 했었느냐면, 사실 파업의 동력을 약화시키는데 가장 먼저 일조했던 것은 드라마PD들이었다. 드라마 시청률 떨어지면 안된다고 모든 노조원이 파업하는데 자기들만 아마 일주일만에 복귀했을 것이다. 파업이 효과를 보려면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파업을 해도 그다지 피해가 없거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여겨진다면 사용자는 당연히 파업중인 노동자들과 진지한 협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시청률도 높고 시청자의 관심도 높은 드라마가 빠짐으로써 MBC노조가 당시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던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몇 달 후에 열릴 런던올림픽 뿐이었다. 특히 런던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있는 큰 이벤트로 다른 방송사에서도 경쟁적으로 중계하게 될 것이기에 MBC만 중계하지 못하면, 중계하더라도 전문성이 떨어지게 되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 되었을 것이었다. 런던올림픽까지 버티면 MBC로서도 어쩔 수 없이 중계를 책임져야 할 아나운서국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해가 가시는가?
결국 당시 김성주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MBC노조는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수단을 잃어버리고 말았었다. 한 마디로 파업의 숨통을 끊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동력은 사라졌고 그저 곧 있으면 시작된 총선의 결과에만 기대어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여당이 승리하며 더이상 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후 파업이 실패한 결과로 MBC가 더욱 철저히 정권의 어용언론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로 인해 수많은 MBC 노조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회사를 떠나야 했던 사실에 대해 그다지 아무 문제 의식도 느끼지 못한다면 역시 굳이 이런 글을 끝까지 읽고 있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김성주에게 당시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고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그 모든 과정에 김성주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여기기 때문이니까.
김성주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하지 않았겠는가. 어제도 썼다. 김성주라는 이름이 그저그런 다른 프리랜서들과 같이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그저 생계를 위해서 기회를 잡기 위해 사측이 제안을 받아들인 시용노동자들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도 상당히 사실과 거리가 있다. 김성주가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나가면서 받은 돈이 10억에 아우디까지 포함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런던올림픽 중계를 맡았다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이유다. 이미 MBC아나운서국에서 스포츠중계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까지 쌓은 김성주가 파업중인 노조원들을 대신해 런던올림픽 중계를 도맡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모른다면 그냥 모른 체 지나가기를 권한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명의 캐스터가 중계를 맡는다고 그만한 파장이 있었을까?
분노하는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가지고 분노한다. 당시 MBC노조가 파업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어렴풋이나마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중요한 고비가 되었던 사건들만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당시 김성주의 선택이 파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현실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왔는가. 그런데 프리랜서이기에 책임이 없다. 세상 참 편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 주장들에 더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MBC의 현실이 김성주에게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아무 문제없다 여기는 것인가.
물론 김성주의 잘못이라고 해봐야 당시 김장겸이나 신동호, 이진숙 핵심들에 비하면 그저 미미한 정도다. 부역자지 주범은 아니다. 심지어 종범조차 아니다. 그래서 굳이 김성주더러 하차하라 마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인간 잘되는 꼴은 못 보겠으니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보이콧하겠다. 보기 싫은 인간 보지 않는 것도 내 자유이며 권리다. 그렇다고 하차요구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말했듯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또한 아주 잘못된 판단은 아닐 테니까.
그저 스쳐지나가는 헤프닝 정도가 될 뻔했다. 이런 것을 두고 빠가 까를 만든다 하는 모양이다. 그저 잠시 김성주 욕하고 끝낼 것을 일부러 일을 키워 버린다. 김성주로 MBC사측을 가리고 노조를 상처입히려는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김성주를 위해 아나운서들을 악마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터다.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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