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때린 사람은 기억못한다. 맞은 사람만 기억한다. 때린 사람은 때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저 무심하게 숨 한 번 쉬고 손 한 번 휘두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러나 맞은 사람은 그것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었다. 설사 나중에 기억하더라도 그저 별 것 아닌 일로 여기고 만다. 그로 인해 평생의 삶이 망가진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피해자를 탓할 수 있다.
차라리 그래서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낫다. 여기저기서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원망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살람이었으면 오히려 쉬웠다.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래서야 어디가서 하소연해도 들어줄 사람도 믿어줄 사람도 없을 판이다. 문효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바로 그래서였을까? 정작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사람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되어 모두의 원망과 비난을 들어야 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유은재(지우 분)도 이제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첫사랑이었으니 첫이별이다. 그만큼 방황도 했었고 혼란도 있었다. 과연 유은재는 윤종열(신현수 분)을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했던 기억을 놓지 않고 싶었던 것일까? 이별을 받아들이기 싫은 미련과 고집이 사랑 아닌 집착으로 내몰았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제 스스로 이별을 선언했고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의외로 이별하고 돌아온 유은재의 표정이 그동안의 집요한 집착과 달리 편안하기만 하다. 원래는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피가 섞어야만 가족이 아니다. 완벽한 인형이기만을 바란다. 아주 작은 상처도 흠집도 없는 완전무결한 대상으로 있어주기를 바란다. 거짓으로 감추고 침묵으로 가리고 그곳에 인간 정예은(한승연 분)의 존재는 없다. 식욕이라는 인간의, 아니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마저 억누른 채 가식뿐 관계속에 짓눌려간다. 그런 것 따위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예은을 받아들여주는 곳이 있다. 그런 정예은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라면 마음껏 먹고 살 좀 찐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것은 원래 딸을 인형처럼 사람들 앞에 내보이려 했던 어머니의 고집이었을 뿐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인데도 서로 의심하고 염탐하고 하나라도 약점을 잡기 위해, 그리고 그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나마 할머니는 나을 줄 알았더니 가족분위기가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정도 없고 서로간에 신뢰도 없는 단지 서로의 목적과 이익만이 전부인 가족관계란 얼마나 춥고 시리고 서러운 것일까. 정예은이 그토록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애정에 집착한 이유도 이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친구의 사랑도 연인의 사랑도 모두 그가 가지지 못한 큰 공허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완벽히 그것들이 가족을 대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도 안됐다는 한 마디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것인가.
원래 영원한 사이란 없다. 피를 나눈 부모와 형제도 영원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남남이 만난 친구며 연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유은재는 실연을 당하고 조은(최아라 분)은 친구를 잃는다. 아주 잃은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진짜 친구는 당장의 익숙함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한참 늦게 드러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의 불만과 분노, 서운함, 그리고 원망이 지나고도 그래도 남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본질적인 신뢰다. 굳이 함께여서 친구인 것도 아니고, 굳이 모든 것이 통하고 맞아서 친구인 것도 아니다. 조은의 부모도 결정을 하게 될 것 같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이였고 버려졌다 생각한 이의 원망과 분노만이 그들의 사이를 얽어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해결해 주니까.
분위기파악 못하는 것도 이 정도면 병이다. 하긴 그러니까 스타가 되어 보겠다 그 오랜 세월을 그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우주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성공하면 위대한 의지이고 정신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저 민폐에 똘기일 뿐이다. 더 큰 인물이 되던가 아니면 그저 민폐만 끼치는 골치덩이가 되고 말던가. 해임달(안우연 분) 이야기다. 윤진명(한예리 분)의 앞에 놓인 마지막 숙제다.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인 개인으로서. 하긴 그저 평탄하게 무난하게 사는 삶이란 드라마의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는다.
무언가 결심을 한다. 문효진이 남긴 의지를 이어받으려 한다. 내일로 한 발을 내딛기 위한 청산의 과정이다. 아직까지도 자신을 얽매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투쟁이다. 과거의 극복 없이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그래서 송지원(박은빈 분)은 현재에 있으면서도 항상 불안하게 들떠 있다.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진실과 그 너머에 있을 자신의 미래란 어떤 것일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녀의 법정 - 적폐청산도 유행일까? (0) | 2017.10.10 |
---|---|
청춘시대2 - 하나의 고비를 넘기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0) | 2017.10.08 |
사랑의 온도 - 그린 듯한, 전형적인, 그리고 감춰진 그늘 (0) | 2017.10.03 |
명불허전 - 해피엔드, 의사가 되어 살고 인간으로 돌아오다 (0) | 2017.10.02 |
청춘시대2 - 진지하지만 사소한 어느 순간의 이야기들 (0) | 2017.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