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상투적이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장면들, 들은 것만 같은 대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 절묘하게 딱 맞는 전개와 구성, 연출들. 8회까지의 내용은 이현수(서현진 분)와 온정선(양세종 분)와 박정우(김재욱 분)의 3각관계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미끈거릴 정도로 지나치게 들어가 있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면 악역같지 않으면서 악역같은 지홍아(조보아 분)의 캐릭터였을까?
굳이 일부러 돌아가고, 굳이 어렵게 엇갈리려 하고,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그런 점에서 드라마와 별개로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배우처럼 여겨진다. 연기를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기의 삶에 자기가 주인공인 것처럼 과도하게 연기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열혈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때로 악역인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기도 하다.
결심하듯 말한다.
"나 못돼 쳐먹었어요!"
그러고보면 승승장구 그동안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 나서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했었다. 부모들은 그저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었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 여겼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 왔었다. 역시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 온정선의 거절이 이현수로 하여금 마음가짐을 달리하도록 만든다. 그저 착하게 상대에게 맡기고 기다리기보다 자기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새롭게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한다. 5년 동안 사랑해 온 남자에게 거절당하고, 그 이상의 세월을 꿈꿔온 자신의 드라마로부터 소외되는 상황으로 내몰리자 모든 것을 리셋한다. 내가 갖겠다. 내가 지키겠다.
그래서 지홍아의 캐릭터에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이현수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현수가 가지고 있는 그것들을 자신도 가지고 싶은 - 심지어 빼앗고 싶은 질투와 욕망 역시 그녀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런 자신을 알고 있다. 때로 환멸을 느끼고 그런 자신에 분노와 비참함마저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놓아버리기에는 사랑도 꿈도 그녀에게는 너무나 간절했다. 차라리 비루한 악역이 되겠다. 그것이 지홍아 자신의 실존이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저 꿈꾸며 사랑하는 오로지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정작 이현수와 온정선에 대한 악의적인 거짓말에도 지홍아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악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박정우는 지금으로서는 그저 흔한 로맨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돈많고 사람좋은 조역에 지나지 않는다. 이현수에 대한 감정도 온정선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의 그늘이나 얼룩 없이 해맑기만 하다. 그래서 존재감이 없다. 한 눈에도 조역이라는 것을 알겠다. 비유하자면 온정선을 향한 폭풍같은 감정과 대비되는 잔잔한 바다와 같다고나 할까? 문제라면 그 대비가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러면 온정선과의 감정이 그만큼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현수를 에고이스트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에 취하고, 꿈꾸는 자신에 취하고, 꿈을 쟁취하는 자신에 취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마치 그것을 알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박정우는 이현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여튼 박정우나 온정선이나 너무 그린 듯한 인물들이라 - 말 그대로 여주인공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남자캐릭터로 그린 듯 맞춤처럼 만들어진 인물들이라 그다지 실감도 존재감도 없다. 혼자서 따로 있을 때는 아무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가 가진 매력이 그나마 캐릭터가 가진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을 뿐이다. 이현수의 캐릭터 역시 로맨스드라마에서 흔한 억울하게 오해받고 고난받는 착한 여주인공 캐릭터인가 싶었는데 뭔가 바뀌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홍아의 캐릭터에 눈길이 갔던 가장 큰 이유다. 그래도 연기들이 좋아서 그럼에도 배우들이 가진 매력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배우 자신이 가진 매력만으로도 연기만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충분히 그림이 되어 준다. 어쩌면 그 원래의 매력을 해치지 않고 북돋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로서는 자기 몫은 다했다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은 지루했고, 다음은 평범했고, 이제 비로소 흥미로워지고 있다. 역시 드라마에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있어야 한다. 부딪히고 깨지는 사이 반짝반짝 불꽃이 튀긴다. 인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대개 재미가 없다. 조금은 다를까? 일단은.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시대2 - 하나의 고비를 넘기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0) | 2017.10.08 |
---|---|
청춘시대2 - 과거를 뒤로 하고 지금을 딛고 내일도 나간다 (0) | 2017.10.07 |
명불허전 - 해피엔드, 의사가 되어 살고 인간으로 돌아오다 (0) | 2017.10.02 |
청춘시대2 - 진지하지만 사소한 어느 순간의 이야기들 (0) | 2017.10.01 |
청춘시대 - 후회하는 청춘의 자화상 (0) | 2017.09.30 |